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바꾸는 제조 공장 현장
설비 자동화 넘어 공장 흐름 제어
디지털 트윈·통합 OS 등이 핵심
‘다크팩토리 시스템’ 수출 기회
장영재 KAIST 교수 팀이 구축해 올 3월 공개한 제조 피지컬 AI 테스트베드 ‘카이로스’ 전경. 로봇과 센서, 설비, 디지털 트윈을 하나의 운영체제로 통합 제어하는 실증 공간으로, 세계 최초로 AI 기반 무인 운영 환경을 구현해 주목받았다. 연구원이 다중 모니터를 통해 실증랩 전체의 물류 흐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모습(왼쪽 사진). 듀얼 로봇팔 위쪽으로 OHT(공중 물류 반송 시스템) 레일이 지나가고, 바닥에는 AMR(자율주행 이동 로봇)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KAIST 제공
최근 ‘피지컬 AI(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기업들의 투자도 빨라지고 있다. 시장의 시선은 주로 휴머노이드에 쏠려 있지만 당장 시급한 과제는 이미 현장에 들어와 있는 로봇과 설비를 하나의 시스템처럼 움직이게 하는 일이다. 공장의 ‘손’ 역할을 하는 로봇팔, ‘발’ 역할을 하는 물류 로봇, ‘눈’ 역할을 하는 검사 로봇 등은 여러 제조 현장에서 쓰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제조사의 장비와 소프트웨어가 제각각 움직이면서 공장 전체의 흐름은 여전히 사람이 조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지컬 AI 시대의 경쟁력은 로봇 한 대의 성능보다 여러 로봇과 설비를 실시간으로 연결하고 조율하는 운영 능력에서 나온다.
흔히 ‘다크팩토리’는 사람이 없어 불을 꺼도 돌아가는 공장으로 설명되지만, 본질은 단순한 무인화가 아니다. 설비와 로봇, 자재 흐름, 작업 순서, 에너지 사용까지 하나의 체계 안에서 움직이게 만드는 ‘오케스트레이션’이 핵심이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437호(2026년 3월 2호)에 소개된 ‘피지컬 AI가 바꾸는 제조 현장’ 아티클의 주요 내용을 통해 공장을 지능형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살펴본다.
● 로봇보다 중요한 건 ‘시스템’이다
최근 맥도날드의 빅맥 세트는 7000원대에 살 수 있지만, 동네 분식점의 김밥 세트는 9000원을 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왜 세계 어디서나 같은 품질을 내야 하는 햄버거가 동네 분식보다 저렴해졌을까. 차이는 단순한 구매력이 아니라 ‘운영 시스템’에 있다.
맥도날드는 햄버거를 요리사의 감각에 맡기지 않는다. 주방 동선, 재료 위치, 조리 순서, 작업 분담까지 표준화해 숙련도가 낮은 직원도 일정한 품질을 낼 수 있게 했다. 반면 많은 소규모 주방은 여전히 특정 사람의 경험과 감각에 의존한다. 한쪽은 시스템이 품질을 보증하고, 다른 한쪽은 사람이 품질을 떠안는 구조다.
제조업도 같은 갈림길에 서 있다. 한국 제조업은 개별 설비와 로봇의 수준은 높지만, 공장 전체의 흐름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계하는 역량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라인 일부를 자동화했는데도 물류 병목과 재고 부담이 커지는 이유다. 피지컬 AI 기반 자율 제조의 핵심은 더 많은 로봇을 들여놓는 것이 아니라 로봇과 설비, 자재 흐름을 하나의 운영체계로 묶는 데 있다. 이제 제조 혁신의 네 번째 물결은 로봇이 아니라 ‘시스템’에서 시작되고 있다.
● 다크팩토리를 움직이는 세 가지 기술
차세대 다크팩토리는 공정 하나를 자동화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어떤 작업을 어느 설비에서 처리할지, 자재를 언제 어떤 경로로 옮길지, 고장이 나면 어느 우회 경로를 쓸지 실시간으로 판단해야 한다. 공장을 인체에 비유하면 가공 설비와 조립 로봇은 장기이고, 물류와 데이터망은 신경망이다. 피지컬 AI는 전체를 조율하는 두뇌다. 장기가 아무리 튼튼해도 신경망과 두뇌가 작동하지 않으면 몸은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술은 세 가지다. 첫째는 디지털 트윈과 강화학습이다. 실제 공장을 가상 공간에 복제한 뒤 수많은 시나리오를 돌려 최적 운영 방식을 미리 학습한다. 공장을 지은 뒤 시행착오를 겪는 대신, 가상 환경에서 먼저 실패하고 개선안을 찾는 방식이다.
둘째는 VLA(Vision-Language-Action), 즉 비전-언어-행동 모델이다. AI가 카메라로 현장을 보고, 작업 지시를 이해한 뒤, 상황에 맞는 행동을 선택하는 기술이다. 제조 현장에서는 부품 위치가 조금 어긋나거나 상자가 기울어지는 작은 변수만으로도 자동화 시스템이 멈출 수 있다. VLA 기반 피지컬 AI는 이런 변수를 인식하고 행동을 조정한다.
셋째는 소프트웨어 정의 공장이다. 스마트폰 앱을 업데이트하듯 공정 레이아웃, 로봇 동작, 물류 정책을 소프트웨어로 바꾸는 구조다. 서로 다른 제조사의 로봇과 장비를 하나의 언어로 묶는 통합 운영체제(OS)가 있어야 특정 장비에 종속되지 않고 공장의 기능을 유연하게 확장할 수 있다. ● 공장 OS를 파는 나라로
문제는 현실 적용이다. 한국에서는 많은 스마트팩토리 사업이 추진됐지만 투자 대비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친 사례가 적지 않다. 제조 정보기술(IT), 공정 장비, 물류 시스템, 로봇 운영을 각각 다른 업체가 맡으면서 공장 전체를 책임지는 총괄 설계자가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해법은 공장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설계하고, 투자 전에 디지털 트윈으로 성능을 검증하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다만 고가의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와 전문 인력은 중소기업에 부담이다. 이 때문에 중소 제조기업도 활용할 수 있는 ‘AI 공장장’ 플랫폼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설계안을 저비용으로 검증하고, 경영진과 현장 인력이 같은 데이터를 보며 의사 결정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제조 운영체제 확보는 국가 전략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과거 컴퓨터 산업의 주도권은 부품 제조사가 아니라 운영체제와 생태계를 장악한 기업이 가져갔다. 제조업도 마찬가지다. 공장 전체를 움직이는 운영체제를 누가 선점하느냐가 향후 경쟁 구도를 좌우할 수 있다.
한국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자동차, 조선 등 피지컬 AI와 결합할 제조 기반을 갖고 있다. 여기에 디지털 트윈과 통합 운영체제를 얹으면 로봇이나 설비를 넘어 ‘다크팩토리 시스템’ 자체를 수출할 수 있다. 피지컬 AI 시대의 승부는 로봇 한 대의 성능이 아니라 공장 전체를 하나의 지능형 시스템으로 설계하는 능력에서 갈린다. 한국 제조업이 이 전환을 선점한다면 공장을 짓는 나라를 넘어 공장 운영체제를 파는 나라로 도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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