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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매키넌 교수 “性인지 감수성 적용 판결이 더 합리적이고 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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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매키넌 교수 “性인지 감수성 적용 판결이 더 합리적이고 공정”

박상준 기자 입력 2019-12-09 03:00수정 2019-12-09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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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괴롭힘’ 최초로 법제화 이끈 美 매키넌 교수 방한 인터뷰
가해-피해자 상황과 위치 함께 고려… 性인지 감수성 적용해야 재판 공정
美선 심리학자등 증인으로 참석
캐서린 매키넌 미국 미시간대 로스쿨 교수가 8일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성인지 감수성은 가해자의 논리만이 아닌 피해자의 상황도 함께 경청하기 때문에 오히려 합리적이고 공정하다”고 말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한국 대법원은 이른바 ‘미투(#MeToo·나도 당했다)운동’이 활발하던 지난 해 4월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말을 처음 판결문을 통해 강조했다. 성폭행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선 법원의 판결은 성인지 감수성이 아직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다. 한편으로는 성인지 감수성의 개념이 모호하고 증거 재판주의를 훼손한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에서 성적 괴롭힘(sexual harrassment)을 최초로 법제화한 캐서린 맥키넌(Catharine Mackinnon) 미시간대 로스쿨 교수(73)를 8일 만나 성인지 감수성, 불법촬영, 리얼돌 등 젠더법의 현안에 대해 들어봤다. 맥키넌 교수는 하버드대 로스쿨 방문 교수이자 ‘포르노그래피’ 이론의 대가이다. 보스니아 전쟁의 강간 피해자들을 대리해 전시 성폭력이 국제법상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 학살)’에 속한다는 판례를 최초로 이끌어내기도 했다. 다음은 맥키넌 교수와의 일문일답.

● 성인지 감수성은 피해자의 상황과 관점도 이해해보자는 것

―성인지 감수성이란 무엇인가.


“우리 사회, 또는 법원이 성폭력 사건을 대할 때 성별 간 불평등을 포함한 위계질서 속에서 약자의 입장에 놓인 사람의 상황과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피해자를 한 사건으로 놓고 보면 그저 한 명의 개인이지만, 그는 사실 어떤 사회적 집단의 구성원이다. 그렇다면 그 집단은 어떤 성격을 가졌고, 피해자는 그 집단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떤 권력관계 속에 놓여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피해자는 여성일 수도, 남성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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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어렵다.

“오픈 마인드와 공감 능력을 가지라는 것이다. 기존의 법과 남성지배적인 문화가 몰랐던 피해자들의 경험, 지식을 들어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성 판사는 피해 여성과 성별이 다르기 때문에 그 여성이 사회 구조상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가해자와는 어떤 관계였는지, 거부하기 힘든 성관계 요구를 받는 상황이란 무엇인지 잘 모를 수 있다. 즉 성별 뿐만 아니라 계급, 연령, 경제력, 학력, 국적 등을 고려해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보라는 것이다.”

―피해자의 말을 무조건 믿어주라는 것이냐는 반발이 있다.

“당연히 누군가의 말을 자동적으로 다 믿을 수는 없다. 최소한 ‘피해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없애자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법과 문화는 남성중심적이었다. 성폭력 피해자의 심리 등에 대한 이해가 잘 없기도 하다. 그래서 가해자라고 지목된 사람은 늘 억울하고 진실을 말하며,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통념이 있다. 이제는 그 전제를 없애고 성폭력 피해자들이 경험하는 구체적인 맥락을 공정하게 고려하자는 것이다.”

―성인지 감수성이 공정하다는 것인가.

“성인지 감수성을 적용해서 판결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고, 객관적이고, 공정하다. ‘관점의 평등(equality of perspectives)’이라는 것이다. ‘이제야 처음으로 공정해졌다’고 표현하겠다. 예를 들어 어떤 여성이 평소 폭력적인 남자 친구의 성향이 두려워 원치 않는 성관계를 한 뒤 다음날 아침식사를 함께 했다고 해보자. 지금까지 법정에서는 가해자가 ‘다음날 아침을 먹었다’며 연인 관계였고, 따라서 합의된 성관계라고 주장해 이것이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 피해자는 보복이 두려워서, 가해자를 더 자극하기가 무서워서 성관계에 응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가해자의 논리만이 아니라 피해자의 상황도 경청하는 것이 공정하다. 또 피해자의 상황, 남자친구와의 관계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합리적이다.”

