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차량에 양보’ 안 지키고 불쑥… 아찔한 눈치 싸움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5월 15일 04시 30분


[로드 리부트: ‘사망 제로’를 향해]〈3〉17년째 혼란, 회전교차로
운전자 3명 중 2명 “통행법 몰라”… 年 1503건 사고에 2152명 사상
2차로형에선 ‘엇갈림 사고’ 속출… “도로주행에 회전 구간 넣어야”

1일 오전 11시경 강원 강릉시 강릉역 앞 육거리 회전교차로. 안쪽에서 주행하던 차가 바깥으로 나오던 중 다른 차들과 뒤엉켜 정체를 빚고 있다. 강릉=김윤진 기자 kyj@donga.com
1일 오전 11시경 강원 강릉시 강릉역 앞 육거리 회전교차로. 안쪽에서 주행하던 차가 바깥으로 나오던 중 다른 차들과 뒤엉켜 정체를 빚고 있다. 강릉=김윤진 기자 kyj@donga.com
강원 강릉시 강릉역 앞 육거리 회전교차로. 1일 회색 중형 승용차 한 대가 바깥 차로를 통해 진입하더니 갑자기 안쪽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안쪽에서 회전하며 빠져나가려던 다른 차량은 급히 멈춰 서며 경적을 울렸다. 두 차가 뒤얽히면서 교차로는 순간적으로 정체를 빚었다. 이미 회전 중인 차량을 무시하고 속도를 내어 진입하는 차량도 부지기수였다. 모두 ‘안쪽 회전 차량이 먼저’라는 기본 수칙을 무시해 벌어진 풍경이었다.

이 교차로를 매일 지나는 마을버스 운전사 이모 씨(69)는 “회전교차로에 진입할 땐 이미 진입한 차량에 양보하는 게 상식이지만, 대다수 진입 차량은 앞차가 가면 눈치를 보다가 그냥 따라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 때문에 급정차하거나 사고가 날 뻔한 위험한 상황이 많다”고 했다. 강릉에서 렌터카 업체를 운영하는 임동건 씨(53)는 “관광객과 시민이 자주 오가는 길목인데 한 달에 한 번꼴로 사고가 난다”며 “교차로에 들어서거나 나갈 때 방향지시등을 켜는 차량도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 17년째 안 지켜지는 ‘회전교차로 수칙’

국내에 2010년 회전교차로가 도입된 후 1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확한 통행 방법을 모르는 운전자가 적지 않아 도로에서 아찔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회전교차로는 중앙에 놓인 원형 교통섬을 차량이 우회하면서 빠져나가는 구조다. 신호등이 없지만 차량이 천천히 서로 양보하며 운전하기 때문에 일반 교차로에 비해 대형 사고 위험이 적고, 신호 대기나 과속으로 인한 공해를 저감하는 효과도 있다.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회전교차로 설치 전후 교차로 내 사망사고는 평균 73% 감소했고, 사고도 46% 적게 발생했다.

문제는 2021년 1871곳이었던 전국 회전교차로가 지난해 2993개로 늘어나는 등 크게 확대되고 있지만 ‘회전 차량이 먼저’, ‘들어설 땐 천천히’라는 간단한 수칙을 지키지 않는 차량이 많아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회전교차로 내에서 1503건의 사고가 발생해 12명이 숨지고 2140명이 다쳤다. 2021∼2024년 4년간 평균 사고 발생 건수(1479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실제로 취재팀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기차역과 용산구 청파초교 앞에 각각 설치된 회전교차로를 관찰하니, 기본 수칙을 지키지 않는 차량을 여러 대 확인할 수 있었다. 회전교차로를 지나 직진하려는 차량이 이미 회전 중인 차량을 아랑곳하지 않고 빠르게 들어서거나, 회전 차로에 있던 차량이 눈치를 보다 직진 차들 사이로 끼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 2차로형 회전교차로에서 혼란 극대화

특히 회전 구간이 2개 차로인 회전교차로에선 혼란이 더욱 심했다. 2차로형 회전교차로는 통행 방법이 기본적으로 일반 교차로와 같다. 좌회전 차량은 안쪽 차로로, 우회전 차량은 바깥 차로로 교차로에 진입하면 된다. 예컨대 6시 방향에서 들어와 9시 방향으로 나가려면 안쪽 회전 차로를 이용해야 한다. 회전교차로 진입 시에는 좌측 방향지시등을 켜고, 진출 시에는 우측 방향지시등을 켜 주변 차량에 주행 방향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모른 채 무분별하게 아무 차로로 들어선 뒤 회전 구간에서 차로를 바꾸다 보니 충돌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회사원 차모 씨(28)는 올 3월 렌터카로 여행하던 중 2차로형 회전교차로에서 차량이 갑자기 끼어들어 급정차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등에는 회전교차로가 많지 않아서인지 통행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2차로형 회전교차로 내 사고가 크게 줄지 않는 점을 우려했다. 유형목 한국교통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전체 (회전교차로) 설치 개수와 비교하면 1차로형 회전교차로의 경우 사고 감소 효과가 확실하고 사고가 나더라도 가벼운 수준에 그친다”면서 “하지만 2차로형 회전교차로에선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 “운전자 절반이 몰라, 도로주행 시험에 넣어야”

