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이서현 동아일보 뉴스룸지원팀 이서현 기자 공유하기 baltika7@donga.com

안녕하세요. 이서현 기자입니다.

기사 제보
최신 순
[광화문에서/이서현]코로나발 도농 간 학습 격차… 세밀히 분석해야 대안 나온다강원도 군 단위 지역에서 초등학생 남매를 키우는 A 씨. 이웃 중에는 아이들이 중고등학교로 진학할 무렵 강원도 내 강릉시나 춘천시, 원주시로 이사를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초등학교도 집에서 수 km 떨어져 있는 데다 보습학원이라도 보내려 하면 학교보다 더 먼 면사무소 근처까지 직접 운전을 해서 보내야 한다. 과외 교사를 구하려고 해도 주변에 대학생이 없다. 농사일에 바쁜 부모들을 대신해 학교가 영어, 예체능 등 방과후 수업을 제공하지만 교육열이 있는 부모들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한다. 지방 대도시 학부모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남 여수시의 학부모 B 씨는 아이들의 이번 여름방학을 앞두고 고민이 깊다. 틈만 나면 아이들과 여행을 즐기던 그가 올해 행선지로 고려하는 곳은 다름 아닌 서울의 ‘대치동 학원가’다. 수도권 주요 학군 지역 아이들과 대입에서 실력을 겨룰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13일 발표한 2021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결과를 보면 도농(都農) 간 격차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더욱 두드러져 지방 학부모들이 말하는 ‘부족한 마음’, ‘불안한 마음’을 짐작하게 한다. 중3, 고2 학생을 대상으로 치러진 국어 수학 영어 평가 결과를 보면 대도시와 읍면 단위 지역 학생 간 학습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코로나19를 기점으로 확연히 차이 나기 시작한 중위권 이상 학생 비율은 지난해 중3, 고2 모두 대부분 과목에서 그 격차를 더욱 키웠다. 하위권 학생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중3 수학에서 기초학력 미달인 ‘수포자’ 학생들의 비율이 대도시는 9.6%였던 반면 읍면 단위는 16.4%에 이르렀다. 고2 국어와 영어를 보자. 2019년만 해도 이 과목들의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은 대도시에서 오히려 더 높았다. 그러나 지난해 평가에서 이 비율은 역전되거나 비슷해졌다. 코로나19로 어수선한 시기 학습 동기를 부여할 동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읍면 단위 학생들은 사교육 등 대안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나온 2020년 학업성취도 결과를 통해 코로나19로 인한 학습 결손이 확인된 이후에도 교육부는 ‘등교 확대’ 방침을 반복할 뿐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등교 확대’는 읍면 단위 지역에는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었다. 이들 지역은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수도권에 비해 낮게 유지되어 등교 수업이 상대적으로 원활히 이뤄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등교 수업이 유지됐는데도 성취도가 하락한 이유는 무엇인지, 학습 격차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근본적으로 점검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교육부는 이번 결과를 발표하며 “코로나19로 인한 교육 결손과 격차는 긴 안목으로 국가적 역량을 모아 풀어 나가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코로나19 시기 발생한 격차의 원인을 더욱 세밀하게, 분석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 사는 학생들에 대한 맞춤 지원이 가능할 것이다. 8월 발표될 기초학력 보장 대책에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내용이 담기기를 기대한다.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2022-06-16 03:00
당장 급한 게 ‘애티켓’일까… 저출산 해법, 우선순위 정하자[광화문에서/이서현]‘육아의 신’ 오은영 박사가 출연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공익 광고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아이가 식당에서 소란을 피워도, 공원에서 뛰다가 낯선 사람의 옷에 음료를 쏟아도 ‘괜찮다’라고 말해주라는 ‘애티켓(아이+에티켓)’을 강조하는 내용 때문이다. “아이에 대한 배려가 저출산 해결의 시작”이라는 의견과 “부모의 사과 없는 배려는 문제”라는 의견이 맞선다. 그러다 결국 이런 비판까지 등장했다. “애티켓이 저출산과 무슨 상관이야?” 아동이든, 노인이든 사회 약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성숙한 사회의 기본 조건이다. 그래도 의구심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지난해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압도적 꼴찌인 0.81명. 더 무시무시한 예상은 올해 합계출산율이 작년보다 더 나빠져 역대 최저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 해결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애티켓’인가? 아동을 포용하는 사회가 되면 출산율은 자연스럽게 늘어날까? 국회 입법조사처가 17일 내놓은 보고서 ‘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4차 기본계획)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읽어보면 ‘애티켓’이 좋은 내용임에도 왜 타깃을 잘못 정한 캠페인인지, 막대한 예산을 쏟는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어째서 ‘백약이 무효’라는 평가를 받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입법조사처는 112쪽에 이르는 보고서를 통해 4차 기본계획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주된 내용은 한마디로 정책의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서두에 “모든 국민의 ‘삶의 질 제고’라는 패러다임은 상이한 정책 대상과 정책 목표를 모두 원칙 없이 망라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썼다. 보고서는 우선 235개에 이르는 방대한 세부 과제부터 정리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중 우선되어야 할 것은 결혼과 출산이 어디까지나 선택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모든 세대를 지원할 것이 아니라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의사가 있는 청년’부터 정책 타깃을 좁혀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정책 대상과 세부 과제의 우선순위를 정한 뒤에야 부모보험, 보육교사 처우 개선, 법정 근로시간 준수 등 시급한 현안부터 해결할 수 있다. 인구 절벽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우리는 지난 2년 코로나19가 ‘산아 제한’ 정책처럼 기능하는 시기를 경험했다.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 뉴욕타임스에는 지난달 말 ‘애를 더 낳으라고? 지난 2년을 보냈는데도? 됐어요’라는 발칙한 제목의 글이 실렸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고, 공교육의 공백을 겪으며 양육 전쟁을 치른 부모들의 이야기, 그들이 팬데믹을 겪으며 계획하던 아이도 포기하는 과정은 한국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뉴욕타임스 칼럼은 “나는 (아이 대신) 고양이를 들일 것이다”로 끝을 맺는다. 큰 예산을 무차별하게 소진하기보다, 널리 공감받지 못하는 캠페인을 지속하기보다, 고양이 대신 아이를 선택할 용기를 기꺼이 감수할 이들을 향해 정책 대상을 좁히는 것.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는 거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2022-05-21 03:00
