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작가 유미리, 가족해체 소설집 국내출간

입력 1997-01-25 20:21수정 2009-09-27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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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恩玲 기자] 아쿠타가와(芥川)상을 수상한 재일교포작가 유미리씨(28)의 소설집 「풀 하우스(Full House)」가 고려원에서 출간됐다. 수록된 두편의 작품 「풀 하우스」와 「콩나물」은 각각 94년과 95년에 아쿠타가와상 후보로 지목됐다가 아깝게 탈락된 작품들. 지난해 6월 일본 「문예춘추」사에서 두 작품을 묶어 단행본으로 발간한 후 명성있는 이즈미 교카(泉鏡花)상과 노마분게(野間文藝)신인상을 잇달아 수상했다. 「풀 하우스」와 「콩나물」은 올해 수상작인 「가족시네마」와 연장선상의 작품이다. 유년시절 가족의 붕괴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 가족간의 따뜻한 사랑을 원하지만 결코 가족을 꾸릴 수 없는 피폐한 인간군상이 음울한 그림처럼 펼쳐진다. 표제작 「풀 하우스」의 화자인 모토미와 동생 교코는 어느날 아버지가 지은 새집으로 초대된다. 빚을 얻어 지은 근사한 새집에는 몸만 들어가면 살 수 있도록 가구와 집기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 새집에 없는 것은 단 하나, 「가족」뿐이다. 모토미의 나이 열살때 술집여급이었던 어머니가 정부와 살림을 차리기 위해 가출한 후 자매는 빠찡꼬 지배인이며 도박광인 아버지의 집과 어머니의 집을 오가며 자란다. 가족이 깨어진지 10년 만에 아버지는 새집을 지어 가족들을 다시 모아보려고 절망적인 시도를 하지만 딸들과 아내는 누구도 재결합을 원치 않는다. 결국 아버지는 빈집을 가족으로 채우기 위해 역에서 노숙하던 낯선 일가족을 불러들인다. 떠돌이 일가는 집에 들어온뒤 정원에 연못을 새로 파는가 하면 집주인인 아버지와 모토미로부터 관리비를 받는 등 주객전도의 상황을 벌인다. 내집 마당에서 불꽃놀이를 벌이는 떠돌이 일가를 보며 아버지는 『풀 하우스구나』라고 신음같은 혼자말을 내뱉는다. 「풀 하우스」의 줄거리는 작가 유씨의 개인적 체험과 무관하지 않다. 아홉살에 겪은 부모의 이혼, 그 상처를 이기지 못해 가출과 자살기도로 점철됐던 사춘기 등 연극과 문학에서 삶의 탈출구를 찾기전까지 유씨의 삶은 「풀 하우스」의 외로운 모토미나 포르노배우가된 동생 교코의 상처입은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재일동포 출신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선배작가 이회성씨나 이양지씨와 달리 유씨는 작품속에 재일동포로서의 고뇌를 그다지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는 자신이 겪었던 「가족의 해체」가 문학적 화두가 된다. 그러나 산업화 현대화 속도에 비례해 급격하게 가족의 해체를 겪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유씨가 그려내는 음울한 가족의 모습은 「동포」라는 심정적 동질성을 넘어서서 더 큰 공감을 자아낼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아쿠타가와상 발표에 때맞춰 책을 출간하게 된 고려원은 「뜻밖의 횡재」라며 싱글벙글하는 분위기. 지난해 「풀 하우스」가 일본에서 출간된 직후 「큰 반향이 없더라도 동포작가의 작품이니 국내에 소개하자」는 취지로 문예춘추사와 계약을 했던 고려원은 유씨의 수상소식을 접한 후 당초 5천부로 계획했던 초판 발행부수를 2만부로 늘렸다. 고려원은 「풀 하우스」를 20만엔(약 1백60만원)선에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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