● 전문가의 증언 통해 피해자의 상황과 관점 들어야

―피해자의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나.

“미국에서는 성폭력 관련 재판에서 여성학자, 성폭력피해자지원센터, 상담원, 의료인, 심리학자 등의 전문가를 증인으로 부른다. 판사는 전문가의 증언을 통해 원치 않는 성관계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파악하고, 피해자의 심리를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전문가들은 그 피해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피해자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다른 피해자의 사례, 그 집단이 놓인 상황에 대한 분석, 피해자의 내밀한 심리를 설명한다.”

―직접 다른 피해자를 부르기도 하나.

“같은 가해자라면 다른 피해자를 부르기도 한다. 빌 코스비(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겸 배우)의 성폭행 혐의에 대한 재판이 그랬다. 형사법의 전제는 가해자가 평소에 어떤 사람이고,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했는지가 아니라 ‘이 피해자에게 무엇을 했는지’만을 본다. 그래서 처음엔 피해자 1명의 증언만을 들었다. 그러나 미투운동 이후 코스비에게 성폭행을 당한 다른 피해자 5명도 증언대에 섰다. 이걸 ‘동류 증거(like-kind evidence)’, ‘맥락 증거(pattern evidence)’라고 한다. 이들의 증언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높여줬고, 그의 상황과 코스비의 행위 습성을 보여줘서 성인지 감수성을 갖춘 판결이 나왔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미국에서도 1970년대부터 싸워왔던 것이다. 형사사건에서는 검사가, 민사사건에서는 피해자 변호사가 계속해서 전문가의 증언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계속 싸우고 있다. 한국에서도 계속 요청해야 한다. 판사의 재량권을 침해하자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의 증언을 듣는 기회를 갖자는 것이다. 다양한 피해자가 있기 때문에 ‘이 피해자는 미치지(crazy) 않았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

● 피해자의 상황 깊이 이해하기 위한 연구와 제도 필요

―이를 위한 연구나 교육도 하나.

“물론이다. 미국에는 판사들만을 교육하는 단체들이 많다. 그 단체들은 30여 년 동안 전국적인 조사를 통해 여성 판사, 여성 증인, 여성 피해자, 여성 원고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의 데이터와 연구를 쌓아왔다.”

―미국에는 판사 주민소환제도도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 스탠포드대의 백인 수영선수가 의식을 잃은 동양계 미국인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판사는 가해자에게 징역 6개월 형을 내렸다. 시민들은 주민소환제도를 통해 판사를 해임시켰다.”

―한국 판사에 대한 성인지 감수성 교육은 어떻게 하나.

“사실 지금은 늦었다. 로스쿨 단계에서부터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 미국 로스쿨에는 많은 학생들이 젠더법, 성인지 감수성, 페미니즘 이론 등의 과목을 수강한다. 한국은 수강생이 많지 않다고 들었는데, 안타깝다.”

● 동의 요건보다는 위력과 불평등을 강간죄의 요건으로

―한국에서는 비동의간음죄(yes means yes rule)를 도입해야 한다고 한다

“반대다. 동의만을 요건으로 하면 결국 피해 여성에게 ‘동의하지 않은 것 맞느냐’고 따져 묻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또 돌아와서 ‘저항한 것이 맞느냐’고 물어보게 된다. 동의에는 여러 종류(spectrum)가 있다. 절박해서 동의할 수도, 얼어 있다가 동의할 수도, 의식이 없어서 동의할 수도 있다. 영국은 강간죄의 구성요건에 동의만을 넣었다. 현재 영국의 경우 강간의 유죄 확정률이 신고된 사건의 5.7%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동의 요건을 빼고 위력과 불평등한 관계를 요건으로 해야 한다. 대신 위력이 물리적 폭행이나 협박만을 의미하면 안 된다. 아까도 말했듯이 사회적 불평등, 그리고 성별 간의 권력 차이는 충분히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강제할 수 있다. 불평등이 존재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구체적인 상황에서 그게 어떻게 이용됐는지를 봐야 한다.”