비판받는 무상 태블릿 ‘디벗’ 보급보다 중요한 건 콘텐츠[광화문에서/이서현]서울시교육청에서 시내 모든 중학교 1학년생에게 태블릿을 한 대씩 나눠준다. 디지털 역량을 향상시킨다는 ‘디벗’(디지털과 친구를 의미하는 ‘벗’의 합성어) 사업이다. 교육청은 학생용으로 약 7만2000대의 스마트 기기를 다음 달 초까지 보급할 계획이다. 첫해인 올해는 중1 학생들이 대상이며 2025년부터는 초등 5학년부터 고3까지 서울시내 모든 학생이 스마트 기기를 1대씩 지급받아 학습에 활용한다. 기기 지급이 본격 진행되자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만 2년 내내 온라인 수업을 하느라 아이들이 집에서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각 학교 방침에 따라 태블릿을 집에 가져가서 학습에 활용할 수도 있다. 게임 등 접속을 차단하는 프로그램이 깔려 있다지만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집에서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것도 답답한데, 이제 학교에서 태블릿까지 나눠준다니 디지털 기기에 과다 노출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이 사업을 위해 서울시교육청은 예산 600억 원을 편성했다. 당장 올해 6월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교육감선거를 의식한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원격수업이 일상화되며 많은 학생들이 가정에 이미 스마트기기를 보유한 마당에 예산을 들여 무상으로 태블릿을 지급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이달 14일 ‘디벗’ 보급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3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문제는 아직까지 이 기기로 활용할 콘텐츠 구성이 옹색하다는 점이다. 교육청은 태스크포스를 통해 적응 교육 프로그램 11종 등을 개발하고, 학급회의 등 학생 자치활동과 해외 학생들과의 화상회의 등에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이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학생 1명당 기기 1개를 서둘러 보급할 일인지 의구심이 남는다. 일부에서는 코로나19 시기 더욱 벌어진 학생들 간의 격차를 들어 스마트기기 지급이 더 빨랐어야 했는데 오히려 ‘뒷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코로나19 시기 발생한 학습 격차가 아이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회복 불가능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급의 전제조건은 어디까지나 학습 격차를 좁힐, 첨단 기기에 걸맞은 콘텐츠다. 코로나19는 우리나라 디지털 교육 역량의 민얼굴을 드러냈다. 2년 전 전면 원격수업 초창기 웃지 못할 접속 오류 사태나 수업 시간 때우기용인 빈곤한 콘텐츠는 정보기술(IT) 강국이라는 말이 무색한 수준이었다. 학교 현장에서 일상 회복이 시작되는 지금이야말로 그동안 겪은 시행착오와 어렵게 쌓아 올린 노하우를 발판으로 공교육의 경쟁력과 디지털 교육 역량을 기초부터 정비할 시기다. 조 교육감과 교육청이 선거를 의식했다는 ‘포퓰리즘 논란’을 불식시키고 싶다면 콘텐츠로 증명하라. ‘무상 태블릿’이 선심성으로 보급된 빈 깡통으로 남을지, 디지털 교육의 전환점으로 남을지는 학생과 학부모가 판단할 것이다.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2022-04-23 03:00
코로나 학교 실종시대, 아이들에겐 교사가 전부[광화문에서/이서현]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학교가 실종된 지 벌써 3년째. 이달 초 개학 이후 3주 만에 유치원생을 포함한 학생 누적 확진자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교사 확진자도 급증하면서 학교마다 대체 교사를 구하느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개학은 했지만 교실 구성원 전체가 한자리에 모이는 날은 정작 손에 꼽을 법한, 비정상적인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개학 첫 달 어수선한 학교의 상황을 취재할 때면 학부모들의 비판은 언제나 교육부의 무책임하고 일관성 없는 행정으로 향했다. 달라진 수업 환경에 대처하지 못하는 교사들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지만 일부 학부모들이 “그래도 선생님이 책임감 있는 분이라”, “선생님이 챙겨 주신 덕분에”라고 말을 맺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공교육의 경쟁력이 땅에 떨어졌다는 비판 속에서도 어떤 교사들은 여전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교실이 무의미해질수록, 친구들과 단절될수록 아이들에게는 선생님이 학교 그 자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3년 차에 접어들어도 혼란스러운 코로나19 확산은 아이들과 학부모뿐 아니라 교사들도 지치게 만든다. 교육부의 모호한 지침 아래 교사들은 만 2년째 교육과 방역의 책임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부터 속속 도착하는 반 아이들의 확진 소식을 들으며 출근해 아이들에게 배부할 자가진단키트 수십 개를 일일이 직접 소분한다. 격리된 아이와 등교한 아이들이 실시간으로 같은 품질의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EBS급 수업을 제공하라’는 주문도 떨어진다. 같은 반 안에서도 2년간 눈에 띄게 벌어진 아이들 간 학습 격차를 챙기는 것도 교사의 몫이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책임감을 가지고 고군분투하는 교사들이 학교 전체에 대한 신뢰를 지탱한다. 경기 안성시의 한 학부모는 “반 아이가 원격수업에 계속 접속을 하지 않자 선생님이 직접 집에 찾아가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챙겨서 수업에 참여시킨 적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의 또 다른 학부모는 “새 학년 첫 주부터 아이가 확진되어 격리됐는데 선생님이 매일 진도를 안내하고 교과서도 언제든 볼 수 있게 학교 보안관실에 맡겨 주시더라”며 “격리돼 있지만 학교와 단절되지는 않았다는 걸 알려주려 애쓰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최근 출간된 ‘나의 덴마크 선생님’은 학교와 교직의 존재 이유에 대한 책이다. 지리산 대안학교 교사였던 저자가 불안과 우울로 삶의 길을 잃었던 시절 떠올린 곳은 다름 아닌 ‘학교’였다. 그는 덴마크의 시민학교에 늦깎이 학생으로 입학해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 교사들과 질문을 던지고 경험을 공유한다. 그 수업들이 켜켜이 쌓이며 한줄기 빛이 비추는 것 같은 순간, 그의 입에서 이런 안도의 말이 나온다. “이 세상에 선생님이 있는 게 좋다.” 더 많은 아이들이 “이 세상에 선생님이 있어서 다행이다”라며 안도하는 날이 올까. 학교가 사라져가는 시대, 그 답은 사명감을 가진 교사들만이 쥐고 있을 것이다.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2022-03-25 03:00
