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범 작가·‘저스트고 파리’ 저자2주 전 한 레스토랑에서 민어를 먹었다. 낚시로 잡은 자연산 민어라고 했다. 내 앞에 서비스된 것은 작은 토막 몇 점이 전부였다. 가격은 7만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게 다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첫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비린 향도 없고 강한 맛도 없었다. 오히려 너무 담백해서 처음에는 특별함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씹을수록 은은한 감칠맛이 퍼졌다. 자극적이지 않은데도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는 맛이었다.
얼마 전 프랑스의 한 고급 백화점 식품관과 중국 식료품점의 생선 코너를 둘러보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생선 이름 옆에는 가격만 적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바다에서 잡혔는지, 어떤 방식으로 어획했는지까지 표시돼 있었다. 외줄낚시인지, 자망인지, 저인망인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정보가 법적으로 공개된다.
한국에서는 보통 자연산인지 양식인지를 먼저 묻는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어떻게 잡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다. 같은 농어라도 외줄낚시로 한 마리씩 잡은 농어는 일반 어획 방식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생선이 그물 안에서 상처를 입지 않고 스트레스를 덜 받았기 때문에 품질이 좋다고 믿기 때문이다.
과거 파리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서 일했던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지인이 일한 레스토랑의 셰프는 스코틀랜드의 한 어부가 잡는 자연산 연어를 비행기로 직송받아 사용했다고 한다. 셰프가 가장 높게 평가한 부위는 등살과 뱃살이 만나는 중앙 부분이다. 지방이 충분하지만 과하지 않고, 살은 촉촉하면서도 단단하다. 구웠을 때 뱃살처럼 느끼하지 않고 등살처럼 퍽퍽하지도 않다. 풍미와 식감이 가장 이상적인 균형을 이루는 부위다. 한 마리에서 얻을 수 있는 양도 많지 않다. 그렇다고 나머지 부위가 버려지는 것은 아니다. 꼬리 쪽은 훈제나 타르타르에 사용하고, 뼈와 머리로는 육수를 낸다. 하지만 최고의 한 접시를 위해 선택되는 부분은 생각보다 훨씬 적다.
좋은 식재료가 비싼 이유는 희귀해서가 아니다. 가장 좋은 순간이 짧기 때문이다. 와인도 그렇고 쇠고기도 그렇고 생선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감탄하는 맛은 대부분 자연이 아주 잠깐 허락한 순간에서 나온다.
생선이 가장 맛있는 계절이다. 대서양에서는 외줄낚시로 잡은 농어가 올라오고, 브르타뉴에서는 프랑스인들이 ‘생선의 왕’이라 부르는 대광어가 제철을 맞는다. 살이 두껍고 감칠맛이 강해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특히 사랑받는 생선이다. 같은 지역에서는 달고기로 알려진 생피에르도 많이 잡힌다. 뼈가 적고 육질이 섬세해 프랑스 셰프들이 가장 선호하는 생선 중 하나다. 지중해 지역에선 붉은숭어가 식탁에 오른다. 크기가 크진 않지만 특유의 진한 풍미 덕분에 여름철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생선이다. 공통점은 모두 ‘제철’이라는 것이다. 좋은 생선은 비싼 생선이 아니라 가장 맛있는 계절에 가장 좋은 상태로 잡힌 생선일지도 모른다.
좋은 음식은 배를 채우는 양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좋은 음식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맛으로 기억된다. 미식의 세계에서는 가장 좋은 재료가 희귀한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순간이 희귀한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