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유산청, 종묘 앞 140m 빌딩 충돌

  • 동아일보

서울시, 세운4구역 재정비 계획안
당초 72m서 2배 높이로 변경
유산청 “세계 문화유산 가치 훼손”
市는 “고도 제한 구역 아니다”

서울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宗廟) 맞은편에 높이 140m가 넘는 고층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하자 국가유산청이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반면 서울시 측은 “고도 제한 구역이 아니다”라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유산청은 3일 “서울시가 종묘와 인접한 ‘세운 4구역’의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 고시하며 유네스코 권고 절차를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이라며 “일방적으로 최고 높이를 대폭 상향 조정하는 고시를 강행해 종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유산청이 문제 삼은 건 서울시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변경) 및 지형도면’이다. 이에 따르면 해당 구역에 들어서는 건물의 최고 높이는 약 141m로, 당초 계획된 높이인 약 72m의 2배 가까이 된다.

세운 4구역은 종묘와 청계천 사이에 위치해 문화유산 주변 경관 논란이 반복돼 왔다. 서울시와 유산청 간 최고 높이 기준 조정 협의는 2009년부터 이어졌다. 서울시는 2018년에도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내 일부 구역의 높이 계획을 조정했지만, 당시 문화유산에 미칠 영향과 일조권 문제 등으로 조정 폭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노후 상가 철거와 공원 조성 등 ‘도심 녹지 및 공공기능 강화’를 전제로 높이 기준을 대폭 완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 관계자는 “세운 4구역은 종묘에서 약 180m 떨어져 있어 세계유산법이나 문화유산보호법상 고도 제한 구역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 유산청은 종묘 맞은편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종묘가 지닌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유네스코는 1995년 종묘를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하며 “한국인의 전통적 가치관과 유교문화가 독특하게 결합된, 단아하면서도 신성한 건축물”이라며 “경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근 고층 건물 인허가는 없음을 보장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특히 유산청에 따르면 유네스코는 서울시의 이번 재정비촉진계획에 대해 ‘세계유산 영향 평가’ 실시를 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이를 수용하지 않은 채 변경 고시를 강행했다는 게 유산청의 주장이다. 국내에서 세계유산과 관련해 부동산 개발이 논란이 된 건 처음이 아니다. 2009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 40기 중 하나인 김포 장릉(章陵)도 인근에 대규모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며 문제가 됐다. 당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가치 훼손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공식 서한을 보냈으며, 올 3월엔 전문가 공동 실사도 진행했다.

서울시는 세운 4구역의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 고시한 만큼 조만간 건축심의와 교통영향평가 등을 거쳐 개발 인허가를 추진할 계획이다. 서울시 도시·건축 관계자는 “세운상가 철거 부지에 공원을 조성하고 일부 구역은 문화·전시시설로 계획돼 있다”며 “인근 종묘의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건축심의 과정에서 높이와 형태를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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