[이석씨 빈소표정]『얼마나 많이 맞았기에…』눈물바다

  • 입력 1997년 6월 5일 20시 06분


한총련 간부들에게 폭행당해 숨진 고 李石(이석·23)씨의 빈소가 마련된 한양대병원 영안실에는 5일 아버지 李丙郁(이병욱·52) 어머니 鄭玉愛(정옥애·49)씨와 친지 몇명만이 침통한 표정으로 빈소를 지켰다. ○…이씨의 부모는 눈물마저 말라버린 듯한 모습으로 영안실내 의자에 걸터 앉아 한숨만 짓는 모습. 이날 오전 9시10분경 군 복무중인 둘째아들 元(원·21)씨가 영안실로 들어오자 정씨는 원씨를 끌어안고 『네 형이 맞아 죽었다니 얼마나 아팠겠니』라며 다시 눈물을 터뜨렸다. 정씨는 『석이가 평소 대학에 가고 싶다고 할 때마다 「기술 잘 배워서 성공해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위로해 왔다』며 『석이가 왜 데모를 하러 한양대까지 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통곡. ○…이날 이씨의 빈소에는 金大中(김대중)국민회의 총재 高建(고건)국무총리 姜雲太(강운태)내무장관 黃龍河(황용하)경찰청장 등이 보낸 조화가 영안실을 지켰고 오후 2시경 강내무장관과 황경찰청장이 빈소를 방문해 썰렁한 영안실을 지키던 가족들을 위로. 아버지 이씨는 『석이가 평소 내성적인 성격이라 친구가 별로 없는데다 해남의 친척들은 올라오지 말라고 미리 통보했다』고 설명. ○…이씨의 시신은 7일 오전 고향인 전남 해남으로 내려가 천주교 장례절차에 따라 영결식을 가진뒤 천주교 공동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홍성철·이승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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