[광화문에서/이서현]‘최장수’가 오명 안되려면 학교와 학생의 안전 지켜야1243일. 25일 기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총 재임 일수다. 역대 가장 오래 재임한 이규호 전 문교부 장관의 재임 일수가 1241일(1980년 5월 22일∼1983년 10월 14일), 유 부총리는 건국 이후 최장수 교육장관이라는 기록을 썼다. 영광스러운 기록과 달리 최근 학교 현장에서는 어느 때보다 교육부와 부총리에 대한 비판이 들끓는다. 개학을 불과 한 달 남기고 오락가락 달라지는 등교 지침 탓이다. 교육부는 21일 ‘새 학기 오미크론 대응 비상 점검 지원단’을 가동한다며 3월 2일 개학 후 2주간은 각 학교에 원격수업 전환을 권고한다고 했다. 정확히 2주 전인 이달 7일 ‘새 학기 학사 운영 방안’에서 전면 등교수업을 원칙으로 강조하더니 180도 달라진 원칙에 학부모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학교 현장의 불만은 원격수업이 아니다. ‘권고’라는 말로 모든 책임을 일선 학교에 떠넘기는, 원칙 없이 우왕좌왕하는 교육부에 쏠려 있다. 정부조차도 3월 초 하루 신규 확진자가 최대 27만 명까지 나올 것으로 예측하는 상황에서 마음 편히 자녀들을 매일 학교에 보내자고 주장할 학부모가 어디 있을까. 서울 성동구의 초등 학부모 이모 씨는 “교장이 교육부 지침이 나오자마자 3월 초 2주간 정상 등교를 통지했더니 학부모들 사이에 ‘용자(勇者)’로 불린다. 교장을 ‘용자’로 만드는 교육당국과 방역당국이 무능할 따름”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학부모는 “방역을 지자체와 보건소로 쏙 떠넘긴 방역당국처럼 교육부가 책임을 학교로 떠넘긴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했다. 교육부와 유 부총리가 ‘양치기 소년’이 된 것은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교육부는 고비마다 우왕좌왕하며 학부모들의 신뢰를 잃었다. 2020년 코로나19 첫해는 온라인 수업 시행착오와 EBS 접속 장애로 학부모들이 속을 끓였다. 코로나19 2년 차였던 지난해 하반기에는 등교지침을 6개월간 다섯 번이나 수정했다. 소아 청소년 백신 접종이 자율임을 거듭 강조하더니 학원에 방역패스를 적용한다며 ‘백신 강제’ 논란을 일으켰다. 학교 확산세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경기도지사 출마를 위해 사퇴한다는 설이 파다하자 유 부총리는 “온전한 학교의 일상 회복을 위해 교육부 장관으로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 대통령과 함께 마지막 소임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부총리의 마지막 소임은 학교와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개학을 불과 1주 앞두고 신규 확진자 3명 중 1명이 19세 이하 아이들인 엄중한 상황이다. 오미크론의 확산세는 정부가 예측한 최악의 시나리오보다 더 나쁘게 움직이고 있다. 일선 학교에 방역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원칙과 책임으로 대응하는 것이 교육부에 대한 신뢰를 다시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재임 시절의 공과(功過)는 임기 절반을 할애한 학교의 코로나19 대응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최장수 교육부 장관이라는 영예로운 이름 옆에 아이들을 지키는 데 실패한 ‘최악의 교육부 장관’이라는 오명이 뒤따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2022-02-25 03:00
‘레테의 계절’에 생각하는 수능의 존재 이유 [광화문에서/이서현]겨울방학은 중요한 입시철이다. 지난해 12월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이 발표되고 정시 일정도 끝나가는 마당에 뚱딴지같은 얘기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1, 2월은 ‘레테(레벨 테스트)’ 준비를 위한 시간, 학원들은 반 배정을 위해 학생들의 실력을 측정하는 시험을 치른다. 학생들은 새 학년 진학을 앞두고 학원의 상급반 배정이나, 혹은 다른 유명 학원으로 옮기기 위해 이 테스트에 매달린다. 유명 학원의 레벨 테스트를 준비하기 위해 학생들이 ‘학원을 위한 학원’에 다니거나, 레벨 테스트용 과외를 따로 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 일이 아니다. 코로나19로 대면 수업이 불가능했던 데다 초등학교의 경우 학교에서 제대로 된 시험이 이뤄지지 않아 결국 자기 실력을 측정할 학생들은 학원으로 향한다. 이 모든 ‘레벨업’의 종착점은 결국 수능이다. 이르면 만 5세 무렵 영어 유치원 입학 테스트를 보는 경우도 있으니 아이들은 10년 넘게 온갖 시험으로 단련되는 셈이다. 수능은 이런 아이들을 평가하는 ‘끝판왕’ 시험이다. 지난해 수능 날 영국 BBC가 수능을 일컬어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 중 하나’라고 보도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10년여간 각고의 노력으로 각종 레벨 테스트를 통과하고, ‘망치면 대학뿐 아니라 직장, 결혼까지 끝이다’라는 긴장감으로 지난해 수능 시험장에 들어섰을 학생들은 과연 무엇을 겪었나. 입시는 매년 각양각색으로 논란이 됐지만 지난해 입시는 엉망진창의 종합판이었다. 헤겔 본인도 울고 갈 국어 영역 ‘헤겔의 미학’ 지문부터 문항의 전제 조건조차 맞지 않는 오류를 범한 생명과학Ⅱ까지. 결국 일부 학생들은 성적 통지 날 특정 과목이 공란인 성적표를 받아들었으며, 수시 일정은 연기되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고개를 숙이고 사퇴했다.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정답 효력 정지 신청을 낸 학생 중 한 명이 법원의 무효 결정 직후 한 말을 우리는 두고두고 새겨야 한다. “실수를 인정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노력을 어른들이 해주리라 믿었다.” 해당 문항의 오류를 지적하는 의견을 낸 김종일 서울대 유전체의학연구소장의 말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심어주는 불신은 수능 성적을 다시 매기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손해를 우리 사회에 끼칠 것이다.” 2025년 고교학점제가 도입된다. 정부가 내세운 대의는 ‘적성과 진로를 존중하는 교육’이다. 하지만 수능이 바뀌지 않으면 2025년을 살아갈 아이들 역시 학교에서 ‘경제 수학’이나 ‘진로 탐색’ 수업을 듣고 저녁에는 학원으로 향할 것이다. 레벨 테스트로 배정받은 반에서 더 높은 등급 반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압박으로 불면의 밤을 보낼 것이다. 교육부는 올해 2월까지 반복되는 수능 오류를 개선하기 위한 재발 방지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본질이 아니란 것은 우리 모두가 안다. 이제 온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우리 사회가 요구해 온 ‘수학 능력’이란 그동안 어떤 모습이었나. 입시에서 우리는 아이들의 어떤 자질을 평가해야 하는가.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2022-01-24 03:00
