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후보와 김대중 후보가 맞붙은 1971년 대선 때도 우리는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해는 지역감정이 유세장으로 뛰쳐나온 원년이었고, 그 후 31년간 한국정치는 지역감정의 포로가 됐다. 그에 바탕을 둔 3김시대가 종언을 고할 무렵에 다시 새로운 분열과 반목의 씨가 뿌려진다면 우리는 또 수십년간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조짐은 그리 좋지 않다. 두 후보 진영이 내건 구호부터가 심상치 않다. ‘급진세력과 안정세력의 대결’이니 ‘낡은 정치와 새 정치의 대결’이니 하는 것들이 벌써부터 국민 사이에 금을 긋고 있는 듯해서다. 사실 정치권에서 흔히 사용하는 ‘반(反) 이회창’이니 ‘반 노무현’이니 하는 용어에서도 반대하는 사람에 대한 살기가 느껴진다.
두 후보의 출신지와 지지기반 및 성향을 감안할 때 지역감정은 예전 같지 않겠지만 이념갈등은 오히려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불안요인 중 하나다. 정치권 일각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결을 점치는 얘기까지 들리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두 후보 모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칙을 신봉한다면 서로 다른 지역과 세대, 서로 다른 계층과 이념은 상호 보완관계이지 적대관계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가르고 나누면서 미워하고 증오하는 분열의 리더십을 청산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개혁이고 3김시대 청산이라고 할 수 있다.
두 후보는 선거 이후까지 생각하는 절제되고 품위 있는 정책대결로 선거의 생산성을 높였으면 한다. 제발 자신을 지지하지 않더라도 배척하지 않는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