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내면 남는 돈 15만 원, 고깃집 알바하며 축구의 꿈 되살렸죠”[정양환의 요즘 (젊은) 것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26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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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K3리그 김해시청축구단 골키퍼 김승건 선수(하)

“사회변화로 인한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에서 기성세대가 자주 사용하는 말.”
나무위키에 실린 ‘요즘 젊은 것들’ 정의입니다. 폄하의 뉘앙스가 짙지만, 사실 다들 한때는 그런 말을 듣지 않았나요.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지. 허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어.”(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청년들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어쩌면 인생이란 타래의 실마리를 찾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살짝 여지를 남기고자 (젊은)엔 괄호를 쳤습니다. 나이가 어디쯤 와있건, 우린 모두 ‘요즘 것들’ 아닌가요.

김해시청축구단에서 골키퍼로 활약하고 있는 김승건 선수. 2008년 창단한 김해시청축구단은 국내 세미프로 최상위 리그인 K3에서 2020년 우승을 차지했던 강팀이다. 현재 유명 축구선수 출신인 윤성효 감독이 이끌고 있다. 사진제공 김승건 선수


*상편(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30818/120759510/1)에서 이어집니다.

김해시청축구단 소속 골키퍼 김승건 선수(24)는 아직 젊지만 적지 않은 굴곡을 겪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줄곧 축구선수로 살아왔지만, 스무 살에 피치 못할 일들을 겪으며 축구를 접고 군대에 갔다. 2020년 전역 뒤 독립구단에서 일당 2만5000 원을 받으며 어렵사리 필드로 돌아왔지만, 한참동안 생활고에 시달리며 갖은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다.

그런 그의 팔엔 ‘57’이란 숫자가 새겨져 있다. 2019년 훈련소 입소 때 받은 훈련병 번호다. “그때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다신 후회할 짓 하지 않으려고” 몸에 남겼다고 한다. 그 초심을 간직한 그는 현재 K3리그 강팀인 김해시청축구단에서 57번을 달고 뛰는, 주목받는 선수로 성장했다. “저보다 어려운 처지에서 운동한 이들도 많다. 무슨 대단한 걸 한 것도 아니고, 아직 갈 길도 멀다”며 쑥스러워하는 건실한 청년의 축구 인생을 상편에 이어 들어봤다.

-TNT FC라는 구단은 어떤 곳인가요.
“서울에 있는 독립구단인데, 프로 입단을 목표로 한 선수들이 뛰는 곳이라 보면 됩니다. 구단 내 팀이 A, B, C로 나눠져 있는데, K5리그에 뛰는 A팀은 프로에 도전하는 거예요. 저처럼 축구를 관뒀다가 돌아왔거나, 잘 풀리지 않았지만 여전히 꿈을 꾸는 이들이 모인 구단이죠. ‘재기 전문 축구단’이란 별명도 있다더군요. 전역 뒤 아무런 연고도 없던 저를 받아준 너무나 고마운 곳이에요.”

-당시 받은 일당 2만5000원으로는 생활이 어렵잖아요.
“그러니 뭐라도 해야했죠. 저만 힘든 건 아니고, 모두 마찬가지예요. TNT로선 구단 운영도 힘겨울 텐데, 챙겨주는 게 고마울 따름이죠. 전 처음엔 고깃집 알바를 했어요. 용산에 있는 큰 고깃집이었는데, 낮에 운동하고 저녁에 가서 일하기 딱 좋았죠. 게다가…, 솔직히 돈이 없어서 매일 라면 아니면 맨밥을 간장에 비벼 먹었거든요. 몸 만들려면 단백질이 필요한데, 고깃집에서 일하니 얼마나 좋아요. 사장님이나 이모님들도 열심히 한다고 예뻐해 주셨어요.”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에 있는 한 호텔 커피숍에서 원정경기를 앞두고 만난 김승건 선수. 189cm의 큰 키에 털털한 말투가 인상적인 그는 자신이 겪었던 역경을 들려주면서도 환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남양주=정양환 기자 ray@donga.com


-20대라지만 체력적으로 괜찮았나요.
“쉽진 않죠. 알바 끝나고 집에 가면 새벽 1시 전후니 지치긴 하죠. 하지만 그 정도 고생도 못 이겨내면 어떻게 프로의 꿈을 꿀 수 있겠어요. 게다가 그 고깃집에서 일한 게 저에겐 행운이었어요. 거기서 우연히 TNT FC의 김태룡 구단주님을 마주쳤거든요. ‘너 여기서 뭐해’라며 깜짝 놀라셨어요. 근데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으셨나 봐요. 그 이후로 더 많이 챙겨주셨어요.”

