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6월 1일은 한국 이커머스사(史)에서 중요한 날이다. 이날 인터파크가 문을 열며 한국 이커머스의 시작을 알렸다. ‘인터넷 테마파크’의 줄임말인 인터파크는 소비자들에게 일상의 다양한 욕구를 온라인으로 해결하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이후 이커머스 시장은 지금까지 성장하고 있다. 대체로 10여 년마다 혁명적 변화를 선보이며 성장에 가속도를 더했다.
韓 이커머스 10여 년 주기 대변혁
인터파크 등장 이후 1996∼2000년 온라인쇼핑몰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롯데인터넷백화점, 신세계몰이 만들어졌고 삼성몰, 옥션 등도 뒤를 이었다. 온라인서점 예스24와 알라딘도 등장했다. 그리고 2000년 4월에는 인터파크의 사내 회사였던 지마켓이 독립해 출범했다. 지마켓은 기존 온라인쇼핑몰과 달리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에게 열려 있는 오픈마켓 모델을 도입했다. 오픈마켓에서는 누구나 쉽게 판매자가 될 수 있고 소비자들은 유통마진이 줄어든 물건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지마켓이 등장하면서 이커머스 시장은 본격적으로 양적 팽창을 시작했다. 2000년 약 6000억 원 수준이었던 이커머스 거래 금액은 2002년 약 6조 원으로 10배로 늘어났다. 지마켓은 설립 3년 만인 2004년 거래액이 2003년 대비 420% 성장한 2300억 원에 달했다. 2003년 12월 한 달간 9만 건이었던 판매 건수는 2004년 11월에 100만 건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마켓 등장 이후 10년이 흐른 2010년 이커머스 시장은 쿠팡의 등장으로 격변을 맞는다. 쿠팡은 2010년 소셜커머스로 시작했다. 소셜커머스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기반으로 물건을 판매하는 방식이다. 쿠팡은 처음에는 티몬, 위메프 등 다른 경쟁사처럼 소셜커머스에 집중했다. 하지만 2014년부터 ‘로켓배송’을 앞세워 이커머스 시장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신흥 강자, 기존 판 흔들며 성장
쿠팡은 이른바 ‘계획된 적자 전략’을 통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물류센터를 확충하고 시스템을 근본부터 바꿨다. 2014년 3월 국내 최초로 직매입 기반 익일배송 서비스인 로켓배송을 시작했다. 이후 쿠팡은 급속 성장하며 2021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2023년에는 연 매출 30조 원을 돌파하며 국내 유통업계 1위에 올라섰다.
쿠팡발(發) 대변혁 이후 10여 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 큰 변화는 없는 것 같다. 압도적 1위 쿠팡을 후발 주자인 네이버쇼핑이 쫓아가는 양태가 반복되고 있다. 네이버쇼핑은 ‘패스트 팔로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아쉽게도 시장의 판도를 바꿀 ‘퍼스트 무버’라는 분석은 없어 보인다. 이러는 동안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은 한국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은 적극적인 광고·마케팅을 펼치며 인력도 증원하고 있다.
이제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야 할 때가 됐다. 무섭게 쫓아오는 중국 업체들을 따돌리기 위한 혁명적 변화도 필요하다. 2000년 ‘오픈마켓’, 2014년 ‘로켓배송’처럼 판을 뒤흔들 만한 그런 변화가 있어야 한다.
답은 인공지능(AI)에 있어 보인다. 이커머스에 AI를 접목해 AI가 고객과 대화하며 맥락에 맞는 제품을 제안하는 것이다. 고객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야 할 물건을 발견해 가며 쇼핑하는 ‘디스커버리 커머스(Discovery Commerce)’를 구현할 수도 있다. 마침 한국은 ‘AI 3대 강국’을 선언하고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커머스 시장의 필요와 정부의 의지가 결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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