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 잘못 인식,멀쩡한 식품 『부패』양산

  • 입력 1997년 5월 26일 08시 07분


서울 강남에 사는 주부 宣慧貞(선혜정·33)씨는 슈퍼마켓에서 우유를 살 때 한가지 버릇이 있다.

냉장고 앞쪽에 있는 우유를 치우고 꼭 맨 안쪽에 들어있는 우유를 꺼내는 것이다.

안쪽에 「숨어있는」 것일수록 유통기한이 많이 남은 신선한 제품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

선씨는 몇달전까지 이렇게 집에 사다놓은 우유가 유통기한을 조금이라도 넘기면 「가차없이」 버렸다. 냄새를 맡아보면 먹어도 별 탈이 없을 것 같지만 어쩐지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TV에서 어느 식품학과 교수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도 먹을 수는 있다』고 한 말을 들은 뒤로는 유통기한을 1,2일 정도 넘긴 경우엔 버리지 않고 그냥 마시고 있다.

선씨처럼 요새 주부들은 식품을 살 때나 먹을 때 유통기한을 꼼꼼히 따진다. 식품의 경우 이제 가격 품질과 함께 유통기한이 구매의 중요한 고려사항이 됐다.

「깐깐한」 소비자들을 상대하다 보니 식품업체들도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다. 유통기한 설정은 작년 7월부터 자율화된 상태. 제조업자나 수입업자가 스스로 판단해 결정할 수 있다.

언뜻 생각하면 업체에서는 유통기한을 늘리려고 할 것 같지만 오히려 정반대 추세다. 미원은 작년말 청정원 고추장 된장 등의 유통기한을 기존의 18개월에서 10∼12개월로 줄였다.

다른 식품업체들도 마찬가지. 빙그레는 한달에 한번 직원들에게 1만원씩 주고 매장에 내보내 유통기한이 지난 자사 제품을 사오도록 하고 있다. 「신선한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전략들이다.

그러나 유통기한에 관해서는 잘못 알려진 「상식」이 많다. 유통기한의 정확한 의미는 「판매가 가능한 기간으로 그 이후에도 일정한 기간동안 소비할 수 있는 기한」.

하지만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유통기한이 지나면 그 식품이 아예 변질됐거나 먹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소비자보호원이 작년에 주부 3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3.3%가 「그날까지 먹을 수 있는 음용가능 기한」으로 알고 있었다. 업계관계자와 식품전문가들은 현재 유통기한으로 획일화된 것이 이런 「오해」를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 외국처럼 「최상의 품질 유지기한」 「적정 사용가능기한」 「판매가능기한」 등으로 세분화해야 한다는 것. 한국보건사회연구원 鄭基惠(정기혜)박사는 『유통기한이 넘은 것도 무조건 폐기할 것이 아니라 가격을 낮춰 판매하는 등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명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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