코로나가 던진 아픈 질문…학교는 정말 필요한 곳인가[광화문에서/이서현]학창시절 변변한 학원 하나 다니지 않고도 이른바 ‘명문대’를 졸업한 김모 씨(39).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기 전까지 그는 ‘사교육 무용론자’였다. “잘하는 애들은 알아서 잘한다”를 줄기차게 설파했던 그의 신념을 꺾은 것은 다름 아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2020년 코로나19가 발생하자마자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의 수업을 지켜보던 시절을 생각하면 그는 지금도 울화가 치민다. 선생님의 얼굴은 보지도 못한 채 EBS 화면만 줄기차게 지켜본 김 씨는 결국 1학기가 끝나자마자 아들의 손을 붙잡고 집 근처 학원으로 향했다. ‘아이를 이렇게 방치해서는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립초에 지원이라도 해 볼걸, 입학 전에 선행학습이라도 확실히 시킬걸 그랬어요.” 올해 3월, 학교는 코로나19 속 세 번째 학년을 시작한다. 팬데믹 속에 입학한 아이들은 훌쩍 자라 벌써 3학년이다. 우왕좌왕하던 온라인 수업도 어느덧 자리를 잡았고 등교 수업도 일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학부모 중에는 여전히 김 씨처럼 공교육에 대한 불신을 지우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 2 대 1, 높아야 5 대 1에 불과하던 사립초등학교의 입학 경쟁률은 2021학년도에 이어 2022학년도에 평균 10 대 1 수준까지 치솟았다. 감염 우려로 온라인 전산추첨이 이뤄지면서 중복 지원이 허용된 이유도 있지만 공립초등학교 수업을 지켜보고 화들짝 놀란 선배 부모들의 입소문 영향이 컸다. 적어도 사립초등학교에서는 온라인으로나마 수업다운 수업이 가능하다는 기대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원으로 향했다. 매 시간 방역하며 종일 수업을 제공하는 학원, 돌봄 교사를 집으로 보내주는 플랫폼 업체 덕분에 학부모들은 지난 2년을 버틸 수 있었다고 말한다. 지난해 12월 소아청소년 접종을 독려하기 위해 학원에 방역패스를 적용하겠다는 정책이 발표되자 많은 부모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아이들에게 백신을 접종시켰다. 백신을 신뢰해서가 아니라 학원이 아니면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학원조차 갈 수 없는 아이들, 생계가 빠듯해 자식 공부까지 챙길 여력이 없는 부모를 둔 아이들도 있어 학습의 격차는 2년 사이 더 벌어졌다. 교육의 역할이 전염병에 휘둘리는 사이 학교의 의미는 퇴색했다. 학교는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이 성장 과정에 맞춰 사회 규범을 학습하는 곳, 친구들과 울고 웃으며 우정을 쌓는 곳, 평생 마음에 두고 따를 선생님을 만나는 곳이 아니다. 아이들은 학원에서 세상을 배우고, 온라인 강사를 멘토 삼아 꿈을 다진다. 올해는 현장의 교사들이 2년간 겪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학교의 존재 의미를 입증해야 한다. 비록 만날 수는 없어도 아이들이 소속감을 느끼고 우정을 나눌 수 있도록 여러 아이디어를 짜낸 교사도 많다. 온라인 수업 역시 많은 노하우가 쌓였다. 부디 올해 아이들이 만날 학교는 지난 2년과 다르기를, 많은 아이들이 배움을 쌓는 곳이 되기를 기대한다.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2022-01-03 03:00
“학원, 그다음은 유치원?” 방역패스 뒤 ‘불신’을 보라[광화문에서/이서현]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내년 2월 1일부터 학원에도 방역패스를 적용한다고 3일 발표하자 주말 사이 청와대 국민청원이 이어지는 등 학부모들의 반발이 거세다. “학원 방역패스 다음은 ‘유치원 방역패스’일까요?” 서울에서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를 키우는 A 씨는 뉴스를 보고 이렇게 되물었다. 지난달 말 문재인 대통령이 5∼12세 아동 접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으니 조만간 ‘어린이집 방역패스’까지 등장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인터넷의 학부모 커뮤니티에서는 이러다 영·유아 기본접종에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포함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대한민국에서 ‘학원’의 지위는 독특하다. 사교육 시설이면서 동시에 방과 후 돌봄을 책임지는 보육시설인 곳, 학교를 매일 가지 못했던 시기에 아이들이 또래와 어울릴 수 있던 유일한 공간. 학원 다니지 않는 아이를 찾아보기 힘든 세태에 학원 방역패스 적용을 두고 부모들이 사실상 접종을 강제당한다고 인식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부모들이 반발하는 배경에는 ‘고무줄 방역’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올해 9월 소아·청소년(12∼17세) 접종을 예고할 때만 해도 정부의 기류는 분명 지금과 달랐다. 고3 학생들이 여름 단체접종을 시작했을 때도 방역당국은 조심스러웠다. 학부모들에게 소아·청소년 접종은 ‘자율’임을 거듭 밝혔다. 당시 브리핑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이 접종의 이익과 잠재적 이상 반응에 대해 설명한 것도 학부모들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었다. 교육당국도 마찬가지였다. 전면 등교 방침을 거듭 확인하며 학교가 가장 안전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미성년자에 대한 접종은 ‘권고사항’임을 강조하며 학교가 가장 안전하다고 했던 정부가 불과 접종 시작 후 두 달도 안 돼 학교가 위험하다며 사실상 ‘접종 강제’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위드 코로나’ 시행 준비와 대응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는 가운데 부모들은 정부가 방역 강화책으로 설익은 ‘학원 방역패스’를 내세웠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소아·청소년 접종이 시작되던 시기 성인들의 접종률을 높이기 위해 방역패스 등이 논의됐었다. 당시 교육당국 관계자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소아·청소년에게도 방역패스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교육받을 권리’를 내세우며 손을 내저었다. 접종 여부가 아이들에게 차별로 작용해선 결코 안 된다는 의미였다. 학부모들이 접종의 이익, 이상반응을 겪을 확률, 해외 접종사례 등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부모들은 자신보다 내 자식 몸에 들어갈 백신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부모들의 분노에 불을 붙인 것은 아이들이 방역 실패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쓰는 ‘카드’로 활용되는 것처럼 비쳤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접종률을 높이고 싶다면 그동안 정부 방역정책이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었는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 학교와 학원에서 대규모 확진자가 나올까 가장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은 방역당국도, 교육당국도 아닌 부모들이다.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2021-12-07 03:00
