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미뤄져 스텝 꼬인 선수들… 창의적 1년 계획표가 승부 가른다[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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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도쿄 프로젝트’ 문제 없나요?

한국 유도 국가대표 선수들이 1월 충북 진천선수촌 웨이트트레이닝장에서 밧줄을 타고 오르는 훈련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한국 유도 국가대표 선수들이 1월 충북 진천선수촌 웨이트트레이닝장에서 밧줄을 타고 오르는 훈련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조응형 스포츠부 기자
조응형 스포츠부 기자
2020년 7월로 예정됐던 도쿄 올림픽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1년 연기됐다. 사상 첫 연기 사태를 맞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각국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종목별 국제경기단체(IF) 등은 ‘2021 도쿄’에 따른 새로운 타임테이블 짜기에 분주하다. 선수들 역시 올해 7월에 맞춰 끌어올린 신체 리듬을 재설정하고 1년 뒤를 대비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후폭풍은 만만치 않다. 이번 연기로 일본은 6400억 엔(약 7조3900억 원)에 달하는 경제 손실을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올림픽·패럴림픽위원회(USOPC) 역시 2억 달러(약 2470억 원) 규모의 적자를 떠안게 됐다. 영국 조정 국가대표 톰 랜즐리(35)는 “도쿄 올림픽을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2021년은 내게는 너무 멀리 있다”며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한국 스포츠에도 올림픽 연기의 파장은 작지 않다. 대한체육회는 국가대표 지원 예산안을 전면 재수립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체육회는 올해 올림픽 대표 선수단 지원 예산으로 150억 원가량을 편성했었다. 양궁, 사격 등 경기단체들은 국가대표 선발전 일정을 새로 조정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아직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하지 못한 종목의 선수들은 달라진 규정이 언제 공개될지 몰라 답답한 심정이다.

○ 더 멀게만 느껴지는 도쿄 가는 길

국내 대표 선발전 일정이 불투명해진 종목의 선수들은 훈련 스케줄 문제로 고민이 많다. ‘태극마크 달기가 올림픽 금메달 따기보다 어렵다’는 평을 듣는 양궁은 대표 선수 선발 과정이 코로나19 사태로 전면 중단됐다. 한국 양궁은 지난해 6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녀 3장씩 총 6장의 올림픽 출전 티켓을 확보했다. 1, 2차 대표 선발전을 치른 대한양궁협회는 3차 선발전과 평가전을 통해 올림픽에 출전할 남녀 3명씩을 선발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와 올림픽 연기에 따라 선발 과정 일정이 올스톱됐다. 대표 선발전을 1차전부터 다시 치를지, 3차전부터 이어서 진행할지 아직 미지수다. 오선택 양궁 대표팀 총감독은 “선발전 일정이 불투명해 선수들의 집중력이 떨어졌다. 올해 하반기로 예정된 월드컵과 아시아선수권 개최 여부에 따라 3차 선발전만 치러서 하반기 대회에 출전할 8명을 추릴지, 1차 선발전부터 새롭게 진행할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전권을 아직 획득하지 못한 종목의 선수들은 더욱 애가 탄다. 대한체육회에 따르면 한국은 야구(24명), 남자 축구(18명), 양궁 6명(남녀 3명씩), 사격 14명(남자 6명, 여자 8명), 탁구 10명(남녀 5명씩) 등 19개 종목에서 157명이 올림픽 출전 티켓을 획득했다. 203명의 선수가 출전했던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과 비교하면 20∼30% 선수들이 아직 출전권을 따지 못한 셈이다.

