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공동체를 위하여]『내돈내고 눈치』…거꾸로된「서비스」

  • 입력 1997년 4월 15일 09시 32분


회사원 鄭恩哲(정은철·39)씨는 택시를 탈 때마다 『오늘은 다투지 말자』하고 심호흡을 한다. 그러나 지켜지는 경우는 드물다. 『먼저 탄 사람에게 묻지도 않고 합승하는건 보통이고 행선지를 말하면 택시운전사가 「난 모르니 안내하시오」합니다. 도대체가 거꾸로 된 것 아닙니까. 외국에서는 운전사가 지도보며 찾아주더라고 하면 외국가서 살라며 내리라는 거예요. 「택시운전사 자격증」은 괜히 주는 겁니까』 ▼ 어른에게도 반말 일쑤 ▼ 영국에서 1년간 지낸 경험이 있는 정씨는 우리나라를 「내 돈주고도 사람대접 못받는 나라」로 규정한다. 끼니때 식당에 가도 마찬가지다. 손님이 주인에게 『바쁠때 와서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할 만큼 내 돈 주고 내 밥 사먹으면서도 사람대접 못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병원을 가면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새파란 간호사에게 「아무개씨」소리를,젊은 의사에게는 반말을 들어야 한다. 아직도 국민위에 군림하는 관청에 가면 아예 서비스를 기대하지 않는게 좋다. 5백평짜리 공장을 짓기 위해 1만쪽이 넘는 서류를 제출했으나 6년째 공장허가를 받지 못해 10억원의 돈만 날렸다는 어느 중소기업인의 절규는 행정서비스 부재의 하이라이트다. 사회심리학자 崔昌浩(최창호·사이콜로지코리아 실장)씨에 따르면 택시운전사가 운전대 잡고 곤댓짓하고 공무원이 허가권 갖고 권세부리는 것은 「가진자의 오만」때문이다. 오랜 군사독재치하에서 얻은 뿌리깊은 권위주의와 독선, 그리고 정경유착과 오랜 독점체제가 결국 「공동체는 아랑곳하지 않는 독불장군의 사회」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각 일간지에는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라는 제목의 희한한 전면광고가 실려 눈길을 끌었다. 「얼마전 명동에 나간 길에 요금을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전화를 했죠… 전화번호를 알려 주더군요… 그런데 거기서는 안받는다며 다시 다른 전화번호를 알려주더군요… 이번에는 컴퓨터가 어쩌구 하면서 요금을 못받는다고… 그래서 고객센터로 전화를 했더니 자기들 소관이 아니라고… 도대체 제대로 된 서비스 좀 받아보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광고주는 뜻밖에도 SK텔레콤이었다. 고객이 기업측에 털어놓은 불만을 스스로 밝히고 이제 세계수준의 고객서비스부터 시작하겠다고 다짐한 것이었다. 이 광고를 주관한 張順一(장순일)홍보실 과장은 『우리 내부에서도 이렇게까지 치부를 드러내야 하는가에 대한 반발이 컸다』며 『금연할 때 이 사실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광고를 냈다』고 설명했다. 『오랜 독점끝에 지금은 신세기와 이동통신시장을 양분하고 있지만 올해안에 5개업체와 경쟁하게 됩니다. 98년 통신시장이 개방되고 외국기업이 들어오면 이대로 안일하게 고객을 대하다가는 큰일나겠다는 위기감이 든 것이지요』 그는 고객불만가운데 상품의 질(통화품질)을 제외한 가장 큰 불만이 「서비스」였다며 『고객만족 없이는 기업이 존립할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 백화점과 할인점 등도 서비스 경쟁에 나섰다. 상품의 품질이 비슷비슷해지자 「또다른 상품」인 서비스개발에 나선 것이다. 시민들도 지금까지 묵묵히 당해온 서비스 부재를 더이상 참고 견디지 않는 추세다. ▼ 소비자 고발 부쩍 늘어 ▼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 산하 「작은 권리찾기 운동본부」(02―797―8200)는 114전화의 유료화 이후에도 장시간 통화대기 등 서비스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지난달 정보통신부에 행정심판을 청구한데 이어 곧 행정소송을 낼 계획이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도 무형의 상품인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고발이 부쩍 늘었다. 그러나 「서비스를 잘하자」는 안팎의 구호와 닦달만으로는 서비스 시대를 이룰 수 없다. 항공전문지 「비즈니스 트래블러」로부터 최근 5년 연속 서비스 세계1위로 선정돼온 싱가포르 에어라인의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만이 사랑을 베풀줄 알듯 내부에서 월급 복지후생 사기진작 등의 충분한 서비스를 받아야 외부로 서비스를 베풀 줄도 알게 됩니다. 경영층 지도층이 먼저 서비스하는 것이 중요한 것도 이때문이 아닐까요』 〈김순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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