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합동토론]李 “서울 空洞化 가속” 盧 “경제首都로 남아”

  • 입력 2002년 12월 10일 23시 35분



▼행정수도 이전▼

10일 경제분야 TV합동토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는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이 후보가 먼저 노 후보의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 공약의 비현실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 후보는 “충청권에 국회까지 옮기면 국도(國都)가 옮겨가는 것 아니냐”며 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서울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을 대표적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이 후보는 “국회를 포함한 정부부처가 행정수도로 옮겨가면 서울의 부동산값이 떨어져 집 한 채 가진 서민층은 어려움을 겪는 등 경제에 큰 혼란이 온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노 후보는 “이 후보는 사실을 제대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며 “행정 수도를 옮긴다고 해서 서울 인구를 다 옮긴다고 말한 적 없다”고 반박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미국의 워싱턴이 있다고 해서 뉴욕을 다 옮겼나”라고 되물은 뒤 “행정수도가 옮겨가도 서울엔 경제적 기능, 특히 동북아 물류와 비즈니스의 중심지란 막대한 기능을 유지할 것이다”고 행정수도 이전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행정수도 이전 비용도 논란이 됐다.

이 후보와 권 후보는 “노 후보는 실제 비용이 6조원이 든다고 하는데 전남도청 이전에만 2조5000억원이 들지 않느냐. (70년대) 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잡은 행정수도 건설비용도 5조원이었다”며 “노 후보의 주장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고 공약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노 후보는 즉각 일산과 분당 신도시 건설과정을 사례로 들며 반박했다. 그는 토론 초기에는 “4조5000억원이면 행정수도를 이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가 이 후보가 비용의 비현실성을 지적하자 “토지공사가 분당을 만드는 데 2조5000억원, 일산을 만드는 데 4조원을 들였으나 기반시설 비용은 분양 후 회수하지 않았느냐. 17만9000여평을 옮기는 데 6조원이면 충분하다”고 액수를 수정 제시했다.

노 후보는 또 “한나라당이 행정수도 이전비용이 40조원이나 든다고 주장하는데 황당한 말”이라고 일축했으나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 후보는 “전남도청 이전에만 2조5000억원이 드는데 과연 노 후보가 말한 액수로 (행정수도 이전이) 되겠느냐”고 이 후보와 공조 전선을 폈다.

한편 이날 토론에 앞서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맞붙었다.

한나라당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청와대와 국회까지 옮긴다면 행정수도 건설이 아니라 천도(遷都)로, 최소 40조원이 든다”며 “수도 이전은 수도권의 부동산값 폭락과 이에 따른 은행 부실 등으로 추진 자체가 국민과 나라에 큰 재앙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임채정(林采正) 정책위의장은 기자간담회에서 “18만평에 인구 50만명 정도의 도시를 건설할 경우 정부청사 건설비 등 순비용이 1조6000억원, 이전 비용을 합해도 6조원이면 가능하다”며 “현재의 수도권은 주택 교통 땅투기 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어 그대로 두면 지방과의 격차가 심화돼 국가적 재앙이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기업정책▼

이회창 노무현 권영길 후보는 특히 재벌정책을 놓고 뚜렷한 시각 차를 보였다.

이 후보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강압적으로 추진한 빅딜정책을 실패한 정책으로 규정하며 현정부의 재벌정책을 공격했다.

노 후보는 재벌개혁을 하지 않으면 IMF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면서 이 후보의 규제완화 정책에 역공을 가했다.

권영길 후보는 대우그룹 김우중(金宇中) 전 회장과 삼성 이건희(李健熙) 회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재벌의 ‘황제식’ 경영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두 후보와 차별성을 드러냈다.

노 후보는 “이 후보는 집단소송제도에 반대하고 금융기관 계열분리 청구제도도 반대하는데 어떻게 재벌을 개혁하고 외환위기를 막을 수 있겠느냐”고 포문을 열었다. 노 후보는 “97년 IMF 위기도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의 책임이 아니냐”고 따졌다.

이에 이 후보는 “IMF 위기를 극복했다고 하는데 민주당은 정경유착도 관치 경제도 근절하지 못했다”면서 “노 후보는 현 정부에 참여한 장관으로서, 또 여당 대통령 후보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현 정부의 실정과 노 후보의 연관성을 부각시켰다.

