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방탄소년단(BTS)이 비영어권 가수로는 최초로 미국 빌보드 200 차트 1위에 올랐다. 같은 해 UN총회에서 ‘Love Yourself, Speak Yourself’ 연설을 통해 사회적 불안과 경쟁 등으로 혼란을 겪는 세계 청년들에게 자기애와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 시기 BTS의 문화적 파급력은 사회, 문화적 가치로 확장되었으며, 경제적 효과도 막대했다. 전 세계 팬들이 한국을 찾아 공연장을 방문하고, 관련 상품을 구매하며,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그들은 한류 산업의 성장을 넘어 국가 브랜드의 위상을 높인 문화 외교관이었다.
한류의 폭발적 확산 속에서 국내에서는 K팝 전용 인프라 구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당시 국내 공연장은 해외 팬 수요나 대형 콘서트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정부는 콘텐츠 산업 진흥계획을 세우고 한류 랜드마크 공연장과 체험관, 박물관 조성사업을 추진했다. 마포구도 이에 맞춰 마포유수지 일대에 K팝 복합공연관광 콤플렉스 조성 계획을 수립했다. 한강변 입지와 접근성을 고려하면 매력적인 구상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외국인 관광객이 급감하고, 관광 트렌드가 변화하면서 마포구는 세 차례에 걸쳐 사업계획을 조정했다. 같은 시기 여의도 제2세종문화회관과 당인리 문화창작발전소 등 인근 유사 시설이 잇따라 추진되어 기능 중복과 수요 분산이 불가피해졌다.
더 큰 문제는 주민 의견이었다. 올해 1월 구민 94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81%가 체육시설을 선호했고, 공연장은 6%에 불과했다. 7월 구민 89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스포츠센터(40.4%)와 문화체육복합시설(36.3%)을 원하는 응답이 76.7%에 달했다. 이는 단순한 여론이 아니라 행정이 반영해야 할 정책 피드백이다.
사업 타당성 용역 결과도 이를 뒷받침했다. 인근 유사시설로 공연 수요가 분산되고, 입지와 규모 모두 K팝 전용공연장으로 부적합했다. 경제 편익(B/C)은 0.618, 수익성지수(PI)는 0.689로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이외에도 객관적 수요, 유사 시설 운영현황 등을 고려해 시설 필요성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중앙투자심사 결과에 따라 국·시비 추가 확보도 불투명하게 되었다.
마포유수지 인근은 대규모 주거지역임에도 생활체육공간이 부족하다. 반면 최근 개관한 마포365구민센터는 높은 이용률과 호응을 얻고 있어 체육시설에 대한 수요를 명확히 보여준다. 복합체육시설은 건강증진과 복지 효과 등 공공편익을 창출하며 세대가 함께하는 문화공간으로 지역 활력을 높일 수 있다.
K팝 공연장 계획은 2018년 당시에는 타당했으나 시대와 환경, 주민 요구의 변화 속에 명분과 실효성을 잃었다. 행정의 목적은 건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함께 성장하고 행복해지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 마포에 필요한 것은 모두가 함께 누릴 수 있는 건강한 도시, 생활 중심의 공공시설이다. 데이터에 기반한 합리적 판단, 구민의 뜻에 귀 기울이는 행정, 그리고 지속 가능한 도시의 비전을 세우는 일이 지금 마포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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