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복거일/시민-美軍 맞설때 정부는?

  • 입력 2002년 11월 26일 18시 23분


미군 장갑차에 치여 우리 여중생 두 명이 사망한 사건이 우리 사회에서 폭발적 논점이 되었다. 어린 소녀들의 죽음은 더할 나위 없는 비극이자 안타까운 일인데 미군 당국의 초기 반응은 너무 관료주의적이었다. 그리고 장갑차 운전 요원들에 대한 미군 법정의 무죄 평결은 우리 시민들에겐 상황과 너무 동떨어진 판결로 비쳤다. 그래서 시민들의 감정이 격앙된 것은 자연스럽다.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라는 목소리도 높다.

▼'여중생 사망' 중재 나서야 ▼

무슨 조치인가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의 격앙된 분노를 가라앉히고 불안한 마음을 쓰다듬어 줄 만큼의 시원한 조치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좁은 우리 땅에 3만명이 넘는 무장 주한 미군들이 주둔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것도 여러 도시에서 우리 시민들과 섞여 사는 터라, 주한 미군 병사들에 의한 갖가지 사고와 범죄들은 끊임없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현재 한국에서 근무하는 미군들의 수에 비해 이들이 일으키는 사고와 범죄 건수가 크게 높다고 보기도 어렵다.

우리와 미군 사이의 행정협정(SOFA)을 개정하는 일은 분명히 바람직한 일이고 좋은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런 사정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사고를 낸 미군 병사들에 대한 재판 결과는 미국 입장에서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 나온 것이다. 비록 우리에겐 낯설고 편향적인 조치로 비치지만, 미군 병사들로만 구성된 배심은 ‘동료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에 의한 재판’(trial by a jury of his peers)이라는 미국 법의 관행을 따른 것이다. 미군형법에 따르면 군사법정의 배심원은 민간인이 될 수 없다.

결국 우리 시민들이 정의롭고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것들과 미국과 미군이 정의롭고 합리적이라 여기는 것들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있다. 그리고 그런 간격은 본질적으로 우리와 미국 사이의 문화적 차이에서 나왔다. 미군의 주둔이 우리 군사력을 보강할 뿐 아니라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억제하므로 미군과 우리 사이의 그런 간격은 반드시 메워져야 한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그 일은 정부만이 할 수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전략을 위해서도 정부는 이런 부분에서 전략적인 대처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당장 필요한 것은 피해를 본 우리 시민들에게 우리 사회의 기준으로 합당한 물질적, 심리적 보상과 미군이 제시하는 보상 사이의 차액을 우리 정부가 제공하는 일이 아닐까. 정부는 그렇게 하는 데 필요한 법적, 행정적 조치들을 서둘러 취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상황을 차분하고 자세하게 우리 시민들에게 설명해서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혀야 한다. 우리가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들은 어디까지이고, 현실적으로 이루기 어려운 것은 무엇인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예컨대, 작전 중 저지른 과실 범죄에 대해 우리 민간 법정이 관할권을 갖도록 행정협정을 바꾸라는 주장은 다른 나라의 사례와 비교해 볼 때 근거도 약하고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사정을 미군 당국에 잘 설명해야 한다. 특히 미군 병사들에 의한 사고와 범죄에 대해 미군 당국이 더 진지한 태도와 성의 있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한국과 미국 양쪽 모두에 이익이라는 점을 미국측이 깨닫도록 해야 할 것이다.

▼反美감정 보고만 있을건가 ▼

이 급박한 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미군부대에 화염병들이 투척되는 상황인데도 정부당국이 침묵하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다. 우리 시민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는 한편 미군 병사들의 불안감도 가라앉혀야 한다. 반미 감정이 이미 위험 수위를 넘었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미군 당국을 다독거리는 조치도 취해야 하는 것이다. 외국 병사들과 자국 시민들이 부닥쳤을 때 정부가 설자리는 바로 그 둘 사이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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