-2021년 서울중랑축구단으로 갔더군요.
“맞아요. K3리그 팀이니까 한 단계 올라선 셈이죠. 무조건 주전으로 경기 많이 뛸 팀을 선택했어요. 선수가 경기를 안 뛰면 어떻게 되는지 겪어봤으니까요. 받는 돈도 월 50만 원으로 늘었죠. 물론 생활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죠. 당시 월세방이 35만 원이라 그거 내면…. 그때는 오전 알바를 주로 했어요. 오전에 일찍 일하고 오후 운동하고 밤에는 개인훈련하거나 쉬려고요. 온라인쇼핑몰 같은 데서 택배 포장 일을 많이 했었어요.”

-다시 축구하길 잘 했다 싶던가요.
“중랑에서 1년쯤 뛰고 난 뒤 한번 고비가 찾아왔어요. 열심히 해서인지, 이듬해부터 월 100만 원으로 올려주셨거든요. 근데 감독님이 같은 조건으로 양주시민축구단에서 세컨드 골키퍼로 가라는 거예요. 처음엔 별로 가고 싶진 않았어요. 강팀이니 또 한 단계 올라가는 거긴 한데, 왠지 찝찝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동계훈련 때부터 실수연발에 뭔가 잘 안 풀렸어요. 뭣보다 그 즈음부터 할머니가 아프시기 시작했어요. 제가 축구하는 이유가 할머니에게 효도하려는 건데…. 자신감이 떨어지고 집중도 안 되니 성적 역시 좋을 리가 없었죠.”

-힘들었을 텐데 어찌 극복했나요.
“제 자신한테 화가 나더라고요. 어렵게 결심해 돌아와선, 이럴 거면 왜 다시 시작했나 싶었죠. 해결책은 뭐 딴 거 있나요. 정말 미친 듯이 운동했어요. 혼자 아침에 러닝 뛰고, 오후에 팀 훈련 하고, 밤에도 피트니스센터 가서 몇 시간씩 있었어요. 그때 실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에도 걸린 적도 있거든요. 근데 아플 때도 새벽에 마스크 쓰고 사람 없는 데 가서 달리기 했어요. 후회 안 하려고 축구한 건데, 후회할 짓을 하고 있으면 안 되잖아요.”

2019년 육군훈련소 시절. 맨 앞에서 경례하고 있는 군인이 김승건 선수다.  성실하게 복무했던 김 선수는 육군군수사령부에서 부사관 지원 권유를 받기도 했다. 사진제공 김승건 선수
2019년 육군훈련소 시절. 맨 앞에서 경례하고 있는 군인이 김승건 선수다. 성실하게 복무했던 김 선수는 육군군수사령부에서 부사관 지원 권유를 받기도 했다. 사진제공 김승건 선수


-양주에서 세컨드 골키퍼였다고 했죠.
“네, 그래서 처음엔 시합에 잘 못 나갔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운동하고 준비했죠. 한번만 나가면 모든 걸 쏟아 붓겠다는 심정으로요. 그러다 드디어 기회가 왔어요. 그때가 울산 원정이었는데, 주전으로 나간 거예요. 와, 진짜 완전 집중해서 뛰었어요. 선방도 꽤 나왔고, 결국 1대0으로 이겼어요. 그때부터 연속 3경기를 스타팅 멤버로 나갔는데 모두 1대0으로 이겼어요. 그러니까 감독님 포함 동료들 보는 눈도 달라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주전 골키퍼로 뛸 수 있게 됐어요.”

