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NA 기술로 암 치료할 것”… 코로나 백신 개발 이끈 무모한 비전[이준만의 세상을 바꾼 기업가들]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11일 23시 09분


우우르 샤힌 바이오엔테크 CEO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2020년 초, 전 세계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지도 5년이 흘렀다. 처음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라는 불안감 속에서 공포를 느꼈던 때가 생생하다. 지금의 일상 회복에는 무엇보다 수많은 의료진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이 있었다. 더불어 백신 및 치료제도 큰 몫을 담당했다. 백신 개발자 가운데 가장 주목받은 인물이 바로 화이자 백신을 공동 개발한 ‘의사 창업가’ 우우르 샤힌(우구어 자힌)이다. 독일 바이오기업 바이오엔테크(BioNTech)의 공동 창업자로, 전 세계 최초의 메신저리보핵산(mRNA) 기반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이끌었다. 샤힌은 언뜻 보면 ‘성공한 벤처기업가’의 전형처럼 보인다. 하지만 튀르키예에서 태어나 4세 때 독일로 이주한 그의 시작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쾰른 지역 포드 공장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했고, 자신은 독일 사회에 적응해야 했던 이민자 2세였다. 그럼에도 의학에 대한 열정과 꾸준한 학구열을 밑바탕 삼아 독일 명문 쾰른대 의대에 진학해 마침내 의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임상을 넘어 연구, 그리고 창업


의대에 입학한 뒤부터 그는 유난히 암(癌) 분야에 매력을 느꼈다. 많은 동기들이 임상의사의 길을 고민하거나 전공과 선택에 몰두하는 것과 달리, 샤힌은 암의 발생 기전과 세포 면역치료에 남다른 흥미를 보였다. 당시만 해도 ‘암에 대한 면역요법’이라는 개념은 지금처럼 대중적이지 않았고, 의료계에서도 연구 단계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샤힌은 연구실을 드나들며 끊임없이 논문을 읽었고, 작은 아이디어 하나까지도 교수와 동료 연구자들에게 열정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에도 그는 자신만의 연구개발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고자 스타트업 창업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물이 2001년 설립한 가니메드 파마슈티컬스로, 이곳에서 항체 치료제 연구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16년 이 회사를 매각하는 데 성공했고, 그 성과와 연구 역량을 발판으로 2008년 바이오엔테크를 공동 창업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내인 의사 겸 연구자 외즐렘 튀레치 박사를 비롯해 비슷한 열정을 지닌 동료들과 손발을 맞추었다.

바이오엔테크는 창업 당시부터 mRNA 기술을 암 치료에 접목하겠다는 혁신적 접근을 내세웠다. 그러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당시 DNA 연구에 더 집중하고 있었고, mRNA는 그 불안정성 때문에 의약품으로는 부적합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샤힌 연구팀은 mRNA의 낮은 안정성과 짧은 단백질 발현 지속 시간을 개선하기 위해 분투했고, 나노입자 전달 시스템 개발 등 꾸준한 연구를 이어갔다. 특히 2013년에는 mRNA 분야의 선구자인 카탈린 카리코를 영입해 염기서열 변형을 통해 과도한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돌파구를 마련했다.

그럼에도 초기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mRNA 치료제 개발에 막대한 시간과 자본이 필요하지만, 성공 가능성은 극히 불투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2020년 이전까지만 해도 바이오엔테크는 업계 일부를 제외하면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며, 상업적 실현성에 대한 회의론이 팽배했다.


혁신으로 이어진 문제의식


그러나 2020년 초, 샤힌은 중국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프로젝트 라이츠피드(Project Lightspeed)’를 가동해 진행 중이던 일부 암 연구를 잠시 중단하고, 회사의 역량을 mRNA 기반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집중시켰다. 그 결과 화이자와 공동 개발한 백신(BNT162b2)이 임상시험에서 약 95%의 예방 효과를 보이며 긴급 승인을 획득했다. 이는 세계 최초의 상용화 mRNA 의약품이었고, 바이오엔테크를 일약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올렸다. 백신 성공으로 바이오엔테크는 대량 생산과 글로벌 공급망 역량을 갖추게 되었고, 2021년에는 매출 190억 달러 수준으로 급성장을 이루었다. 다만 2022년 이후 백신 수요가 줄면서 매출이 급감하자, 회사는 다시 핵심 분야인 암 치료제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했다.

