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여자. 어느 상황에서도 할 말은 하고, 가치관의 기준 또한 확실할 것 같은 여자. 배종옥(47)은 자신을 둘러싼 이미지에 대해 “그렇게 많은 역을 했는데도 어쩜 나를 생각하는 이미지는 늘 그런 걸까요”라고 되물었다.
85년 KBS 탤런트로 데뷔해 연기생활 30년이 가까워오는 배종옥은 장난을 섞어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게 변신을 꿈꿔왔던 배우다.
20일 개봉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감독 민규동·이하 세상에서)은 도도하고 당찼던 배종옥이 그동안의 이미지를 버리고 따뜻하고 정겨운 엄마로 변신한 작품이다.
“눈물을 짜는 영화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는 그는 “슬프기만 해서는 안 되는 영화를 원했다”고 했다.
● “암 투병으로 세상 떠난 엄마…영화에서도 그 마음 그대로”
영화에서 배종옥은 느닷없는 암 발병으로 인해 빠르게 죽음을 맞는, 아내이자 며느리이고 엄마인 인희를 맡았다. 갑자기 닥친 시한부 선고에도 남겨질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엄마가 인희다. “그동안 엄마 역할은 했었지만 삶의 터전이 가정인 엄마 역은 처음이에요. 어느 정도의 선을 유지할까 고민했죠. 감독님은 자꾸 여자다워야 한다고 주문하는데 ‘암 환자가 왜 저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배종옥은 영화 속 이야기가 낯설지 않았다. 얼마 전 세상을 뜬 그의 어머니 역시 암으로 긴 시간 투병을 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찍으며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는 그는 “그래도 혼자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고 했다. “돌아가신 제 어머니는 대체 의학으로 암 치료를 받아서 고통이나 통증을 많이 느끼지 않았어요. 가족들을 많이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고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걸어서 함께 여행도 다녔어요.”
실제로도, 영화에서도 죽음이 갈라놓는 이별을 경험한 배종옥은 “사람이 죽는다는 건 보고 싶을 때 보지 못하고, 만지고 싶을 때 만질 수 없는 일 같다”고 했다.
영화 속 상대역은 김갑수다. 2009년 KBS 2TV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중년의 연인으로 호흡을 맞췄던 둘은 이번에는 부부로 다시 만났다. 두 사람은 팬들로부터 “은근히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지만 정작 배종옥은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김갑수를 ‘갑수 아저씨’라고 부르는 배종옥은 “갑수아저씨는 정말 바쁘지만 현장에서 사람들에게 쉽고 친숙하게 다가서는 방법을 아는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예민하고 까다롭게 했는데도 그걸 다 이해하고 잘 맞춰줬다”고도 했다.
● “최민식 형과 로맨틱코미디 영화 하고 싶어요”
영화의 원작을 쓴 노희경 작가는 배종옥과 친구다. “너무 가깝지도 않고 소원하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사이다. 영화를 본 노 작가는 배종옥에게 “걱정했는데 잘했다”는 단출하지만 힘이 있는 한 마디를 건넸다.
“서로 지겨워서 싸우기도 해요. 하하. 노희경 씨는 인간 속의 갈등을 다뤄도 ‘이건 예쁘지 않니’라고 얘기하는 작가예요. 그의 작품에는 늘 지워지지 않는 장면들이 있죠. 제가 ‘세상에서…’ 원작 드라마를 볼 때 받은 느낌은 경악과 충격이었어요. 인간적인 이야기, 그래서 더 예쁜 인간의 결을 지켜주는 작가이죠.”
최근 박사학위를 받은 배종옥은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서 겸임교수로 강의 중이다. 요즘은 대학원에서 ‘배우론’을 가르치고 있다. “‘배우가 되고 싶니, 연예인이 되고 싶니’라고 늘 물어요. 졸업하면 스타가 될 줄로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지금 동숭동에서 연극하는 배우들은 1년에 500만원 벌어요. 한 달에 40만원 꼴이죠. 그 돈으로 생활할 수 있겠냐,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려고 해요.”
배종옥은 여전히 꿈꾸는 것들이 많다. 연기로도, 학위로도 이루고픈 건 여러 개다. “최민식 형과 로맨틱 코미디를 꼭 하고 싶어요. 중년의 사랑이야기요. 민식이 형이 저더러 ‘어디서 시나리오 구해와’라고 하는데, 글 쓰는 재주가 있어야 쓰죠. 박사학위(언론학)를 땄으니 앞으론 TV드라마 시대를 배우의 관점에서 정리하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물론 엄마로서의 마음도 있다. 18세인 그의 딸은 미국에서 유학 중이다. 홀로 유학생활을 하지만 누구보다 엄마를 깊이 이해해주는 친구이자 딸이다. “청소년기를 미국에서 보내서인지 쿨해요. 오히려 더 어른스럽죠. 제가 어떤 엄마냐고요? 그건 딸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하하. 누구보다 제가 힘든 걸아니까 연기에 대한 욕심은 없고 대신 춤에 관심이 많아요.”
이해리 기자 (트위터 @madeinharry) gofl1024@donga.com 사진|박화용 기자 (트위터 @seven7sola) inpho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