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인철/‘접시 못깨는’ 교육부

  • 입력 2001년 4월 11일 18시 28분


요즘 교육인적자원부는 초상집 분위기다.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만과 언론의 비판이 이어지자 고위층이 “교육부는 도대체 뭘 하는 곳이냐”고 질책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최근 ‘과외비 실태 조사’와 ‘교육정책 현안에 대한 학교 현장 실태 조사’를 발표하면서 불리한 내용은 걸러내고 유리한 부분만 골라 보도자료를 만들어 ‘너무 속 보인다’는 지적을 받았다.

교육부는 총과외비가 4.1% 감소한 점만 강조하고 소득 양극화로 서울 강남지역은 과외비가 전국 평균보다 3배나 되는 등 고액 과외가 증가한 것을 ‘일부 계층의 문제’로 치부했다.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 간다”면서 추진한 ‘2002 대입제도’가 교육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든다는 응답이 65.3%나 됐지만 보도자료는 ‘맹탕’이었다.

교육부 의도와 달리 언론이 부정적으로 보도하자 청와대 등으로부터 “뭐가 좋은 내용이라고 스스로 발표하고 자폭하기로 작정한 것이냐”는 질책이 쏟아졌다고 한다. 실무자도 곤욕을 치렀고 이 연구를 수행한 한국교육개발원에도 불똥이 튀었다. “정부출연기관이 이래서야 되겠느냐” “어떻게 연구과제를 맡기겠느냐”는 등 은근한 ‘압력’도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한완상(韓完相) 장관이 취임한 뒤 임명한 비서실의 실장과 서기관은 최근 교체됐거나 교체될 예정이고 학교정책실의 한 과장이 ‘대기발령’ 직전까지 갔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자 분위기가 더욱 얼어붙었다.

한 장관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는 교육부 직원들이 적지 않다. 한 장관은 취임식 때 “접시를 깨자(접시를 깨더라도 일을 열심히 하자)”고 했으나 직원들은 “언제 당할지 모르니 몸조심하라” “누가 접시를 깨겠느냐”는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문제’를 틀어막는 것은 교육 위기의 해결책이 아니다. 실상을 솔직히 드러내고 국민의 동의를 얻어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상책이다.

이인철<이슈부>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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