앞으로도 회전교차로는 확대될 예정인 만큼 관련 사고를 예방하려면 정확한 통행 방법을 알리는 게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24년 한국교통연구원 설문에서 회전교차로 통행 방법을 ‘매우 잘 알고 있다’고 답한 운전자는 35.6%에 그쳤다. 응답자 절반 이상이 통행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의미다. 좌회전은 안쪽 차로를, 우회전은 바깥쪽 차로를 이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두 가지 모두 맞힌 운전자는 전체 응답자 3명 중 1명꼴에 불과했다.

법령의 공백도 해결해야 할 지점이다. 2021년 말 개정된 도로교통법에는 회전교차로 통행 방법이 △반시계 방향 통행 △회전교차로 진입 전 서행 또는 일시 정지 △회전 중인 차량에 진로 양보 등으로 명기됐다. 하지만 2차로형 회전교차로 통행 방법은 담기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교육과 제도의 허점을 서둘러 메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연환 경찰청 교통안전계장은 “회전교차로는 구조적으로 사고 피해가 줄어들게 설계된 곳이라 집중 단속보다는 홍보와 교육에 중점을 둘 예정”이라고 말했다. 운전 면허시험 학과 시험 문제은행에도 회전교차로 관련 문항 수가 조금씩 느는 추세다. 예충열 한서대 특임교수(전 한국교통연구원 부원장)는 “적어도 회전교차로가 많은 비수도권에서는 운전면허 도로 주행 시험에 회전교차로 구간을 포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고 82% 급감시킨 ‘나선형 도로’
진입로 나눠 회전 중 혼선 차단
“유럽-미국처럼 국내 확대를”
현재 회전교차로 사고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2차로형 회전교차로의 회전부 내에서 발생하는 충돌 사고다. 2024년 기준 회전교차로 사고의 58.5%는 ‘차 대 차 ’ 충돌이었다.

김영춘 한국교통연구원 주임연구원은 “기존 2차로형 회전교차로는 바닥에 진행 방향 화살표가 없어 운전자가 어느 차로로 진입해 어디로 나가야 할지 알기 어렵다”며 “원형 유도선이 백색 점선으로 되어 있다 보니, 바깥쪽 차로에서 무리하게 좌회전(회전 유지)을 해도 된다고 착각해 안쪽에서 나가는 차량과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구조적으로 차로 변경의 혼선이 없도록 2차로형 회전교차로의 설계를 바꾸는 것이 급선무라고 보고 있다. 대표적인 대안이 나선형 회전교차로다. 중앙 교통섬을 달팽이 모양으로 변형해 차로를 나선형으로 설계하면, 들어가는 차로와 나오는 차로가 1 대 1로 연결된다. 운전자가 진입할 때 선택한 차로가 나가는 길까지 자동으로 연결되는 구조여서 회전 구간 내 차로 변경에 따른 사고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 1990년대 후반 네덜란드에서 개발된 이 방식은 현재 유럽과 미국 등지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도 2022년 회전교차로 설계 지침을 개정하면서 △나선형 △차로 축소형 △차로 변경 억제형 등 세 가지 개선안을 제시했다. 차로 축소형은 회전교차로 내 원형 도로를 1차로로 줄이는 대신 우회전 차량은 별도 차로로 미리 빠지게 하는 방식이다. 차로 변경 억제형은 기존 부지를 유지하면서 차로 배열만 새로 짜, 차로 변경을 제한하는 경제적 모델이다.

효과는 입증됐다. 국토부는 지난해 2차로형 회전교차로 시설 개선 시범사업에 따라 기존 회전교차로 3곳을 나선형이나 차로 변경 억제형으로 바꿨다. 그 결과 교통사고 확률이 82.4% 감소했다. 현재 국토부가 관리하는 국도 내 회전교차로 40곳은 시설 개선 사업이 완료됐으나,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나머지 회전교차로의 개선은 진척이 더디다.

국토부와 한국교통연구원은 지난달 29, 30일 전국 지자체 담당자를 대상으로 개선된 설계지침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는 등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국토부는 현장 여건에 따라 나선형이나 차로축소형 중 적합한 모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컨설팅을 제공 중이다. 김 연구원은 “새 지침이 적용된 교차로는 구조 자체가 길을 안내한다”며 “구형 교차로를 신형으로 빠르게 교체하는 것이 실질적인 사고 감소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팀장 권구용 사회부 기자 9dragon@donga.com
▽김윤진(국제부) 임유나(산업2부) 주현우(경제부)
최효정(사회부) 한채연(산업1부) 기자

공동 기획: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소방청 서울시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도로공사 한국도로교통공단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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