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커상 사상 첫 여성건축가 듀오 선정…“건축은 일상의 안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4일 16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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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자연과 인간 뒤에 배경으로 물러난 건축”
심사위원단 ‘섬세하고 치밀한 디테일로 충격에 가까운 감동 안기는 공간’

2020년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인 아일랜드 건축가 이본느 파렐(왼쪽)과 셜리 맥나마라. 출처 pritzkerprize.com
2020년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인 아일랜드 건축가 이본느 파렐(왼쪽)과 셜리 맥나마라. 출처 pritzkerprize.com
“우리의 건축은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배경으로 물러나 숨는 건축이다. 차별적이고 독특한 디자인보다 공간의 인간적 가치를 추구하는 우리가 선정됐다니 놀랍다.”

올해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로 선정된 아일랜드 건축가 이본느 파렐(69)과 셜리 맥나마라(68)가 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타임스 인터뷰를 통해 전한 소감이다. 세계 건축계의 최고 영예인 이 상을 여성 2명이 받은 것은 1979년 제정 이후 41년 만에 처음이다. 역대 여성 수상자는 2004년 자하 하디드(이라크·1950~2016), 남성 건축가들과 공동 수상한 2010년 카즈요 세지마(일본·64)와 2017년 까르메 피젬(스페인·58) 3명이었다.

심사위원단은 “두 건축가는 기후 등의 자연 요소를 민감하게 고려해 건축 공간과 조화시켜 왔다. 언제나 정직한 과정을 고수하는 디자인으로 사려 깊은 공간과 디테일을 빚어냈다”고 평했다. 이어서 “남성들이 주도해온 건축업계에서 후배 여성 건축가들에게 귀감이 되는 업적을 쌓아올린 개척자들”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파렐과 맥나마라는 모두 더블린대를 졸업하고 1978년 그래프톤 건축사무소를 함께 설립했다. 더블린을 중심으로 42년간 쉼 없이 주택, 대학 캠퍼스, 문화센터 등 다양한 건축물을 만들어 왔지만 국제적 명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2018년 이탈리아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총괄 큐레이터로 선임됐을 때 그들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알고 이 자리를 맡겼는지 의아하다”고 했다. ‘자유 공간’을 주제로 삼아 “지구를 가장 중요한 건축주로 여겨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그해 비엔날레는 큰 호평을 얻었다.
지난해 영국왕립건축가협회상을 받은 아일랜드 나반 솔스티스 아트센터. 상층부 법원과 하층부 공연장의 진출입로를 흥미롭게 분리했다. 출처 graftonarchitects.ie
지난해 영국왕립건축가협회상을 받은 아일랜드 나반 솔스티스 아트센터. 상층부 법원과 하층부 공연장의 진출입로를 흥미롭게 분리했다. 출처 graftonarchitects.ie
이탈리아 밀라노 루이지보코니 상경대. 건축가들은 “대로변 창 아래 홀 공간을 도시와 대학 사이의 필터로 두었다”고 했다. 출처 pritzkerprize.com
이탈리아 밀라노 루이지보코니 상경대. 건축가들은 “대로변 창 아래 홀 공간을 도시와 대학 사이의 필터로 두었다”고 했다. 출처 pritzkerprize.com

더블린 노스킹스트리트 공동주택(2000년), 페루 리마 해변의 공업기술대(UTEC) 캠퍼스(2015년)는 두 건축가의 인본주의적 가치관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번잡한 대로변의 더블린 공동주택은 82가구 입주민의 평온한 일상을 위한 꼼꼼한 배려로 채워진 건물이다. 소음을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 53cm 두께로 올린 입면 외벽에는 보안을 위한 목재 미닫이 셔터를 덧댔다. 거리를 등진 중정(中庭) 쪽 외벽은 유리와 강철로 만들어 개방성을 더했다.
프랑스 파리의 마인스대 캠퍼스. 공간 곳곳에 5개의 중정(中庭)을 엮어두었다. 출처 pritzkerprize.com
프랑스 파리의 마인스대 캠퍼스. 공간 곳곳에 5개의 중정(中庭)을 엮어두었다. 출처 pritzkerprize.com
프랑스 툴루즈 상경대 캠퍼스. 운하와 교회, 성벽 등 주변의 역사적 경관을 시선 위로 끌어들였다. 출처 pritzkerprize.com
프랑스 툴루즈 상경대 캠퍼스. 운하와 교회, 성벽 등 주변의 역사적 경관을 시선 위로 끌어들였다. 출처 pritzkerprize.com

리마 UTEC은 고속도로 위로 쏟아질 듯 깎아지른 절벽을 닮은 북쪽 외관과 해변의 하늘을 가득 품어 안듯 열어놓은 남쪽 외관의 대조적인 모습이 돋보이는 공간이다. 두 건축가는 대로 쪽에 드라마틱한 형태로 올린 외벽 너머 공간 하단에 강당과 영화관을 배치해 도시와의 접점을 이루게 했다. 남쪽에는 바다를 향해 활짝 열린 계단식 정원을 두어 배움의 공간에 머무는 이들의 품에 바닷바람과 비를 안겼다.
페루 리마 공업기술대 건물 내부 모습. 출처 pritzkerprize.com
페루 리마 공업기술대 건물 내부 모습. 출처 pritzkerprize.com
페루 리마 공업기술대. 도시와의 접점을 살짝 틔운 채 북쪽 대로변을 차단하고 남쪽 공간을 바다를 향해 열었다. 출처 pritzkerprize.com
페루 리마 공업기술대. 도시와의 접점을 살짝 틔운 채 북쪽 대로변을 차단하고 남쪽 공간을 바다를 향해 열었다. 출처 pritzkerprize.com

심사위원단은 “설계와 시공 예산이 넉넉하게 주어지지 않은 프로젝트에서 두 사람이 만들어낸 공간이 보여주는 섬세하고 치밀한 디테일은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안긴다”고 평했다.두 건축가는 “건축의 성취가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디자인의 정교함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명한 건축물을 방문할 때 무언가 결여된 것을 자주 느낀다. 공간에 머무는 사람이 매일의 일상에서 표현하고 싶은 안무(按舞)를 대신하는 역할의 건축을 추구하려 한다. 건축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깊숙이 우리의 삶 곳곳에 관입해 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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