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 ‘노스페이스’ 창립자… 등산용품 가게로 첫 사업 시작
의류 브랜드로 정상 찍었지만… 패션 사업의 ‘환경 파괴’ 자각
막대한 지분 정리하고 토지 구매… 남미 파타고니아에 국립공원 조성
◇다른 산을 오르기로 했다/조너선 프랭클린 지음·강동혁 옮김/516쪽·2만5000원·복복서가
신간은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 창립자인 더글러스 톰킨스의 전기다. 기업가에서 환경운동가까지, 성공과 모순으로 가득 찬 한 인간의 생애를 엿볼 수 있다.
사진 출처 다크마운틴프로젝트
세계적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 창립자 더글러스 톰킨스(1943∼2015). 신간은 미국 탐사 저널리스트가 그와 관련된 인물 160여 명을 인터뷰하고 미공개 자료 등을 찾아 톰킨스의 삶을 재구성한 전기다. 단순히 영웅담으로 치켜세우기보다, 그를 둘러싼 논란까지 함께 복원해 낸다.
스물한 살, 톰킨스는 미 샌프란시스코의 술집과 스트립 바 사이에 허름한 등산용품 가게를 열고 ‘노스페이스’란 이름을 붙였다. 이름의 의미를 묻는 질문엔 이렇게 답했다.
“(산의) 남쪽 면(south face)은 사람들이 자주 올라다녀서 눈이 더 부드럽고 햇빛 때문에 더 따뜻하거든요. 난 어려운 면이 더 좋아요. 거칠고 얼어붙은 면요. 노스페이스가 더 까다로운 도전 과제죠. 난 인생에서도 바로 그 길을 택합니다.”
이 이름이야말로 톰킨스의 삶을 압축하는 표현이었다. 가족이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도망치지 못하도록 나무에 묶어둘 정도로 감당하기 어려운 아이였다. 여덟 살엔 스스로 키운 닭의 달걀을 팔며 일찌감치 장사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고교 시절부터 암벽 등반을 함께한 평생지기를 만난 건 그의 인생에 엄청난 전기가 된다. 바로 ‘파타고니아’의 창립자인 이본 슈이나드였다. 두 사람은 ‘산에 미친 괴짜’였다. 톰킨스는 아웃도어 시장이 활황일 때 돌연 노스페이스를 매각하고, 슈이나드 등 친구들과 함께 피츠로이산 등반에 나서기도 했다.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는 데 성공했지만, 여정이 몇 달이나 걸렸는데 집에는 연락을 안 해 가족들은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톰킨스 부인이 슈이나드 부인에게 실종된 배우자들을 찾자고 SOS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톰킨스는 결혼생활 내내 그랬다. 1년에 4개월, 길게는 6개월씩 사라지곤 했다. 그 시간 동안 그는 남편도, 아버지도, 경영자도 아니었다. 집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외면했다. 개척자인 동시에, 백미러를 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톰킨스는 또 다른 의류 브랜드 ‘에스프리’를 창립해 다시 한번 획기적인 성공을 거뒀다. 그는 의류 사업을 수천 개의 기업이 시장점유율을 놓고 경쟁하는 치열한 분야로 인식했다. 패션은 석 달마다 바뀌었고, 그만큼 ‘추측’을 사업의 일부로 여겼다. 다가올 유행을 예측해 패턴을 찍어내고 재고를 채워뒀다. 유행이 적중하는 순간, 수익은 폭발적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사세가 확장되며 잡음도 적지 않았다. 비용도 크게 불어 샌프란시스코에서 생산을 이어갈 경우 수익률이 낮아지자 제조시설을 미국 밖 아시아로 옮겼다. 노동자들은 해외 이전에 반발해 시위를 벌였고, 점진적 이전으로 요구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지만 톰킨스는 깡그리 무시했다. 노조는 그의 얼굴이 담긴 지명수배 포스터를 샌프란시스코 전역에 붙였고, 1976년에는 본사 옥상에 휘발유를 뿌려 건물이 무너지는 사건도 벌어졌다.
사업가 이후의 삶도 평범하지 않다. 그는 자신이 일군 패션 산업이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뒤, 막대한 지분을 정리하고 남미 파타고니아로 훌쩍 떠났다. 기업가에서 환경운동가로의 갑작스러운 전환. 그곳에서 톰킨스는 광대한 토지를 사들여 국립공원으로 조성하고, 이를 국가에 기증하는 결정을 내렸다. 사후 완성된 ‘공원의 길’은 인류 역사상 한 개인이 국가에 기부한 토지로 최대 규모였다.
이 책은 톰킨스의 생애를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인간의 생애가 얼마나 모순적인 이야기로 채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긍정과 부정, 성공과 파괴를 가로지르는 서사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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