―불평등 이용의 예를 들면

“내가 공동변호인으로 참여했던 미국의 ‘메리터저축은행 대 빈슨’ 사건을 보라. 은행에 근무하던 미셸 빈슨은 직장 상사에게 52번의 성관계 요구를 받고 응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널 해고할 수 있다’는 암시가 있었다. 빈슨은 아픈 어머니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1986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강간, 추행, 성희롱 등이 사실은 성차별의 한 형태라서 미국 시민권법 제7장 ’성차별금지법‘에 위반된다’는 내 이론을 받아들여 최초의 판례로 정립했다.”

―변호인으로 참여했던 보스니아 전쟁 성폭력 사건도 그러한가.

“그렇다. 전시 성폭력의 제노사이드(집단 학살)를 생각해보라. 군인이 수용소에 있는 여성에게 다가와 ‘성관계를 하지 않으면 옆방의 남편을 죽이겠다’는 암시를 교묘하게 남겼다면, 여성은 성관계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이 때 불평등은 존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용된 것이다.”

● 불법촬영과 리얼돌, 성남어린이집은….

―한국에서는 가수 정준영의 집단 성폭행, 불법촬영 및 유포 이슈도 뜨겁다.

“불법촬영은 포르노의 연장선이다. 포르노그래피는 여성을 객체, 물건, 또는 상품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의 절반인 여성에 대한 취급과 지위를 결정하고, 여성에 대한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태도와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다. 포르노를 보던 이들이 자신만의 포르노를 직접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 불법촬영이다.”

―얼마 전 극단적 선택을 한 가수 구하라 씨에 대해서는

“여성들은 걸어다니는 ‘동의’다. 그 분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촬영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성인 여성을 본뜬 성인용품인 ‘리얼돌’의 수입이 허용됐다. 어떻게 보시나.

“남성들이 드디어 ‘완벽한 여성(perfect woman)’을 찾은 것이다. 리얼돌은 단순한 자위기구와는 다르다. 리얼돌은 극단적으로 수동적인 여성과 성행위를 하는 ‘훈련 도구’다. 누군가는 리얼돌이 성폭력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하지만, 많은 연구는 감소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보여준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성남어린이집 사건에 대해 ‘발달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다’고 했다.

“누군가 그 장관에게 ‘그렇다면 당신도 5살 때 여자 아이에게 비슷한 행동을 했는가’를 물어본 적이 있나. 여자아이를 성적으로 학대하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성인 남성으로 자라날 수 없다는 것인가. 이게 어떻게 발달과정의 일부인가. 남성은 여성을 성적으로 학대하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남성은 본능적으로 그런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성기가 아닌 손가락을 이용했기 때문에 생물학적인 행동도 아니다.”

● 주변의 여성들이 말하는 것과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귀 기울이길


―한국에는 첫 방문이다.

“용감하고 강한 한국 여성들의 미투운동이 인상 깊었다. 한국 미투운동은 여성들이 자신이 경험한 성폭력이 사실은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성차별과 불평등한 성별 권력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닫고 ‘나도 당했다’고 말하는 데서 출발했다. 때마침 며칠 전 사법연수원에서 국제콘퍼런스를 개최해 전 세계 석학들과 함께 참가했다. 서울중앙지법에서도 판사들을 만나 ‘성인지 감수성과 적용 방안’에 대해 강의했다.”

―왜 여성인권을 옹호하는 변호사가 되리라 결심했나.

“여성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던 자신들의 경험을 내게 말했다. 주변의 여성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야겠지만, 그들이 말하지 않고 있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


:: 캐서린 맥키넌 교수 프로필 ::

△1946년 미국 미네소타 주 출생

△예일대 법학전문 석사-예일대 정치학 박사

△예일대·스탠포드대·컬럼비아대·시카고대 방문교수-국제형사재판소 특별젠더자문관

△ 현재 미시간대 로스쿨 종신 교수, 하버드대 방문교수

△ ‘메리터저축은행 대 빈슨(성적 괴롭힘 최초 법제화해 승소)’, ‘보스니아 전쟁 성폭력(국제법상 전시 성폭력을 집단 학살로 최초 법제화해 승소)’ 등 주요 사건 피해자 변호인

△ 전미변호사협회 ‘독보적인 학자상’ 수상(2007년), 전미법학전문대학원협회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상 수상(2015년) 등 다수

△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된 32인의 법학자

△ 저서: ‘일하는 여성에 대한 성적 괴롭힘’ ‘포르노그래피와 시민권’ ‘성평등’ 등 다수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성인지 감수성#성적 괴롭힘#캐서린 매키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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