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100만 홍위병의 상징… 쑹빈빈, 48년만에 참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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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부교장 구타사망 못막아 후회”

홍위병의 아이콘이던 쑹빈빈(왼쪽 사진 오른쪽)이 문화대혁명 시절 마오쩌둥 주석을 만나 그의 팔에 홍위병의 상징인 붉은 완장을 채워 주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쑹빈빈의 현재 모습. 사진 출처 신징보
홍위병의 아이콘이던 쑹빈빈(왼쪽 사진 오른쪽)이 문화대혁명 시절 마오쩌둥 주석을 만나 그의 팔에 홍위병의 상징인 붉은 완장을 채워 주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쑹빈빈의 현재 모습. 사진 출처 신징보
“잘못을 빌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다.”

12일 중국 베이징사범대부속여중 회의실. 자신도 노인이 된 쑹빈빈(宋彬彬·67)이 눈물을 쏟으며 80, 90대 은사들께 48년 전의 잘못을 빌었다. 그는 “학교 질서를 앞장서 파괴하고 선생님들을 괴롭혔다”며 약 1500자 분량의 ‘나의 사죄와 감사’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다.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쑹야오우(宋要武)란 이름으로 더 유명했던 쑹빈빈은 100만 홍위병의 상징적 인물. 혁명원로 쑹런충(宋任窮) 상장(上將·중국군 대장)의 딸로 1966년 8월 18일 부속여중 학생이던 그는 홍위병 대표로 톈안먼(天安門) 성루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접견을 받았다.

쑹빈빈은 “40여 년 동안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아는 ‘쑹빈빈’과 문혁 폭력의 상징이 된 ‘쑹야오우’라는 2개의 내가 있었다”며 “오랫동안 직접 얼굴을 뵙고 참회하는 기회를 희망해 왔다”고 말했다.

이날 모임은 문혁 당시 이 학교 홍위병이던 20여 명이 30여 명의 은사를 모시고 가진 집단 참회식. 베이징사범대부속여중에서 문혁 초기인 1966년 8월 5일 홍위병들의 집단 광기가 대표적으로 표출된 ‘8·5’사건이 발생했다. 홍위병들이 교사들을 집단 구타한 끝에 볜중윈(卞仲耘) 부교장이 숨졌다. 쑹빈빈은 “8·5사건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며 “선생님들을 보호하지 못해 평생 괴로웠고 후회해 왔다”고 말했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중국#쑹빈빈#홍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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