팬데믹 이후 바이오엔테크는 축적된 자본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파이프라인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40여 개의 후보물질을 임상 단계에 올려 놓은 상태이며, 흑색종 대상 mRNA 암 백신 등 여러 프로젝트에서 유망한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또한 독일 외 지역(르완다 등)에 백신 생산시설을 구축해 신속하고 효율적인 글로벌 대응 체계를 마련하는 등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는 장기적 성장 전략도 병행 중이다.

사실 바이오엔테크 창업 초기 시절, ‘mRNA 플랫폼으로 암 백신을 개발하겠다’는 비전은 대부분 ‘무모하거나 지나치게 낙관적인 계획’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샤힌은 암 연구 현장에서 “어떻게 하면 암세포만 골라 공격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을 늘 품었다. 그에게 맞춤형 면역치료는 언젠가 반드시 현실화될 수 있는 꿈이었고, 예기치 않은 코로나19 위기 상황이 이를 백신 형태로 세상에 먼저 선보이는 계기가 됐다. 말 그대로 ‘의과학자의 아이디어와 기업가 정신’이 만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던 혁신을 만들어 낸 셈이다.

흥미로운 일화로, 샤힌은 기업의 주가가 폭등한 뒤에도 여전히 자전거로 출퇴근했다고 한다. 큰 계약을 앞두고도 낡은 카디건을 그대로 걸치고 나타나 “정말 백신을 만들 수 있느냐”는 의심을 받았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 소박한 모습 뒤에는 확고한 과학적 신념과 ‘결국 연구 데이터가 모든 것을 말해 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실제로 그는 “연구실에서의 발견이 환자에게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며 실험 데이터를 어떻게 창업과 연결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해왔던 인물이기도 하다.

단기 수익보다 혁신 기술에 집중

바이오엔테크는 철저하게 의학자 출신 창업가의 철학을 이어 받아 연구 중심의 경영 전략을 추구해왔다. 샤힌은 단기 수익보다는 혁신 기술의 확보와 임상 검증에 집중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실제로 초기 투자자들에게도 긴 호흡의 연구개발이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또 학계와 산업계의 가교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2010년 독일 마인츠대와 함께 트론(TRON·Translational Oncology) 연구소를 설립했다.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이 연구소는 대학 연구자와 바이오엔테크 연구원이 함께 신기술을 탐색하는 ‘번역 연구(Translational Research)’ 플랫폼 역할을 맡았다.

아울러 바이오엔테크는 부족한 역량을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보완했다. 2014년 이후 다국적 제약사들과 협력해 mRNA 플랫폼의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임상 개발에 필요한 자원과 전문성도 확보했다. 이러한 전략 덕분에 바이오엔테크는 파트너십을 통해 추가적인 소득을 창출하는 파이프라인을 빠르게 확장할 수 있었다.


의학과 창업의 시너지 기대


한국 대학의 인기 전공 순위를 보면 대부분 의대가 상위를 차지한다. 이는 제한된 경쟁 환경 속에서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받으려는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을 보여준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 보면 ‘부를 창출하는 창업가들이 적어질 수 있다’는 역설을 안고 있다.

이 지점에서 샤힌의 사례는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준다. 의사들이 의학·과학적 역량을 적극 확장한다면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는 신약 개발이나 혁신적 치료법을 충분히 선보일 수 있음을 그가 증명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 있는 의대에서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창업가가 배출된다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일까. 게다가 연구 현장에서 축적된 지식을 기반으로 창업에 도전하는 것은 막대한 자본과 인내심을 요구하지만, 인류 건강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사명감과 보람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결국 샤힌의 여정은 ‘의학’과 ‘창업’이 서로 다른 길이 아니라, 상호 보완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안정적인 임상 현장에 안주하지 않고, 과학적 도전정신을 실현하기 위해 창업이라는 무대에 뛰어든 그의 결단은 전 세계인의 건강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끈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의 의사들이 임상, 연구, 창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K의료테크’ 분야를 선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환자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궁극적 목표가 있다면, 개원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다양한 과학적 연구와 실험, 그리고 스타트업을 통해 국내외 무대를 아우르며 혁신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의사들은 세계를 향해 더 큰 꿈을 꾸고, 투자자 및 스타트업 생태계는 의사들의 창업을 적극 보완해주며 개인도 국가도 부유해지는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으면 한다. 샤힌이 걸어온 길은 바로 그러한 가능성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우우르 샤힌#바이오엔테크#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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