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시는 2022년 호미곶면·장기면 일대 시유지를 잇달아 수의계약으로 매각했다. 당시 이 지역은 향후 개발로 가치 상승이 예상되는 곳이었다. 시의회가 매각 경위를 따져보자, 땅이 감정가대로 팔렸는지조차 확인할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뒤늦은 행정사무조사 끝에 담당 공무원이 매각 대금 19억6000만 원을 빼돌린 사실이 확인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 수의계약 남용에 수십억 원 손실
17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9∼2023년) 지방자치단체 등이 매각한 재산은 총 8조1857억 원으로, 이 기간 전체 세외수입(159조 원)의 약 5%였다. 2023년 말 기준 지자체가 보유한 전체 땅·건물(643조 원)의 1.2%가 팔린 것이다.
특히 ‘살림 의존도’(세외수입 중 재산 매각액 비중)가 전국 평균의 3배인 15%를 넘는 지자체는 17곳에 달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이 중 정보 공개 청구에 응한 11곳의 매각 1532건을 분석한 결과, 공개경쟁 입찰을 거친 사례는 52건(3.4%)에 그쳤다. 나머지는 전부 수의계약이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이전 정부에서 국유재산이 감정가보다 싸게 팔렸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전수조사를 지시했는데,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자체의 재산도 헐값 매각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이 중엔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않은 수의계약도 적지 않았다. 수의계약은 공개 입찰과 달리 지자체가 특정인과 직접 계약을 맺는 것으로, 저가 매각이나 특혜가 생길 수 있다. 대표적 사례가 포항시다. 지난해 3월 포항시의회 행정사무조사 결과, 2022년 매각된 땅 중 상당수가 수의계약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애초에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 감정평가서와 매매계약서가 수기로 작성돼 위조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시의회 조사 결과 다른 시유지에서도 비슷한 의혹이 불거졌다. 특정 땅을 매입할 목적으로 사전에 인근 부지에 ‘알 박기’를 하거나, 건물을 올릴 수 있도록 지목이 바뀌기 직전에 사는 등의 정황이 발견된 것이다. 하지만 포항시는 “매각 당시에는 수의계약이 가능했고, 그 전 단계는 정황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다”며 추가 조사를 벌이지 않았다. 시의회는 “이번 매각은 되돌릴 수 없는 뼈아픈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기 포천시도 산정호수 상업지구 정비 과정에서 기존 상인에게 토지를 수의계약으로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해 특혜 논란이 일었다. 포천시는 “관광진흥법상 허용 범위 내에서 현장 상황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해명했다.
● 예외 사유만 35개… “특혜 논란 부르는 구조”
법령상 지자체 재산 매각의 원칙은 공개경쟁 입찰이다. 예외적으로 수의계약을 허용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선 원칙과 예외가 뒤집힌 셈이다. 한 지자체 재산 담당자는 “관례적으로 수의계약을 해오다 보니, 오히려 입찰을 올리면 내부 질문을 받는 분위기”라고 털어놨다.
수의계약이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이유로는 ‘공유재산법 시행령’에 규정된 수의계약 허용 사유가 35개나 된다는 점이 먼저 꼽힌다. 인접한 땅 주인에게 팔 때, 감정가 3000만 원 이하의 소액일 때, 개발사업에 편입되는 땅일 때 등 예외 범위가 넓어 조건을 조합하면 대부분의 매각이 수의계약 대상이 될 수 있다.
지자체들은 “살 만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5년간 매각된 102건 전부가 수의계약이었던 대구 수성구는 “아파트 단지에 편입된 소규모 토지 특성상 공개경쟁 입찰이 성립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강원 속초시도 재산 매각 311건이 모두 수의계약이었는데, “대부분 활용 가치가 낮거나 관리가 어렵고 인접 땅 주인이 매각을 요청한 경우였다”고 했다. 강원 양양군 관계자도 97건이 전부 수의계약으로 팔린 데 대해 “보존 부적합 판정 등으로 판 것일 뿐 문제의 소지가 될 만한 일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요인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매각도 적지 않았다. 본보 분석 결과, 개발이 어려운 자투리땅과 달리 단독 개발이 가능한 비교적 넓은 면적(150m² 이상)인데도 수의계약으로 팔린 땅이 전체의 25.4%였다. 또 포항시 사례처럼 시유지나 군유지에 인접한 땅을 미리 매수해 수의계약 요건을 맞추는 등 ‘꼼수’가 가능한 만큼 내부 정보 활용 유무까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값어치 잘못 매기고, 보증 사고까지
수의계약 외에 기본적 검증·감독 실패 사례도 반복되고 있다. 경기 시흥시는 배곧신도시 내 상업용지를 산업시설용지로 잘못 분류해 최대 18억 원의 가격 차를 초래했다는 감사원의 지적을 받았다. 시흥시는 해당 업체와 민사 소송을 진행 중이지만 이미 소유권이 이전돼 회수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허가 보증서를 받았다가 돈을 날린 황당한 사례도 있다. 경기 구리시는 2021년 구리유통종합시장 대부 과정에서 입점 마트가 제출한 무허가 금융업체의 보증서를 그대로 받아들였다가 보증금을 받지 못해 17억 원의 손실을 보았다. 구리시는 뒤늦게 조례를 개정해 규정을 강화하고 마트와 보증업체를 경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기본적인 검증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관리 체계의 허약성이 드러났다는 평가다. 구리시 관계자는 “법령상 반드시 허가 업체의 보증서가 필요하다는 조항이 없어서 받아들였는데, 결과적으로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했다.
이는 심의와 감독 과정이 사실상 형식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대다수 지자체가 매각액 5억 원 이상일 때 공유재산심의위원회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지만 ‘이의 없음’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임형백 한국지역개발학회장은 “수의계약은 부조리로 이어질 위험이 크기에 절차적 정당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지자체 입장에서도 수익을 극대화하려면 다수가 응찰해 공개경쟁을 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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