[광화문에서/이서현]‘미안해’라는 손 글씨만 반복할 수는 없다어린 시절 동네에 맨발로 쫓겨난 아이들이 있었다. 어떤 부모는 이따금 옷을 홀딱 벗겨 집 밖으로 내쫓았다. 아이들은 부끄러워 멀리 가지 못하고 발가벗겨진 채로 집 앞을 서성였다. 소설가 황정은은 지난달 발간한 에세이 ‘일기’에서 이런 장면을 묘사하며 ‘내 것이지만 고통은 공유하지 않는 몸’이라는 표현을 썼다. 부모의 소유물처럼 대접받는 아이들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불과 지난주에도 광주 북구에서는 행인과 자동차가 오가는 거리에서 아이를 발로 걷어차던 여성이 경찰에 입건됐다. 아동권리보장원이 발간한 2020년 아동학대 통계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학대로 사망한 아이는 총 43명. 이 중 “때리지 마세요”라고 또박또박 말할 수조차 없는 3세 이하 연령의 아이가 29명이다. 물론 이 숫자는 드러난 피해자들의 기록일 뿐 통계조차 없이 사라진 아이들은 우리 사회가 가장 부끄럽게 여겨야 할 부분이다. 국민적 공분이 일면 각종 청원과 캠페인이 뒤따랐다. 소셜미디어에 피해 아동의 이름과 함께 ‘미안해’라는 글이 이어졌다. 분노의 크기만큼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도 커진 것은 다행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지난달 조사에 따르면 성인 1000명 중 915명이 ‘아동학대에 관심이 있다’고 대답했다. 맨발로, 혹은 벌거벗겨진 채 덩그러니 길에 서 있는 아이를 보면 ‘아이가 위험에 처했다’고 느낄 어른은 이제 많아졌다. 사회의 인식은 분명 아동에 대한 체벌과 방임은 범죄라는 것을 인지하는 방향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되는 사례를 본 적이 있지만 신고하지는 않았다’는 응답이 84.7%에 이른다. ‘훈육이라 생각했다’는 이유만큼이나 많았던 것은 ‘신고가 아이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지 확신이 없다’는 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도는 아직도 국민의 정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갓난아기를 변기에 넣고 동거녀를 협박한 한 남성은 최근 항소심에서 감형 받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신고해봐야 달라질 건 없다’는 냉소는 아동학대 해결의 가장 큰 적이다. 지난달 보건복지부는 영아에서 유아로 전환되는 만 3세 아동의 소재와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청과 함께 전수조사를 시작했다. ‘이런다고 해결될까’가 아니라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울음 외에는 고통을 표현할 방법이 없는 아이들을 구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황 작가의 에세이 한 토막을 전한다. ‘어른들은 이웃에서 어린이가 울면 주의를 기울이고, 어린이가 맞고 있지는 않은지,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지는 않은지 걱정할 것이고, 주저 없이 그의 부모를 의심할 것이고, 경찰에 신고할 것이고, 최소한 공권력이 도착하는 순간까지 그 집 기척에 귀를 곤두세울 것이다. 그렇게 하는 어른이 이웃에 살고 있다는 메시지가 되어줄 것이고 그 다음을 궁금하게 여기는 어른이 되어 줄 것이다.’ 어른들이 발견해주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지금도 곳곳에 있다.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2021-11-04 03:00
[광화문에서/이서현]“오늘이 마지막일지 몰라” 엄마들의 출근길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학교 앞에 허겁지겁 내려줬다. 붐비는 도로에서 간신히 운전대를 돌려 회사로 향했지만 이미 지각은 확실했다. 간신히 사무실 근처에 도착해 숨을 돌리자 이번엔 아들의 학교에서 알림이 와 있었다. 2학년 학생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으로 전교생이 급하게 하교를 시작했으니 즉시 학교 앞으로 와 달라는 것이다. 황급히 조퇴를 한 엄마 A 씨는 그날 출퇴근길을 ‘등골이 서늘했던 순간’이라고 묘사했다. 최근 인터넷에서 ‘초등학교 교사가 본 워킹맘의 현실’이라는 글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자신을 초1 담임교사라고 밝힌 필자가 A 씨와 같은 워킹맘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고비를 조목조목 짚어 큰 공감을 샀다. 글에서 묘사된 엄마들이 일터에서 나가떨어지는 과정은 ‘커리어의 오징어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1단계: 점심 먹자마자 하교한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을 때, 2단계: 일을 그만둘 수 없어 아이를 오후 5시까지 학교 돌봄교실에 맡겨야 할 때, 3단계: 그 돌봄교실 추첨에서 탈락해 아이 혼자 학원을 전전하게 할 때, 4단계: 난이도 최상의 ‘끝판왕’. 학교 내 돌봄교실이 없거나, 매일 등교 대상도 아닌 3학년이 되어 만 9세 아이 혼자 집에서 밥을 챙겨먹고 원격수업을 들을 때. 그래서 일하는 엄마들은 오늘도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출근길에 나선다. 혹시 아이의 학교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어쩌나, 하교는 누가 해야 하나, 내가 일을 포기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되지 않을까, 오늘이 마지막 출근은 아닐까.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달 발표한 워킹맘 1000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전쟁 같은 일상이 통계로 뒷받침된다. 응답한 워킹맘 10명 중 4명 이상이 심리척도 검사에서 ‘우울 의심’ 상태였다. 코로나19 속 절반 이상(52.1%)이 돌봄 공백을 경험했고, 그중 20.9%는 돌봄 공백에 대처할 수 없었다고 한다. 출산·육아로 직장을 그만두려고 고민한 적이 있다는 응답은 63.1%였다. 이들의 평균 자녀 수는 1.64명. 이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녀 수는 2.09명이었다. 아이 둘을 낳아 잘 키우고 싶은 마음과 낳으면 아이에게 죄를 짓는 것 아닌가 하는 망설임, 그 사이에 약 ‘0.5명’이라는 간극이 있다. 일과 가정 사이를 외줄타기하며 첫째를 키워내도, 결국 둘째가 태어나면 또다시 식은땀 나는 출퇴근을 반복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정부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 코로나19 시기 퇴사한 워킹맘들의 ‘커리어 부검’을 제안한다. 넷플릭스에서 시작돼 여러 스타트업으로 전파된 ‘부검 메일(postmortem email)’ 문화는 퇴사자들이 남은 구성원에게 보내는 이메일로, 조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부검’을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통계청이 조사한 여성의 고용률은 아이를 낳고 키우기 시작하는 30대에서 급락했다. 일터에서 조용히 사라진 이 30대 여성들의 커리어 부검이 우리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지도 모른다.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2021-10-14 03:00
