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공포의 댓글창 폐지 환영… 악플 대신 생산적 의견 모니터링”[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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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연예뉴스 댓글 폐지 이후

‘○○씨 솔직히 일반 시청자 눈에는 매번 똑같음. ㅠㅠ 변신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거 인정하고 다음 작품 잘 선택하시길.’ ‘△△ 배우님 대사 하나하나 표정 하나하나 고민하는 거 보여요. 배우들 합이 좋아 보이는 만큼 시청률 따라줘야 하는데 안습.’

S엔터테인먼트사 홍보마케팅팀의 최근 가장 중요한 업무는 소속 배우가 출연하는 방송프로그램이 시작하면 해당 프로그램의 실시간 채팅방인 네이버 ‘실시간 톡’을 확인하는 일이다. 동시간대 방영하는 드라마 2편에 소속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어 팀원 7명을 각각 3명, 4명으로 나눠 맡은 작품의 실시간 시청자 반응을 탐색한다. 이 회사 A 실장은 “‘실시간 톡’은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 반응을 기사 댓글과는 달리 방송이 나가는 동안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며 “배우의 연기에 대한 지적과 드라마 전반에 대한 반응을 살필 수 있어 댓글보다 생산적인 피드백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지난달 5일 연예 섹션의 뉴스 댓글을 폐지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앞서 카카오도 지난해 10월 포털사이트 다음의 같은 댓글을 잠정 폐지하고 인물 키워드 관련 검색어도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난 가수 설리(본명 최진리)가 악성 댓글(악플)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악플은 사회적 문제라는 공론화가 이뤄지며 촉발됐다.

○ “댓글 폐지, 오히려 다행”

“옛날에는 인터넷 기사의 스크롤만 내리면 댓글을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댓글을 못 달게 바뀌었더라고요.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걸그룹 EXID의 하니는 최근 유튜버 ‘릴카’ 채널에 나와 악플에 대한 심경을 털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특히 하니는 이날 악플 대처법으로 “안 보는 방법이 최고”라고 씩씩하게 말해 팬들의 응원과 격려를 받았다.

포털의 연예 기사 댓글이 사라지자 소속 연예인들에게 쏟아지던 악플에 시달리던 연예기획사와 홍보회사, 콘텐츠제작업계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다음이 댓글을 폐지한다고 발표했을 때 “그럼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연예인이나 프로그램의) 반응을 물어봐야 하나” 고민하던 업계 관계자들도 당장 눈에 보이는 악플을 피할 수 있고, 더 생산적인 피드백을 얻을 수 있다며 환영한다. 여론 수집 도구로서 댓글이 주는 효과보다, 악플이 연예인뿐 아니라 콘텐츠 제작진에게까지 끼치는 악영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악플은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심하게는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정신적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 연예인의 가족 문제가 불거진 사건이 있었어요. 진실이 가려지기도 했고, 오해에서 비롯된 악플을 엄청나게 받았죠. 실제 상황을 알지 못하는 남의 이야기가 연예인 본인에게는 큰 비수로 돌아왔습니다. 그런 댓글은 없는 것이 나아요.”(T엔터테인먼트사 이사)

“안타깝게 떠난 설리와 구하라 같은 친구들의 부고 기사에까지 악플이 달린 것을 보고 ‘제정신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안 보면 된다고들 하지만 ‘분홍색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고 해도 그걸 떠올리는 게 사람 심리잖아요. 댓글이 여론의 전부는 아니에요. 결정적 피해를 줄일 수 있어 다행입니다.”(영화제작사 K 대표)

“어떤 댓글은 언어폭력 수준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어요. 특히 여성 연예인에 대한 얼굴이나 몸매 평가, 성적인 악플을 생각하면 댓글 창이 없어진 게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B엔터테인먼트사 실장)

○ “생산적 의견에 더 귀 기울이게 돼”

연예인의 활동(노래 영화 드라마)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파악하는 수단의 하나였던 댓글 창이 사라져 다소 불편하긴 하지만 다른 통로가 많아 문제없다고도 입을 모은다.

매니지먼트사나 홍보회사 등은 유튜브나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포털사이트의 공식 포스트를 비롯해 다양한 플랫폼으로 대중의 반응과 트렌드 변화를 확인한다.

한 영화배급사 관계자는 “개봉 예정 작품의 예고편 영상을 내놓고 나서 과거에는 관련 기사 댓글부터 살펴봤지만 지금은 유튜브와 영화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 인스타그램 같은 SNS의 반응 등 다양하게 관찰하고 있다”며 각 플랫폼마다 이용자 성격이 달라서 더 풍부한 의견을 취합할 수 있다. ‘댓글이 곧 민심’이라는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고 말했다.

