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아침 새지평]새해 벽두의 즐거움

  • 입력 1997년 1월 7일 20시 07분


새해 새 아침이 밝은 지 며칠 되지 않았다. 자연의 순리대로 무심하게 찾아 오고, 때가 되면 누구나 맞는 한 해지만 그래도 새해가 되면 가슴 벅차온다. 작심삼일이니 뭐니 해도 새해에 거는 기대와 결심은 아직 크다. 표지만 벗겨낸 달력철에는 삼백오십여의 빳빳한 날들이 남아 있고, 새로 산 다이어리북의 하얀 종이 냄새가 신선하다. ▼ 빳빳한 달력과 결심 ▼ 1996년을 새삼스레 돌이켜볼 필요가 있을까마는 그래도 지난 한 해는 마음 상하는 일이 참 많았다. 오르기만 하는 물가와 「막가파」류의 범죄는 서민들을 불안하게 했고, 기성정치인들이 보여준 비상식적인 정국 운영은 많은 시민들을 실망시켰다. 그나마 버티던 경제도 위기라고 난리요, 기업마다 감원 바람에 추운 겨울이 더 춥다. 지난해에 대한 아쉬움이 큰 만큼 새해에 거는 기대도 크다. 해마다 새해에 기대를 가지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 「새로운 사람들」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그것이 가족이든 조직이든 사회이든 새로운 누군가를 맞는다는 것은 기대되는 일이다. 입시철인 요즘 대학들마다 신입생 선발하느라 부산스럽다. 「새내기」라고 불리는 신입생들을 뽑고 그들을 맞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일이 학교 선생으로 또 무엇이 있을까. 입시생과 부모들은 일생의 중대사라 마음 졸이지만, 면접일에 집을 나서는 내 마음의 준비도 만만치 않다. 올해는 어떤 새 사람들이 지원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 학과에 지망한 학생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을까. 꼭 좋은 학생들 뽑아 우리 사람 만들어야지. 기대와 조바심이 큰 것이다. 내가 면접생이 된 기분이라고나 할까. 예비 새내기들을 만나 이것 저것 물어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요새 학생들은 자기 이야기를 자신있게 한다. 대개는 목표도 뚜렷하다. 다들 인물좋고 밝고 개성이 있다. 그들이 품고 있는 때묻지 않은 꿈에 대해 듣다보면 나도 덩달아 신이 난다. 그리고 때론 내가 지녔던 잊혀진 꿈이 생각나 괴롭기도 하다. 살아가면서 열정이 무뎌지고, 꿈에 녹이 슨 것을 느끼게 된다. 바쁜 일상에 지쳐 현실과 적당히 타협해왔다는 자책도 든다. 결국 이것이 나이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나는 새내기들에게 『너도 어른이 돼봐』 『사회물을 좀 먹어야지』 따위의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젊은이들은 꿈을 꾸는 세대다. 젊은이들은 꿈을 꾸어야 하는 세대다. 과연 그들이 지닌 꿈은 세월이 흐르며 잊혀져야 하는 한때의 환상일 뿐일까. 나는 새내기들에게 마음껏 꿈꾸라고 말해주고 싶다. 입학하자마자 토익책을 들고 다니고, 영악하리만큼 민감하게 학점에 반응하는 대학생은 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 새내기들의 「꿈 냄새」 ▼ 때로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에게 꿈꾸는 법을 배워야 한다. 젊은이들이 꾸는 꿈을 살짝 훔쳐보기라도 할 수 있다면, 그들로부터 우리도 한 때는 꿈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우칠 수 있다면, 그리고 아주 가끔은 색이 바래버린 지난 날의 꿈이 생각나 괴로워할 수 있다면, 새해는 지난 해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봄이 되면 교정은 새내기들로 뒤덮일 것이다. 캠퍼스의 개나리 진달래에서 풍기는 향기보다 더 짙은 새내기들의 꿈 냄새를 나는 벌써 맡고 있다. 이 긴 겨울, 봄에 만날 새내기들을 그리면 춥지 않다. 김 철 규<고려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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