[광화문에서/이서현]‘그린스마트 학교’ 발표에 학부모가 분노한 진짜 이유“코로나19 이후 아이가 이제야 제대로 등교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 정 붙이고 친구도 사귀었어요. 전학이 싫어서 이사까지 미루기로 결심했는데…. 그런데 강제 전학이라니요?”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학부모 A 씨는 최근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내년도 ‘그린스마트 미래학교’(그린스마트 학교) 사업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A 씨 주변 학부모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예산 18조5000억 원이 투입되는 그린스마트 학교 사업은 이름만 보면 학부모들이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인다. 40년 된 노후 학교를 리모델링해 저탄소 에너지 자급을 지향하고, 첨단시설을 갖춘 교실을 짓는다고 한다. 그런데 어째서 학부모들은 빗속에 시위까지 하며 반대하는 것일까.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공통적으로 ‘교육청의 불통’과 ‘아이들의 안전’이라는 대목에서 언성이 높아진다. 초등학교는 아이들이 첫발을 내딛는 ‘교육기관’이다. 더구나 코로나19로 학교가 문을 닫으며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늘었다. 부모들은 안정적인 환경에서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 어느 때보다 전력투구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느닷없이 ‘낯선 학교로의 전학’을 통보받은 것이다. A 씨는 “언제 전학이 시행되는지, 전학을 가야 하는 학교가 걸어갈 수는 있는 곳인지 속 시원히 설명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유치원생 딸을 둔 B 씨는 최근 부동산시장의 혼란에도 서울 동작구의 아파트를 무리해서 매수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유는 단 하나, 초등학교다. ‘전세 난민’으로는 아이가 초등학교 6년을 안정적으로 마칠 수 없겠다는 우려가 가장 컸다. B 씨의 이사 계획은 뜻밖의 난관에 부딪쳤다. 아이가 다닐 학교가 그린스마트 학교에 선정돼 전교생이 전학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전학을 가지 않는 경우 컨테이너 형태의 모듈러 교실에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이 생소한 교실은 안전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안을 더욱 부추겼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다른 학교로 뿔뿔이 흩어져야 할 정도의 사안이라면 시간을 두고 정책을 상세히 설명한 뒤 협의하는 절차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서울시교육청은 “노후 교사 개축 사업은 본래 학부모 동의 사항이 아니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불통’으로 시작한 정책이다 보니 온갖 추측이 이어진다. ‘혁신학교 수순’이라거나 ‘고교학점제용 교실’이라는 우려는 소통하지 않은 교육청이 자초한 셈이다. 8일 교육청은 자료를 내고 조목조목 의혹을 부인했지만 이미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달 말 진행된 정책토론회의 조희연 교육감 발언을 보면 학부모들과의 간극이 보다 분명히 드러난다. 조 교육감은 “혜택이라면 혜택이다…. 21세기 학생들을 낡은 공간에서 교육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어렵게 쟁취한 사업”이라고 했다. ‘첨단’ ‘그린’ 같은 수식어에 집중하느라 정책이 길을 잃은 것은 아닌지, 아이들이 겪을 어려움은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야 할 때다. 교육정책에 다른 목적이 있어서는 안 된다. 시작과 끝은 아이들이다.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2021-09-10 03:00
고려대 OJERI, 자율운영 중점연구소 지정…“기후변화 해법 찾을 것”고려대 오정리질리언스연구원(OJERI)이 한국연구재단의 자율운영 중점연구소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는 현판식이 이달 7일 고려대 R&D센터에서 열렸다. 고려대 OJERI는 2014년 4월 민남규 회장(농화학66)이 “고려대에 세계적 수준의 연구기관을 설립해 우수 인재 유출을 막겠다”고 밝히며 50억 원의 연구기금을 약정해 설립됐다. OJERI는 우리나라 최초의 회복탄력성 연구소로 오늘날 인류가 당면하는 환경과 인구, 식량문제에 대응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한다. 현재 기후변화 회복탄력성, 지속 가능 폐기물 관리, 물 회복탄력성, 생태계 회복탄력성, 중위도 물-식량-생태계 연계 등의 5개 고유 연구단에 전임교원 23명과 전임연구교수 11명이 참여하고 있다. 올해 6월 OJERI는 한국연구재단과 교육부가 지원하는 자율운영 중점연구소로 최종 선정돼 연구비와 자율적인 운영을 지원받게 됐다. 전국 기초과학 분야 연구소 중 5곳만 중점연구소로 선정됐다. 앞으로 연구소는 매년 11억 원을 지원받아 9년 동안 ‘환경·기후 위기 대응 생태계 물질순환 기초과학’ 연구를 주도한다. 첫해인 올해 5명의 전임교수와 14명의 연구교수가 19개 세부과제를 선정해 10억 원 규모 연구를 이달부터 시작했다. 현판식에서 고려대 정진택 총장은 “지구의 기후변화는 전 인류가 당면한 문제로서 대중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해법을 찾는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우균 오정리질리언스연구원장은 “중점연구소로 지정된 만큼 우리나라 기초과학 연구 역량 강화에 기여할 수 있는 체계적인 연구자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민남규 회장은 “OJERI가 설립 후 단계별 성장을 거듭해 아시아 중심 연구소에서 이제는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연구·교육 네트워크 기관으로 발전하고 있다. 올해 자율운영형 중점연구소 선정까지 매년 좋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어 기부하는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2021-09-07 15:57
[광화문에서/이서현]2021년 ‘괭이부리말 아이들’ 코로나 시대 마지막 기댈 곳동준이네 형제는 부모 없이 산다. 엄마는 오래전 집을 나갔고, 아빠는 돈을 벌어 돌아온다더니 감감무소식이다. 형은 학교도 제대로 나가지 않더니 본드에 취해 경찰서로 끌려갔다. 동준이는 동네 청년 영호 형 집에 살면서 학교를 간다. 친구네 사정도 마찬가지다. 집을 나갔던 엄마는 돌아왔지만 아빠가 공장에서 발생한 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이 동네 아이들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골목을 배회해도 “이제 그만 집에 가자. 저녁 먹고 숙제하자”고 부르는 부모가 없다. 2021년 대한민국 어느 취약계층 거주지에 현미경을 들이댄 듯한 이 풍경은 2001년 출간된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 속 이야기다. 외환위기 직후 나라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던 시절 소외된 지역 아이들을 다뤘다. 책이 나온 지 20년이 흘렀는데도 어떤 아이들의 삶은 그 시절만큼 가혹하다. 김중미 작가가 지금 이 작품을 썼다면 이런 문장을 보탰을까. “코로나19가 터지며 동준이는 학교에 가지 못해 점심마저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라고. 코로나19는 사회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었다. 감염 우려로 학교는 문을 닫았다. 기초 ‘학력’을 걱정하는 집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취약계층의 생업은 더 쪼들려, 아이들은 집 안에서 방치됐다. 굿네이버스가 지난해 말 펴낸 ‘코로나19와 아동의 삶’ 보고서에 따르면 초등 고학년 10명 중 1명이 “코로나 이후 평일 5일 내내 보호자 없이 지냈다”고 응답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혼자 있는 비율은 더 높아졌고,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거나, 부모의 스트레스가 아동학대로 이어지는 경우도 늘어났다. 17일부터 개학이 본격 시작됐다. 교육부는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속에서도 대면수업을 확대하기로 했다. 