맹목적 비난이 아니라 진짜 팬들이 보내는 생산적인 비판에 더 집중하게 됐다는 의견도 있다. B매니지먼트사는 연예 기사 댓글이 사라진 뒤 회사 e메일로 오는 팬들의 반응을 더 꼼꼼히 확인하고 분석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e메일을 보내는 팬들은 우리 회사 소속 연예인이 진심으로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어 무조건 칭찬 일색은 아니다. 이들의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비판과 의견을 참고하는 것이 댓글보다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대표 포털들이 연예 뉴스의 댓글을 없앤 것은 악플로 인한 연예인 인격 모독과 명예 훼손의 정도가 표현의 자유와 공론장 기능을 해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해서다. 공익성을 바탕에 둔 정치, 사회, 경제 뉴스 등과는 달리 연예 뉴스는 연예인 개인을 다루는 데다 이들의 사생활을 과도하게 파고든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댓글 서비스로 트래픽(데이터 전송량) 증가를 유도해 수익을 늘리는 것보다 악플을 막아 공익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고 결정한 것이다.

유봉석 네이버 서비스운영총괄은 19일 “기술적 노력만으로는 악플이 가하는 연예인의 고통을 해소하기에 부족하다고 인정하며 서비스의 구조적 개편이 완료될 때까지 연예 뉴스 댓글을 닫기로 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유 총괄은 “이 결정은 사용자 표현의 자유이자 양방향 소통이라는 가치를 지켜야 하는 인터넷사업자로서 내리기 어려웠지만 그만큼 책임과 사명감을 갖고 책임 있는 소통의 문화를 만들 수 있도록 온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댓글 폐지의 풍선효과

연예 뉴스 댓글창이 사라졌다고 ‘악플러(악플을 습관적으로 다는 사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같이 댓글을 달 수 있는 창이 남아 있는 공간이라면 이들 악플러는 그쪽으로 더 옮겨가 활동한다. 이른바 연예 뉴스 댓글 폐지의 풍선효과다.

포털의 댓글 창이 사라지면서 악플러들은 자신의 ‘분노’를 연예인의 개인 SNS에 직접 올리거나 소속사 공식 사이트, SNS 계정, 전화 등으로 표출한다. S엔터테인먼트사는 최근 소속 연예인이 논란의 중심이 되자 밀려드는 전화에 진땀을 빼야 했다. 논란에 제대로 대처해 이 연예인을 보호하라고 요구하는 진짜 팬들의 전화와 이 연예인과의 계약을 해지하는 등 엄정하게 조처하라고 요구하는 전화로 사무실 업무가 마비되다시피 했다.

K엔터테인먼트사 관계자는 “소속사가 관리하는 인터넷 포스트나 연예인의 인스타그램 등으로 옮겨가 과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움직임이 늘었다. 악플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말했다. 다만 포털 댓글과는 달리 회사의 공식 유튜브, 포스트, SNS 계정은 악플이 달리면 즉시 삭제하거나 악플러로 추정되는 특정 아이디를 차단할 수 있어 관리가 훨씬 수월하다.

○ 악플 감소-건설적 피드백 증가 선순환하려면

온라인 트래픽을 측정하는 업체인 코리안클릭이 지난달 16∼22일 측정한, PC를 통한 네이버 TV·연예 섹션 이용자수는 약 116만 명이다. 연예 뉴스 댓글을 폐지하기 직전 주(2월 24일∼3월 1일)의 약 124만 명, 댓글을 폐지한 주(3월 2∼8일)의 111만여 명과 비교해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의 댓글은 사라졌지만 개인 SNS 등으로 관련 기사를 공유하며 의견을 나누는 움직임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또 유튜브에 익숙한 10, 20대를 중심으로 좋아하는 연예인 콘텐츠를 동영상으로 소비하는 움직임은 이미 대세가 됐다. 포털 연예 섹션에는 기사는 물론 엔터테인먼트사에서 제공하는 연예인 관련 포스트와 방송 클립 같은 다양한 콘텐츠가 어우러져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여전히 댓글을 달 수 있어 팬과의 소통이 어떤 형태로 유지될지 관심사다.

콘텐츠 업계는 댓글 폐지가 생산적 의견 증가로 이어지고 이것이 선순환하려면 향후 댓글 관련 후속 조치와 포털 연예 섹션의 단계적 변화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중의 관심과 환호를 자양분으로 하는 콘텐츠업계와 그 사이에 독버섯처럼 숨은 악플은 서로 쉽게 떼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네이버 관계자는 “선호하는 연예인과 그들이 등장하는 콘텐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 공감을 얻으려는 움직임은 댓글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계속되고 있다”며 “악플의 부작용을 줄이면서 콘텐츠를 즐기는 방식을 어떻게 다양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서현 baltika7@donga.com·김재희 기자
#연예뉴스#댓글 폐지#악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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