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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이재명은 대선도 안 치르고 입법독재부터 시작했다

입력 2021-11-28 12:33업데이트 2021-11-28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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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6개월 앞둔 2002년 7월 4일.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는 공정선거를 위한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김대중(DJ)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2주 전 DJ는 비리로 구속된 세 아들 때문에 육성으로 사과하며 선거 중립과 엄정한 법적 처리를 약속한 상태였다. ‘노풍’은 이미 폭삭 꺼진 채 지지율은 20%대에서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었다.

노 후보 주장이 획기적이긴 했다. 그의 말대로 국무총리, 행정자치부 장관, 법무부 장관 등 선거 주무 책임자를 ‘야당 추천을 받아’ 임명했다면 너무나 공정한 거국중립내각으로 역사에 남았을 거다(1992년 현승종 내각이 있기는 했으나 김기춘의 “우리가 남이가” 사건이 그때 벌어진 일이었다).

생각해 보시라. 문재인 정부에선 김부겸 총리,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모조리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대선이 코앞인데 선거 주무 장관들을 여당으로 채워놓고 공정한 선거관리가 가능하겠나.


● 아직 대통령에 뽑히지도 않았는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보다 심각한 건 민주당과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나라와 국민에 끼치는 영향이다. 민주당이 21일 긴급 의원총회에서 전권을 이재명에게 위임한 건 좋다. 그건 당과 후보 간의 문제다. 그래서 이재명의 지지율을 올리겠다는 게 당신들의 목적일 터다.

그러나 부동산개발이익환수법 같은 이재명의 대선공약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법안으로 통과시키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국민적 합의도 이뤄진 바 없지만 이재명은 국회의원도 아니다. 아직 대선을 치르지도 않았다. 심지어 대통령에 당선된 건 더더구나 아니다.

이재명으로선 대장동 의혹이 목덜미를 조이고 있어 어떻게든 개혁적 성과를 보여주고 싶겠지만, 어림도 없다. 그가 당선될지 낙선될지 모르는 판에 왜 그의 공약을 당장 법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대장동 의혹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특검을 받으면 된다. 부동산개혁 입법이라니, 아무데나 개혁이란 말을 쓰지 말란 말이다.


● ‘이재명은 합니다’가 무서운 이유


이재명은 24일 민주당 ‘민생·개혁입법 추진 간담회’에서 국민 앞에 사과의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는 국회 상임위원장과 간사들을 앉혀놓고 담임선생처럼 법안 처리방침을 번호로 써주기까지 했다. ▲여야 합의 처리(0번) ▲정기국회내 신속 책임 처리(1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처리(2번) ▲당론 정리 필요(3번) 이런 식으로.

24일 ‘민생·개혁입법 추진 간담회’에서 큰절을 하고 있는 이재명 후보.


그의 선거 공약인 개발이익환수법안·공공기관 노동이사제·노조전임자 타임오프제 등은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분류됐다.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개입을 보장하는 노동관계3법을 놓고 이재명은 “(여당) 위원장이 방망이를 들고 있지 않느냐”며 “단독처리할 수 있는 건 하자니까요”라고 노골적으로 ‘입법독재’를 독려하는 모습이었다.

‘이재명은 합니다’가 그의 자서전 제목이자 선거 모토다. 여기엔 목적어가 없다. 이재명의 추진력, 실행력을 말해준다지만 나는 그게 더 무섭다. 무엇을 할지 알 수 없어서다. 좋은 일을 할지, 나쁜 일을 할지, 미친 짓을 할지 모르는 거다.


●사상 초유의 ‘국회 선거개입’ 나올 판


이재명의 선거 공약을 이번 국회에서 법안으로 만드는 건 초유의 ‘국회 선거개입’이 될 수 있다. 2018년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떠올려보시라. 86그룹은 그 정도쯤 아무것도 아닌 걸로 여기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번 대선엔 민주당이 몽땅 나서 이재명 선거를 도울 작정인 듯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재명은 의원이 아니다. 대통령에 당선된대도 행정부 소속이다. 만에 하나, 이재명이 대통령에 당선돼 지금처럼 입법을 강요한다고 상상해 보시라. 삼권분립 위배다! 아무리 여당 의원들이라고 해도 국민의 대표이지 대통령 꼬붕도, 청와대에서 월급 받는 것도 아닌데 “그건 아니다” 한 마디 하는 의원이 없다는 건 심각하다. (내가 이들 여당 의원 지역구의 주민이라면 엄청 자존심 상할 것 같다.)

18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 안건은 2022년 예산안이었다. 그런데 민주당이 개발이익환수법 상정을 먼저 처리하자고 주장하는 바람에 예산안 심의도 못하고 말았다. 22일도 똑같은 문제로 국회가 파행되자 이재명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개발이익환수법을 막는 자가 ‘화천대유’를 꿈꾸는 공범.”(미안하지만 웃기지 않는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 눈에 예산안 심의가 그리 가볍게 보이는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페이스북 캡처



● 독재자의 속내 드러내 고마울 따름


2016년 1월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단체들이 성남시 판교역 광장에 마련한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1000만 서명운동’ 부스를 찾아 서명했다. 경제활성화법, 노동개혁법, 테러방지법 등 민생법안이 야당(현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통과되지 않자 “애가 탄다”며 벌인 ‘장외투쟁’이었다.

당시 박근혜는 야당 의원들과 대화나 설득할 시도조차 않던 불통의 대통령이었다. 신년연설과 3·1절 연설에서는 “국회를 심판해 달라”고 했다. 의회와 법치를 능멸했던 대통령의 말로(末路)를 우리는 안다. 그것은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비극이었다.

26일 목포에서 이재명은 “국민이 괜히 다수석을 준 게 아니다. 발목을 잡으면 그 잡은 손을 차고 앞으로 나가겠다”고 했다. 그가 여당 의원들에게 말했듯, 야당을 “저들”이라 칭하면서 “입법기구는 입법하고 집행기구는 집행하며” 청와대는 초법적기구라고 믿는 게 바로 독재자의 특성이다. 자칭 ‘3실(실력·실천·실적) 후보’라는 이재명. 그가 대선을 치르기 전 그 속내를 노출해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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