신규 확진자 수가 연일 2000명 안팎을 오가며 방역에 대한 불안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이 시국에 어떻게 개학을 하느냐’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어떤 아이들에게 학교는 공부하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생활을 지탱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마지막 울타리이기 때문이다. 경기지역 한 초등교사는 “도심 취약계층 아이들의 경우 등교를 하지 않으면 방치될 확률이 높다. 학교에 나오면 적어도 저녁은 먹는지,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볼 수라도 있다”고 말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에게도 ‘학교’는 큰 무게를 지녔다. 청년 영호는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역시 어렵게 자랐지만 학교 안에서만큼은 보호받는 느낌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 아이들을 살뜰히 보살피는 사람 역시 학교 선생님이다. ‘교육’이라는 본래 역할에 ‘방역’까지 떠맡은 교사들의 책임감이 얼마나 무거울지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아이라도 학교 안에서 ‘보호받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면 학교와 교사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낸 것일 테다. 학교가 문을 열면 선생님과 아이들이 마스크 너머로 서로의 안부를 더 많이 묻기를, 온라인 수업 화면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아이들의 그늘을 부디 누군가는 읽어주기를 바란다. 이서현 정책사회부 차장 baltika7@donga.com}2021-08-18 03:00
나쁜 여자-센 언니… 여성 캐릭터, 욕망의 대상서 주체로 변신“예쁘네. 탐나.” 이달 20일 방영을 시작한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성공한 동화작가 문영(서예지)은 자신의 사무실로 찾아왔다가 돌아가는 강태(김수현)를 보며 이렇게 혼잣말을 한다. 정신 병동 보호사로 일하며 자폐증을 앓는 형을 보살피는 강태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는 문영은 그 욕망을 표출하는 데 거침이 없다. 외모와 재력을 갖춘 남자 주인공이 힘든 상황에 처한 여주인공에게 구애해 사랑을 쟁취해내는 ‘신데렐라 스토리’와 정반대다. 팬 사인회에 나타난 강태의 모자를 벗기며 “모자 쓰지 마. 예쁜 얼굴 안 보여”라고 ‘돌직구’를 던진다. 과거에 부와 외모, 능력까지 모든 걸 갖춘 남성이 등장해 캔디형 여성 주인공을 구원하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주류였다면 시대가 변하면서 여성의 욕망과 판타지도 달라지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 등 대중문화의 이야기 구조는 여성의 시선에 맞춰 빠르게 변화하는 중이다. 2017년 할리우드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된 ‘미투’ 열풍으로 여성 서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후 이 같은 흐름은 문화계의 꾸준한 움직임으로 자리 잡았다. 드라마·영화 제작사는 콘텐츠의 주 타깃인 20∼4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작품에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 지난해 영화계에서는 여성 감독의 작품, 여성 서사를 중심으로 한 작품들이 주목을 받았다. ‘벌새’ ‘메기’ ‘82년생 김지영’ ‘윤희에게’는 극장 시장의 비수기에 개봉했음에도 여성의 서사를 섬세하게 다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는 이 같은 흐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왔도 꿋꿋이 개봉한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시작으로 ‘결백’ ‘초미의 관심사’ ‘프랑스 여자’ ‘야구소녀’ 등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거나 여성 서사를 다룬 영화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드라마 속 여성 서사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여성의 직업적 욕망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방영한 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검블유)는 사회적인 성공이 최대 목표인 여성 ‘워커홀릭’들의 삶을 그린 대표적인 작품이다. SBS ‘하이에나’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형사, 정치인, 법조인 등의 직업군에서 남성 주인공이 문제 해결의 중심이 되고 여성은 보조적 역할을 했던 기존의 드라마 문법에서 벗어났다는 호평을 받았다. ‘충 법률사무소’의 대표변호사 정금자(김혜수)는 승소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승부사 기질을 지녀 상대편 변호를 맡은 윤희재(주지훈)를 꼬셔 정보를 몰래 빼내는 악랄한 모습도 보인다. 이영미 문화평론가는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은 대개 정의롭다. 대장금이 대표적이다. 장금이는 온갖 모략이 판치는 남성 사회에서 직업적 전문성을 무기로 문제 해결의 중심이 된다”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하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더욱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그려지고 있다. 정의로움, 욕망, 따뜻함 등을 모두 가진 복합적인 여성 캐릭터로 변화하는 건 필연적 수순”이라고 분석했다. 단편적인 여성 캐릭터가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한다는 건 시청자들의 반응에서도 확인된다. 김은숙 작가의 2년 만의 복귀작으로 화제가 된 SBS ‘더 킹: 영원의 군주’는 평균 시청률 8%에도 못 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시청률 견인의 핵심적 역할을 했던 김은숙표 ‘신데렐라 스토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평범한 형사 정태을(김고은) 앞에 백마 ‘맥시무스’를 타고 나타난 대한제국 황제 이곤(이민호)이 “자넬 황후로 맞이하겠네”라고 고백하는 장면에 시청자들은 불편함을 표출했다. 앞으로는 ‘여성’이라는 범주화를 넘어서는 것이 과제라는 의견도 있다. 프로팀 입단을 꿈꾸는 고교 야구의 여성 선수를 연기한 ‘야구소녀’의 주연 배우 이주영은 “여성의 성장 과정을 담고 있지만 여성을 위한 영화만은 아니다. 높은 벽에 도전하는 모두가 뭉클한 감동을 느끼는 작품”이라고 영화의 의미를 설명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여성’의 이야기로 전면에 나서는 움직임과 더불어 지난해 개봉한 영화 ‘돈’처럼 여성 감독이 여성이 아닌 소재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사례에도 주목해야 한다. 관객들과의 접점을 넓힐 수 있도록 ‘여성’이라는 범주를 넘어서는 시도가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서현 baltika7@donga.com·김재희 기자}2020-06-30 03:00
