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참 공교로운 대통령의 호주 국빈 방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6일 14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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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박4일 호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호주의 스콧 모리스 총리 부부가 함께 \'셀카\'를 찍는 모습. 문 대통령이 이날 사진을 올리자 야당에서는 "코로나 확진자가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상황에서 국민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3박4일 호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 부부와 호주의 스콧 모리스 총리 부부가 함께 \'셀카\'를 찍는 모습. 문 대통령이 이날 사진을 올리자 야당에서는 "코로나 확진자가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상황에서 국민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생각지 않았거나 뜻하지 않았던 사실이나 사건과 우연히 마주치게 돼 기이하다고 할 만하다.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공교롭다’의 낱말 풀이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호주 국빈 방문이 참 공교롭다고 본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해 민심이 흉흉한 시기다. 청와대 홈페이지엔 “앞으로 4주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라며 “정부는 특별방역대책의 성공에 K-방역의 성패가 걸려있다는 각오로 역량을 총동원하겠다”는 7일 문 대통령 국무회의 발언이 대문짝만하게 걸려있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호주 abc방송은 그 나라 정부 고위당국자들이 오미크론 창궐로 인한 세계적 불확실성 때문에 한국 대통령 방문을 연기하는 것을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니까 호주도 문 대통령의 방문이 적잖이 부담스러웠던 거다. 청와대는 코로나 발발 이후 호주가 맞는 첫 국빈 방문이라고 자랑스러운 듯 발표했지만 그게 과연 자랑할 일이었나…싶다.

지난 6월 오스트리아 국빈 방문 때 문 대통령 부부는 비엔나 벨베데레궁에서 열린 대통령 주최 국빈 만찬에 초대됐다. 당시 만찬은 오후 8시부터 2시간에 걸쳐 진행됐으며 56명이 참석했다.
지난 6월 오스트리아 국빈 방문 때 문 대통령 부부는 비엔나 벨베데레궁에서 열린 대통령 주최 국빈 만찬에 초대됐다. 당시 만찬은 오후 8시부터 2시간에 걸쳐 진행됐으며 56명이 참석했다.

호주를 국빈 방문 중인 문 대통령 부부와 호주의 스콧 모리슨 총리 부부의 모습. 이들은 14일 시드니 총리 관저에서 만찬을 가졌다.
호주를 국빈 방문 중인 문 대통령 부부와 호주의 스콧 모리슨 총리 부부의 모습. 이들은 14일 시드니 총리 관저에서 만찬을 가졌다.

● 호주는 왜 굳이 초청했을까
문 대통령의 6월 오스트리아·스페인 국빈 방문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다르다. 그때는 왕궁에서 수십 명의 귀빈들을 초청해 오케스트라 공연과 함께 호화찬란하게 국빈 만찬이 진행됐다. 문 대통령 부부는 13일 데이비드 헐리 연방 총독 내외와 국빈 오찬을, 14일 스콧 모리슨 총리 내외와 국빈 만찬을 했을 뿐이다. 단출하게.

그럼에도 호주 방문이 강행된 것을 abc방송은 모리슨 총리의 뜻이라고 했다. 호주로선 지금 이 시기,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인 한국 대통령의 지지가 절실했다는 분석이다. 심지어 “내년 3월이면 5년 임기를 마치는(3월은 대선인데 잘못 알고 쓴 듯) 문 대통령은 중국과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염려 없이 호주와 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외교적 자유를 갖고 방문할 수 있다”고 했다(^^).

호주가 어떤 나라인가. 최근 들어 대만 빼고 중국에 가장 직빵으로 당하는 나라가 호주다. 표면적 이유는 코로나였다. 호주가 작년 4월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원지 국제 조사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하자(중국이 발원지라는 속뜻이 있음은 물론이다) 중국은 전방위 무역보복을 자행했다(우리도 당해 봐서 아는 일이다).
●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Moon의 동상이몽
호주는 우리처럼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작년 여름 쿼드(Quad·미국 일본 인도 호주 협의체)에 이어 올해 9월 미국 영국과 함께 중국과 맞서는 3국 안보협약 AUKUS(Australia-UK-US)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이번 13일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모리슨은 “문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AUKUS에 대해 지지를 보내주고 계신 점에 감사한다”고 우리 대통령을 은근하게, 실은 강하게 끌어당겼다.

“역내에서 주권을 훼손 받고 있는 경우가 있고(중국을 겨냥한 소리다) 그런 경우에는 파트너십을 형성해 역내에 있는 국가들의 주권을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중국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게 아니라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의 가치를 함께 하는 국가들이 연대해야 한다는 국가지도자의 의지가 끓어 넘치는 발언이다.

안타깝게도 모리슨은…문 대통령을 잘못 알고 있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말한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에 대해 외교적 보이콧을 미국으로부터 권유받은 바 없고, 한국 정부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중국이 만세 부르게 만들고, 초청국과 동맹국을 실망시키는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14일 집권 당시 친중 정권이던 호주 제1야당인 노동당의 앤소니 노만 알바니스 대표를 접견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14일 집권 당시 친중 정권이던 호주 제1야당인 노동당의 앤소니 노만 알바니스 대표를 접견하기도 했다.

● 자유와 안정은 타협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이 14일 호주 제1 야당인 노동당 앤소니 노만 알바니스 대표를 접견한 것도 참 공교롭다. 호주는 노동당 정부가 집권하던 2010년대 초반까지 문 정권 못지않은 친중(親中) 정권이었다. 문제는 중국이 호주 정재계, 학계, 언론계까지 ‘조용하게 침공’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반중감정이 늘고 정권까지 교체됐다는 데 있다. 지난해 코로나 바이러스 근원지 국제조사 발표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문 대통령이 노동당 대표에게 “종전선언은 정전체제를 공고한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한 첫걸음이며 비핵화를 위한 중요한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굳건한 지지와 협조를 요청한다”고 말했다면 위험하다. 모르고 말했다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차라리 한반도와 관련해 이렇게 말한 모리슨 총리가 훨씬 고맙고 든든하다. “타협해선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자유와 안정을 한반도에 구축해야 한다”고. 한국정부가 종전선언을 추진한답시고 지나치게 중국이나 북한을 고려해 타협을 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천만다행히도 우리에게는 대통령을 교체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때까지 우리는 코로나도 이겨내고, 종전선언도 막아내야 한다. 무슨 수를 쓰든!!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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