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인씨 「바닷가의 장례」펴내

  • 입력 1997년 3월 18일 07시 59분


[권기태기자] 중진 시인 김명인씨(51·경기대 국문과교수)가 다섯번째 시집 「바닷가의 장례」를 「문학과 지성」사에서 펴냈다. 그는 우리 시단에서 오규원 정현종 황동규 세대의 뒤를 잇는 시인. 쉰 안팎 동년배 시인들이 침잠의 세월을 사는 동안에도 펜을 놓지 않았다. 그 창작의 모태는 길이다. 그는 시간이 나면 황동규시인과 길벗삼아 국토의 이곳저곳을 떠돌며 시심을 추슬러왔다. 그에게 행장을 꾸리게 하는 힘은 세상에 대한 그리움이다. 「갈 수 없는 곳 풍경 깨어지라 몸 부딪혀저물고기/벌써수천대접째의 놋쇠 소릴 바람결에/쏟아보내고 있다」(「안정사(安靜寺)」일부). 이 여정에서 그는 나이 들어감을 느낀다. 「돌아간 수도승들 따라 나도 사원을 떠나야 한다면/노을에 젖어드는 면벽을 풀고/어제 울던 목쉰 뜸북과 작년에 피었던 메꽃과/내년에 올 봄 들녘과 오늘 저녁 이 고요, /지고 갈 짐들 너무 많아 늦게까지/여장 꾸릴 때, 밤은 벌써 깊었다」(「오래된 사원 5」일부). 그의 여로는 낯선계곡과 사원, 적막한 바닷가, 미루나무 늘어선 강안(江岸), 비오는 골목처럼 세상의 변방에 있다. 그 변방은 소멸과 생성, 이승과 저승, 텅빔(空)과 가득참(滿)이 몸을 맞대고 있는 지점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가끔 화장(火葬)이 이뤄지는 그의 고향 울진 근처 후포 바닷가 같은 곳이다. 이곳에는 폴 발레리의 시집 「해변의 묘지」처럼 바다를 바라보는 무덤들이 있기도 하다. 여기서 그는 바다의 생명력과 육신의 소멸이 교차하는 광경을 본다. 「누구나 바닷물이 소금으로 떠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아무도 말하지 않는다/죽음은 연둣빛 흐린 물결로 네 몸 속에서도 출렁거리고 있다/썩지 않는다면, 슬픔의 방부제 다하지 않는다면/소금 위에 반짝이는 저 노을 보아라」(「바닷가의 장례」일부). 두 세계가 맞닿아 있는 길 위에서 그는 초월보다 세상 쪽을 바라본다. 그것은 그의 첫 시집 「동두천」 등에서 보였던 치열한 사회성이 농익은 시선이며 근심어린 눈길이다. 그의 여로를 줄곧 지켜본 오랜 벗 황현산씨(고려대 불문과교수)는 이 시들을 『강인한 정신의 서정』이라 압축하며 『그 강인함의 비밀은 인간 심성의 위대함에 대한 믿음, 곧 문학에 대한 믿음』이라 말한다. 그 믿음의 여로가 위태한 세기말을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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