‘신데렐라 스토리’ 안 통한다?…영화·드라마 속 다양해지는 여성 서사“예쁘네. 탐나.” 이달 20일 방영을 시작한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성공한 동화작가 문영(서예지)은 자신의 사무실로 찾아왔다가 돌아가는 강태(김수현)를 보며 이렇게 혼잣말을 한다. 정신 병동 보호사로 일하며 자폐증을 앓는 형을 보살피는 강태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는 문영은 그 욕망을 표출하는데 거침이 없다. 외모와 재력을 갖춘 남자 주인공이 힘든 상황에 처한 여주인공에게 구애해 사랑을 쟁취해내는 ‘신데렐라 스토리’와 정 반대다. 팬 사인회에 나타난 강태의 모자를 벗기며 “모자 쓰지 마. 예쁜 얼굴 안보여”라고 ‘돌직구’를 던진다. 과거에 부와 외모, 능력까지 모든 걸 갖춘 남성이 등장해 캔디형 여성 주인공을 구원하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주류였다면 시대가 변하면서 여성의 욕망과 판타지도 달라지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 등 대중문화의 이야기 구조는 여성의 시선에 맞춰 빠르게 변화하는 중이다. 2017년 할리우드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된 ‘미투’ 열풍으로 여성 서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후 이 같은 흐름은 문화계의 꾸준한 움직임으로 자리 잡았다. 드라마·영화 제작사는 콘텐츠의 주 타깃인 20~40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작품에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 지난해 영화계에서는 여성 감독의 작품, 여성 서사를 중심으로 한 작품들이 주목을 받았다. ‘벌새’ ‘메기’ ‘82년생 김지영’ ‘윤희에게’는 극장 시장의 비수기에 개봉했음에도 여성의 서사를 섬세하게 다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는 이 같은 흐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도 꿋꿋이 개봉한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시작으로 ‘결백’ ‘초미의 관심사’ ‘프랑스 여자’ ‘야구소녀’ 등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거나 여성 서사를 다룬 영화들이 봇물을 이뤘다. 드라마 속 여성서사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여성의 직업적 욕망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방영한 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검블유)는 사회적인 성공이 최대 목표인 여성 ‘워커홀릭’들의 삶을 그린 대표적인 작품이다. SBS ‘하이에나’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형사, 정치인, 법조인 등의 직업군에서 남성 주인공이 문제 해결의 중심이 되고 여성은 보조적 역할을 했던 기존의 드라마 문법에서 벗어났다는 호평을 받았다. ‘충 법률사무소’의 대표변호사 정금자(김혜수)는 승소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승부사 기질을 지녀 상대편 변호를 맡은 윤희재(주지훈)를 꼬셔 정보를 몰래 빼내는 악랄한 모습도 보인다. 이영미 문화평론가는 “남성 중심의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은 대개 정의롭다. 대장금이 대표적이다. 장금이는 온갖 모략이 판치는 남성사회에서 직업적 전문성을 무기로 문제 해결의 중심이 된다”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하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더욱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그려지고 있다. 정의로움, 욕망, 따뜻함 등을 모두 가진 복합적인 여성 캐릭터로 변화하는 건 필연적 수순”이라고 분석했다. 단편적인 여성 캐릭터가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한다는 건 시청자들의 반응에서도 확인된다. 김은숙 작가의 2년만의 복귀작으로 화제가 된 SBS ‘더킹: 영원의 군주’는 평균 시청률 8%에도 못 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시청률 견인의 핵심적 역할을 했던 김은숙 표 ‘신데렐라 스토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평범한 형사 정태을(김고은) 앞에 백마 ‘맥시무스’를 타고 나타난 대한제국 황제 이곤(이민호)이 “자넬 황후로 맞이하겠네”라고 고백하는 장면에 시청자들은 불편함을 표출했다. 앞으로는 ‘여성’이라는 범주화를 넘어서는 것이 과제라는 의견도 있다. 프로팀 입단을 꿈꾸는 고교 야구의 여성 선수를 연기한 ‘야구소녀’의 주연 배우 이주영은 “여성의 성장 과정을 담고 있지만 여성을 위한 영화만은 아니다. 높은 벽에 도전하는 모두가 뭉클한 감동을 느끼는 작품”이라고 영화의 의미를 설명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여성’의 이야기로 전면에 나서는 움직임과 더불어 지난해 개봉한 영화 ‘돈’처럼 여성 감독이 여성이 아닌 소재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사례에도 주목해야 한다. 관객들과의 접점을 넓힐 수 있도록 ‘여성’이라는 범주를 넘어서는 시도가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이서현기자 baltika7@donga.com김재희기자 jetti@donga.com}2020-06-29 16:01
7말8초 극장가, 코로나19 충격서 깨어날까연중 극장가 최대 성수기인 7월 말∼8월 초에 개봉될 신작 영화 라인업이 윤곽을 드러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으로 개봉 시기를 놓고 혼선을 빚다 한 달 앞두고 결정됐다. 일찌감치 7월 개봉을 확정한 연상호 감독의 신작 ‘반도’는 홍보 일정을 진행하고 있다. 1000만 관객 영화 ‘부산행’(2016년) 후속작인 ‘반도’는 코로나19로 시상식을 취소한 올해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돼 황금종려상 로고를 포스터에 붙였다. 16일 열린 온라인 제작보고회에서 연 감독은 “부산행과 동일한 시간대에 일어난 한 가족의 탈출 이야기”라며 “부산행을 찍을 장소를 헌팅할 때 봤던 많은 폐허가 반도의 출발이었다”고 말했다. ‘1000만 배우’ 황정민 이정재 주연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도 8월 개봉한다. 청부살인 의뢰로 인해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는 킬러 인남(황정민)과 복수를 위해 그를 쫓는 추격자 레이(이정재)의 사투를 그린 추격액션 영화다. 영화 ‘신세계’ 이후 7년 만에 두 배우가 재회했다. 전체 분량의 80% 이상을 태국 등 해외에서 촬영해 이국적인 볼거리도 기대된다. ‘강철비’를 만든 양우석 감독의 신작 ‘강철비2: 정상회담’도 개봉한다. 전작에 이어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 상황을 다뤘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현실 속에서 관객의 반응이 주목된다. 평양에서 열린 남-북-미 정상회의 중에 북한군의 쿠데타가 발생해 3국 정상이 북 핵잠수함에 납치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정우성 곽도원 유연석이 연기 대결을 펼친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 ‘테넷’이 이들 한국 영화와 맞붙는다. 테넷은 다음 달 31일 북미 개봉이 확정돼 국내에서도 그즈음 극장에서 볼 수 있을 듯하다. 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한 첩보전을 그렸는데, 놀런 감독의 주특기인 시간을 종횡무진 유영한다. 배급사 워너브러더스코리아는 개봉을 앞두고 놀런 감독의 ‘다크나이트’ 3부작을 24일부터 순차 재개봉한다. 여름 개봉이 예상됐던 ‘모가디슈’ ‘영웅’ ‘승리호’는 가을이나 연말로 개봉을 늦췄다.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2020-06-23 03:00
기사통계
1,744건 최근 30일 간1건
주요 취재분야레이어보기
  • 칼럼
    52%
  • 문화 일반
    33%
  • 교육
    3%
  • 문학/출판
    3%
  • 미술
    3%
  • 종교
    3%
  • 방송/연예일반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