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설날풍속도]「대가」집서 걸쭉한 술판 『옛얘기』

  • 입력 1997년 2월 3일 20시 07분


[정은영 기자] 설날이 가까워오면 40대 이상의 문인들은 『요즘에는 옛날처럼 왁자지껄하게 세배 다니는 즐거움도 없다』는 푸념을 늘어놓게 된다. 문단의 「큰 어른」들이 속속 세상을 떠나거나 와병중이라 문인들이 세배를 핑계삼아 한데 모일 수 있는 곳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후배문인들이 「꼭 세배를 가야할 분들」로 꼽는 이들은 소설가 황순원 시인 서정주 박두진씨. 그러나 세사람 모두 고령으로 건강이 예전같지 않아 술판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불과 10여년전만 하더라도 작고한 김동리씨와 미당 서정주씨의 집은 설날이면 세배객들로 엉덩이붙일 곳 찾기가 어려울 만큼 북적거렸다. 「소설가들은 동리댁에, 시인들은 미당댁에 집합」이라고 했을 정도. 동리는 매해 수백여명에 이르는 세배객을 꼼꼼이 챙기는 스타일이었다. 33년간 동리에게 세배를 다닌 소설가 이문구씨는 『후배나 제자들 중에 온 사람과 안 온 사람을 다 기억해낸뒤 안온 사람에 대해서는 내가 뭐 섭섭하게 대한 일이 있었던가 고민까지 하셨기 때문에 한해도 세배를 거를 수가 없었다』고 회고한다. 세배객들은 정종 한병으로 선물을 통일했다. 동리는 그 답으로 평소 써 놓았던 붓글씨를 세뱃돈 대신 주었다. 미당의 집은 세배객들 사이에 술을 풍성하게 얻어 마실 수 있는 곳으로 꼽혔다. 미당이 최근 몇년사이 건강때문에 주종을 맥주 한가지로 통일했지만 그전에는 집에서 담근 술을 비롯해 온갖 종류의 술들이 구비돼 있었던 것. 술이 떨어지면 시중드는 사람을 소리내서 부르지 않고 술자리에 미리 준비해둔 목탁이나 차임벨을 두드리는 것도 미당의 독특한 버릇이다. 문단의 세배풍습은 1년에 한번이라도 문단내 계파를 초월해 서로를 어울리게 하는 「용광로」구실을 했다. 작고한 박목월씨에게 해마다 세배를 갔던 시인 김종해씨(문학세계사 대표)는 『유신시절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초대회원으로 가입하자 육영수여사 전기까지 썼던 목월선생은 「저놈만 보면 내가 숨이 막힌다」고 호통을 치시면서도 해마다 세배오기를 기다리셨다』고 회고했다. 근래 세배왕래가 뜸해진데 대해 문단에서는 『젊은 문인들이 그만큼 문단의 권위에 대해 자유스럽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 『세대간의 의사소통단절이 심해진 문단에서 설날만이라도 핑계삼아 얼굴을 마주한다면 서로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않겠느냐』는 양론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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