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 여름날 우연히 사진 한 장 때문에 한국, 아니 한민족에 얽힌 엄청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경기에서 두 명의 일본인이 1등과 3등을 차지한다. 하지만 시상대에 오른 두 일본인의 표정은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슬픈 표정이다. 왜 두 사람은 슬픈 표정으로 시상대에 서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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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바로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던 코리아의 ‘손’과 ‘남’이라는 젊은이었다. 시상대에 오른 그들의 가슴에는 일장기의 붉은 원이 붙어있었다. 그리고 일본 국기가 게양되었다. 두 사람은 얼굴을 푹 숙이고 있었다. 그들은 부끄러움과 슬픈 얼굴을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 강점기 하에서 이 기사를 실었던 동아일보는 사진에서 일장기를 말소한다. 이 일로 일본은 동아일보의 폐간을 결정한다.
52년후 88서울 올림픽. 개회식 세리모니에서 백발이 성성한 손기정씨가 세살배기 아이처럼 덩실덩실 춤을 추며 손에 성화를 들고 달린다. 그 당시 모든 한국인들은 이 노인에게 그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빚을 갚을 수 있었던 것이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손기정과 체구가 비슷한 황영조라는 한국의 젊은 마라토너가 몬주익 언덕에서 일본과 독일 선수를 따돌리고 월계관을 차지한다. 경기장에 한국 국기가 게양되었을 때 황영조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 다음 그는 관중석으로 달려가 손기정에게 금메달을 선물하며 깊은 경의를 표했다.
도서관에 한 번 가 보라. 그리고 시상대에 선 두 마라토너의 사진을 보라. 그 순간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김화성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