레슬링은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차로 출전권을 배분한 뒤 이후 출전권 레이스가 중단됐다. 지난달 중국 시안에서 개최될 예정이던 도쿄 올림픽 아시아 쿼터 대회가 코로나19 여파로 취소되면서 출전권을 획득하지 못한 선수는 올림픽 이전에 출전권 쿼터 대회부터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박치호 감독은 “이미 출전권을 획득한 선수는 내년 올림픽만 바라보고 준비하면 되지만 아직 출전권을 따지 못한 선수는 언제 열릴지 모를 쿼터 대회를 준비하느라 체중 조절 등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선수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다 보니 훈련에도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도쿄 올림픽을 마지막 대회로 생각하고 온 힘을 쏟았던 베테랑 선수들에게는 연기 여파가 더욱 크다. 신체 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남은 1년 3개월간 기량을 유지하기 위해 몇 배의 노력을 해야 한다. 윤승현 아주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30대 후반 선수들은 손상에 대한 회복이 늦을 수 있다. 근육에 부하를 주고 이를 회복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컨디셔닝이 되는데 회복이 늦어지면 미세 손상이 누적돼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77kg급에 출전하는 ‘레슬링 간판’ 김현우(32)는 레슬링 선수 중에서는 최고참 축에 속한다. 레슬링은 보통 20대 중후반에 신체 능력이 정점을 찍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치호 그레코로만형 대표팀 감독은 “32세에 올림픽에 나서는 것과 33세에 나서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레슬링은 체급 경기이기 때문에 성공적인 체중 감량이 경기력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30대 선수는 20대 선수와 달리 체중 조절이 쉽지 않아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 ‘잃어버린 1년’ 되지 않으려면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35·미국)는 올림픽 연기로 선수들이 우울감, 무기력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펠프스는 ESPN과의 인터뷰에서 “원래대로라면 모든 준비가 끝나고 작은 부분만 조정하는 시기다. 예상치 못한 휴식기가 찾아오면서 선수들이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는 선수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올림픽 연기로 인한 선수들의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상당할 것이다. 6월까지 종목별 선수들이 모두 진천선수촌에 입촌한 뒤에 기존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확대해 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선수들 앞에 놓인 새로운 1년이 ‘잃어버린 1년’이 되지 않으려면 선수 스스로 도쿄 올림픽까지의 계획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유승민 IOC 선수위원은 “(올림픽 1년 연기는) 모든 선수가 처음 겪는 상황이다. 짜여진 계획에 익숙한 선수들이 많지만 지금은 초유의 사태인 만큼 스스로 창의적인 훈련 계획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자신만의 1년짜리 루틴을 다시 설계하고 적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무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인 만큼 쉽지는 않겠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치르는 선수에게는 다시는 없을 성장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스포츠심리상담 전문가인 한덕현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감독과 코칭스태프, 팬에 의한 평가가 익숙한 선수들이 많다. 하지만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시기에는 주위에서 상황을 정확히 진단해 주기 어렵다. 따라서 스스로 자신의 몸 상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에 맞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교수는 “올림픽을 지나치게 의식해서 결과에 집착하기보다는 올림픽 자체를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과정의 일부로 바라보는 것이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 도쿄 올림픽 5개월 후 베이징 겨울올림픽

올림픽 연기는 각국 선수단의 재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올림픽 때 최대 규모 선수단을 운영하는 USOPC는 2억 달러 규모의 적자를 보게 됐다. 이는 TV 중계권료에 전체 예산의 40%를 의존하는 독특한 구조 때문이다. USOPC는 여름·겨울 올림픽이 열리는 2년 간격으로 미국 내 올림픽 독점 중계사인 NBC 유니버설로부터 중계권료 명목으로 지원금 2억 달러씩을 받는데, 올해 도쿄 올림픽 중계가 무산되면서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

대한체육회는 예산 대부분을 정부 지원금으로 충당하는 만큼 USOPC와 같은 직접적인 적자는 발생하지 않는다. 대한체육회는 올해 편성된 150억 원 규모의 올림픽 대표 선수단 지원 금액에 대해 경기단체별로 불용액을 조사하고 내년 예산에 재편성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도쿄 올림픽 연기가 불러올 ‘도미노 현상’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21년에 세계선수권대회 일정을 계획했던 국제경기단체들은 이를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 육상선수권은 이미 2022년 7월로 일정을 바꿨고, 수영선수권도 같은 해 5, 6월로 일정 변경을 검토 중이다.

9월 패럴림픽이 끝나고 나면 불과 5개월 앞으로 다가오는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을 준비할 기간도 빠듯하다. 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은 대한체육회 차원의 ‘올림픽 이후’까지를 고려한 로드맵 마련을 강조했다. 윤 원장은 “지금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각종 테스트 이벤트를 열지 못하는 것처럼, 베이징 겨울올림픽 때도 도쿄 올림픽을 비롯해 다양한 사안이 겹쳐 준비 작업을 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체육회가 주도해서 여러 시나리오를 짜두고 이를 종목별 경기단체들과 공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응형 스포츠부 기자 yesbro@donga.com
#도쿄 올림픽#출전권#휴식기#베이징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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