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들으라는 듯…찰스 3세 “나토 동맹 그 어느때보다 중요”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4월 29일 14시 01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28일(현지 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국빈 만찬 중 건배하고 있다. 2026.04.29 [워싱턴=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28일(현지 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국빈 만찬 중 건배하고 있다. 2026.04.29 [워싱턴=AP/뉴시스]
“무엇보다도 행정권은 견제와 균형의 대상이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28일(현지 시간) 미 워싱턴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상·하원 의원들을 앞에 두고 28분간 연설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절제된 방식으로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될 만한 견제구를 잇달아 던졌다.

특히 행정권을 ‘견제의 대상’으로 표현한 건, 행정명령을 남용하며 의회 권한까지 때론 무시하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여온 트럼프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해석됐다. 동시에 지켜보는 미 의원들을 향해선 입법부로서 더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두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트럼프의 권위주의적 성향을 겨냥한 일종의 견제”라면서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이 특히 힘차게 박수로 화답했다”고 전했다.

● 찰스 국왕 “공동 안보 순간에 우린 어깨 나란히해”


이날 찰스 국왕은 1991년 모친인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이어 영국 왕실 인사로선 두 번째로 미 의회에서 연설했다.

특히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확인했다. 올해가 9·11 테러 25주년임을 상기시킨 그는 나토가 9·11 테러 직후 집단방위를 규정한 나토 헌장 제5조를 처음 발동했다고 강조했다.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테러에 맞서 단결했을 때 우리는 그 부름에 함께 응답했다”며 “두 차례의 세계대전, 냉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오늘날 우리의 공동 안보를 규정해 온 순간들에서도 우린 어깨를 나란히 했다”고 했다. 이어 “우크라이나와 그 용감한 국민을 지키기 위한 흔들림 없는 결의”까지 언급하며 “나토의 핵심은 미군과 동맹국의 헌신과 전문성”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 이후 꾸준히 나토에 대한 불만을 표출해왔다. 특히 최근 이란 전쟁 국면에선 “우리가 필요로 할 때 곁에 없었다”며 나토 탈퇴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그런 만큼 찰스 국왕의 이날 발언은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읽힌다. 워싱턴포스트(WP)도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방위동맹의 관계를 재평가하겠다고 위협해 온 시점에 찰스 국왕은 청중에게 나토의 집단방위 조항이 9·11 테러 이후 미국에 의해 발동됐단 점을 상기시켰다”고 논평했다.

찰스 국왕은 북미(미국·캐나다)와 유럽 국가 간 협력 체제를 뜻하는 ‘대서양 동맹’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그는 대서양 동맹에 “대서양의 깊은 곳에서 비극적으로 녹아내리는 북극의 빙하에 이르기까지”란 표현까지 붙여가며, 이 동맹은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폭탄과 그린란드 등에 대한 영토 야욕으로 80년간 유지돼 온 대서양 동맹에 최대의 위기를 불러왔단 평가를 받지만, 정작 찰스 국왕은 보란 듯 이 동맹의 중요성을 상기시킨 셈이다.

찰스 국왕은 이날 의원들로 가득 찬 하원 본회의장에 엄청난 박수를 받으려 입장했다. 연설 시작 즈음 “오늘날 우리는 미국과 거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있다. 물론 언어만 빼고 말이다”라고 했을 땐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는 영국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유명한 경구를 인용한 것으로, 두 나라가 똑같이 영어를 쓰는데도 억양이나 발음 등은 다소 다르단 점을 꼬집은 표현이다. 특히 이 자리에선 양국 간 깊은 동질감을 강조한 ‘외교적 메시지’로도 해석됐다. 그는 또 자신의 이번 국빈 방문이 미국의 독립을 방해하려는 “교묘한 후방 공격 작전을 위해 온 건 아니다”라며 “안심하라”는 유머로 다시 한번 큰 웃음을 이끌어 냈다.

가디언은 이번 연설에 대해 “예상대로 ‘이란’이란 단어는 77세 국왕의 입에서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면서도 “정교한 연설문과 인용문 덕분에 국왕은 트루스소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를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했다”고 평가했다.

● 백악관, X에 트럼프-찰스 국왕 서있는 사진 올리며 “두 명의 왕”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찰스 국왕에 대한 국빈 환영식에서 “우리가 독립을 쟁취한 뒤 수 세기 동안 미국인들에게 영국인보다 더 가까운 친구는 없었다”며 양국의 유대 관계에 방점을 찍은 환영사를 준비했다. 특히 그는 자신의 모친이 젊은 시절의 찰스 3세 국왕이 TV에 나오자 “너무 멋지다”라고 말했다면서 당시 모친이 찰스에게 반했었다는 일화도 소개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한편 백악관은 이날 공식 X(구 트위터) 계정에 트럼프 대통령과 찰스 국왕이 나란히 서 있는 국빈 환영식 사진과 함께 “두 명의 왕(TWO KINGS)”이란 문구를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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