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 와인에 얼음 띄워 마시는 프랑스인들[정기범의 본 아페티]

  • 동아일보

정기범 작가·‘저스트고 파리’ 저자
정기범 작가·‘저스트고 파리’ 저자
여름철 프랑스 파리의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가 거절당하는 일은 의외로 흔하다. 스페셜티 카페가 아닌 동네 카페일수록 그렇다. 프랑스인들은 차가운 커피를 즐기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여름만 되면 로제 와인에는 얼음을 몇 개씩 띄워 마신다. 남부 노인들이 테라스에서 얼음이 든 로제 와인을 천천히 마시는 풍경은 프랑스에서는 낯설지 않다.

한국인의 시각에서는 다소 의아하다. 와인에 얼음을 넣는 것은 금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로제는 원래부터 복잡하게 분석하며 마시는 술이 아니었다. 여름의 긴 오후를 오래 즐기기 위한 생활의 음료에 더 가깝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로제는 특별한 날의 와인이 아니다. 햇살이 길어지는 계절, 친구들과 테라스에 앉아 오래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기 위한 가장 프랑스적인 여름 술이다. 그래서 얼음을 넣는 것도 자연스럽다. 와인의 섬세함을 해친다는 생각보다 더 시원하게, 더 오래 즐긴다는 감각에 가깝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로제 와인은 왜 분홍색일까. 프랑스어 rose는 원래 ‘장밋빛’ ‘분홍빛’을 뜻한다. 이름 자체가 색에서 나온 셈이다. 실제로 로제는 대부분 레드 와인용 적포도로 만든다. 다만 레드 와인처럼 포도 껍질과 오래 발효하지는 않는다. 색소가 들어 있는 껍질과 짧게만 접촉한 뒤 분리하기 때문에 연한 분홍빛이 남는다.

그래서 로제의 색도 다양하다. 프로방스 로제처럼 거의 흰 와인에 가까울 정도로 옅은 스타일도 있고, 타벨(Tavel)처럼 붉은 기운이 강한 로제도 있다. 프랑스 와인 애호가들이 색만 보고도 어느 지역 스타일인지 짐작하는 이유다.

프랑스 로제 문화의 중심은 남부 프로방스 지역이다. 햇빛과 지중해 바람 아래에서 만들어지는 프로방스 로제는 산뜻하고 허브 향과 미네랄 느낌이 특징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여름만 되면 자연스럽게 로제를 찾는 이유 역시 이 지역의 생활문화와 연결돼 있다.

최근에는 로제가 하나의 미식 장르로도 발전하고 있다. 방돌(Bandol) 지역 로제는 일반적인 가벼운 스타일과 다르다. 무르베드르(Mourvedre) 품종 중심으로 만들어져 구조감이 있고 음식과의 조화가 뛰어나다. 샤토 드 피바르뇽(Chateau de Pibarnon)이나 도멘 텅피에(Domaine Tempier) 같은 생산자는 미식가들 사이에서 특히 유명하다.

흥미로운 것은 로제가 한국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파리 한식당에서도 프랑스 손님들은 날씨가 따뜻해지면 자연스럽게 로제를 주문한다. 닭강정이나 제육볶음처럼 매콤하고 단맛이 있는 음식과 좋은 조화를 보인다. 차갑게 마시는 로제의 산도와 과실감이 한국 음식의 양념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아직도 “고기에는 레드 와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이 여름마다 로제를 찾는 모습을 처음에는 낯설게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몇 잔 함께 마시다 보면 금세 이해하게 된다. 로제는 단순한 분홍색 와인이 아니라 프랑스 사람들이 여름을 보내는 방식 자체에 가깝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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