이 후보가 “현 정부의 빅딜 정책은 특정 재벌을 키워주기 위한 잘못된 정책이다”고 공격하자 노 후보는 “정경유착과 재벌 개혁은 별개의 문제이다”며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권 후보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김우중 전 대우 회장 체포 결의도 하지 않고 있다”며 정경유착 고리를 부각시키면서 “삼성 이건희 회장도 2%대 지분을 갖고 황제식 경영을 하는데 노동자가 경영에 참가하는 길만이 확실한 재벌개혁이다”고 주장했다.

권 후보는 재벌개혁 수단으로 노동자의 경영참가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권 후보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이 후보는 “경영과 노동은 뚜렷이 구분돼야 한다”며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반대했고 노 후보는 종업원 지주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가계부채▼

2000년 이후 급격히 늘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서는 세 후보가 ‘3인3색’의 시각을 드러냈다. 이회창(李會昌) 후보는 ‘정부의 과소비조장론’을, 노무현(盧武鉉)후보는 ‘복합원인론’을, 권영길(權永吉) 후보는 ‘금융기관-정부 공동책임론’을 주장했다.

신용불량자수가 국민 100명당 7명꼴에 이르고 가구당 부채가 3000만원을 넘어서는 등 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위에 이르렀다는 점에는 세 후보가 모두 공감했다.

▽원인〓이 후보는 “젊은층의 과소비 문제가 특히 위험하다”고 지적한 뒤 “정부가 소비를 조장한 것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현 정부의 벤처정책과 부동산정책으로 인한 거품이 뒤늦게 현실화한 것이 가계부채라는 것.

노 후보는 “소비 조장에 따른 가계 빚 증가는 하나의 원인에 불과할 뿐”이라며 “주택대출 증가, 금리 인하, 신용카드 남발, 금융기관의 기업대출 심사능력 부족 등이 모두 가계부채를 늘렸다”고 말했다.

권 후보는 “금융기관이 기업대출을 하지 않고 가계대출에 치중하고 신용카드를 남발한 것이 원인”이라며 금융기관의 책임에 무게를 뒀다.

▽대책〓이 후보는 가계부채 및 신용불량자 문제 해결책으로 개인신용회복(워크아웃)제도와 개인회생제도의 법제화를 들었다.

노 후보는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을 하나하나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 뒤 “한나라당은 개인워크아웃제도 확대를 반대해 왔다”며 이 후보측의 일관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권 후보는 “은행의 영업 행태를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이자율 상한을 25%로 정하고 주택은 2채 이상 담보로 잡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토론질문 어떻게 만들었나▼

이날 토론은 3일 정치분야 1차 합동토론과 마찬가지로 △사회자 공통질문 토론 △1 대 2 토론 △1 대 1 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사회자 공통질문은 6일 대선방송토론위원회가 문제은행식으로 만들어 놓은 12개 가운데 6개를 토론시작 2시간 전 비밀리에 선정했다. 토론위원들은 MBC에 모여 무작위로 6개를 뽑아 사회자에게 전달했고 문제의 유출을 막기 위해 토론이 시작될 때까지 사실상 ‘감금’됐다.

반면 1 대 2 토론의 소주제였던 ‘재벌개혁’과 ‘무역개방’은 5일 토론위에 의해 일찌감치 결정돼 3당 후보들에게 전달됐다. 충분한 준비 시간을 준 것이다.

세 후보 진영이 가장 보안에 신경을 쓴 건 1 대 1 토론 질문이었다. 자유로운 질문을 통해 상대 후보의 아킬레스건을 공격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였던 셈.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의 비현실성을 이 부분에서 제기했다.

한편 이날 토론을 앞두고 민주당 노무현 후보측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던지는 질문은 노 후보가 곧바로 대답하게 돼 있으나 노 후보의 질문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를 거쳐 이 후보가 답변한다”며 토론위에 답변순서를 조정해달라고 공식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토론위는 “표결 결과 5 대 3으로 첫 토론 자리배치 추첨에 의해 정해진 ‘노무현→권영길→이회창’ 문답 순을 유지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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