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54)

  • 입력 1998년 2월 28일 19시 43분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122〉

사비하가 자신의 친 누이 동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오빠는 몹시 허탈해 했습니다. 그러나 심한 병을 앓고 일어난 오빠는 굳이 자신의 심정을 내색하지 않았고, 아버지가 꾸민 속임수를 가지고 아버지를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비하를 미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어쨌든 사비하는 오빠의 목숨을 구해주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런 일이 있은 뒤로 오빠는 별로 말이 없는 소년이 되었습니다.

오빠의 병이 완전히 회복된 뒤에도 사비하는 오빠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흡사 친 누이 동생처럼 오빠를 따랐고, 마음 속 깊이 오빠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오빠 또한 친 오빠처럼 그녀를 아껴주었습니다. 그러나 오빠는 저를 사랑했던 것처럼 그녀를 사랑하지는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오빠는 그녀를 여자로서 사랑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오빠는 한 이불 속에 나란히 누워 잠을 자면서도 그녀에게는 손가락 하나 대는 일이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그녀와 더불어 벌거숭이가 된 채 목욕을 하면서도 그녀의 육체에는 전혀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오빠는 사비하를 그야말로 친 누이 동생처럼 대했던 것입니다.

오빠와 사비하가 흡사 친 남매처럼 지내는 사이에 어느덧 오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세월과 함께 사비하는 날로 성숙해 갔습니다. 젖가슴은 더없이 풍만해지고, 허리는 잘록해지고, 엉덩이는 크고 둥글어지고, 다리는 매끈하고 날씬해졌습니다. 세상의 어떤 남자라 할지라도 한번 그녀를 보았다 하면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처녀로 사비하는 자라났던 것입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처녀로 성숙한 사비하를 보고 아버지는 마음 속으로 몹시 흐뭇해하면서 이제 곧 오빠와 정식으로 결혼을 시켜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만한 미모를 가진 처녀라면 며느리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느 날 아버지는 오빠를 불러 말했습니다.

“아들아! 이 애비는 이제 나이가 들어 살날도 그리 많이 남지는 않은 것 같구나. 죽기전에 한가지 소원이 있다면, 손자를 안아보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사비하와 정식으로 결혼을 하도록 하라. 게다가 나는 일찍이 사비하와 한 약속도 있다. 장차 너희들이 성인이 되면 정식으로 결혼을 시켜주겠다고 말이다.”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자 오빠는 당황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은 그럴 생각이 없어요. 사비하는 아직 완전히 자라지 않았으니까요.”

“아직 완전히 자라지 않았다고? 그렇지만 얘야, 사비하는 벌써 열일곱 살이란다. 여자 나이 열일곱이면 한창 좋을 때란다.”

“그렇지만 사비하는 제 눈에 아직 어린아이 같은 걸요. 게다가 저는 아직 결혼할 마음이 없고요.”

이렇게 말은 했지만 오빠는 마음 속으로 제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굳이 겉으로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때까지도 오빠는 저를 못잊어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아름다운 처녀를 두고 아직 결혼할 마음이 없다니?”

아버지는 혼자말처럼 중얼거렸습니다. 내심으로는 뭔가 찜찜해 하면서 말입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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