-조심스런 질문인데, 원래 주전이던 선수는….
“안 그래도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원래 주전 골키퍼는 권태안 선수라고, K1 수원삼성블루윙즈에서도 뛰던 엄청 대단한 형이에요. 저랑 이름값부터 다르죠. 제가 몇 경기 잘 했다고 자리가 바뀔 레벨이 아니거든요. 근데 이 형이 그 이후로 감독님이 경기 나가라고 하면 ‘오늘 준비가 안 됐다’ 이런 식으로 말하며 제가 나가도록 밀어주는 거예요. 지금은 대학교 코치도 하시고 계신데, 아무리 한참 후배라지만 그러기 쉽지 않잖아요. 저로선 너무 감사했어요.”

-올해는 김해시청축구단으로 옮겼는데.
“네, 지난해 성적이 좋다보니 여러 구단에서 제의가 들어왔어요. K3, K4 리그에선 거의 1년 계약이라, 이렇게 해마다 옮기는 경우가 잦아요. 제 입장에선 상당히 좋은 조건의 연봉도 주셨고요. (얼마나 되나요?) 금액을 밝힐 순 없지만, 그래도 이젠 또래 직장인 연봉만큼 받아요. 아르바이트나 다른 거 걱정 안 하고,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단계까지 드디어 올라온 거죠. 주위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가족들이 정말 기뻐하셨겠네요.
“물론이죠. 아직 시작이지만 프로로 조금은 인정받은 거잖아요. 딴 것보다 할머니 ,아버지한테 용돈 드릴 수 있는 게 제일 좋아요. 게다가 운동선수가 좋은 연봉을 받으면, 보는 눈과 대우도 달라지거든요. 받은 만큼 더 열심히 해야겠지만, 투자한 만큼 더 신경 써서 관리해주는 거니까요. 이제 잘 되고 있으니까, 할머니만 아프시지 않으면 바랄 게 없겠어요. 해드리고 싶은 게 너무 많거든요.”

김승건 선수는 김해시청축구단에서 등 번호 57번을 달고 뛰고 있다. 그는 입대 직후 받은 훈련병 번호인 57에 대한 애착이 크다. 사진제공 김승건 선수


-다음 꿈은 뭔가요. K2, K1?
“당연히 상위리그로 가고 싶죠. 하지만 전 목표를 멀리 잡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고비가 왔을 때도 아무 생각 안 하고 운동만 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지금 현재, 오늘 하루를 열심히 하자는 주의예요. 솔직히 지금 성적이 좀 나와도, 프로리그에 올라가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거든요. 없진 않지만 드물죠. 괜히 기대만 부풀리다가 낙담하고 싶지 않아요. 올라갈 자신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언젠간 꼭 갈 거예요. 제가 절 믿지 않는다면 누가 절 믿어주겠어요.”

-이젠 축구선수로서의 삶에 확신이 섰나요.
“그건 모르겠어요. 세상 일이 제 맘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요. 다만 제 자신을 더 믿을 수 있도록 계속 훈련하고 노력해야죠. 후회 없는 인생을 살자고 축구로 돌아온 거니까요. 그건 성공하든 실패하든 끝까지 가본다는 거겠죠. 가끔 저한테 골키퍼로서 가진 장점이 뭐냐고 묻는 분들이 있어요. 요즘 골키퍼는 빌드업이나 킥력 같은 다양한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니까요. 근데 전 그때마다 ‘자신감’이라 말씀드려요. 언제나 난 잘 한다, 난 막을 수 있다고 스스로 세뇌를 해요. 어떤 경기도 골키퍼가 위축되면 잘 풀리지 않거든요.”

-시합뿐 아니라 모든 게 그렇죠.
“그렇긴 하죠. 그런데 골키퍼는 더 그래야 해요. 질문 하나 드릴게요. 평범한 걸 잘 막는 게 좋은 골키퍼일까요, 막기 어려운 슛을 잘 막는 게 좋은 골키퍼일까요?”

-어렵네요. 실수 없는 게 나은 거 같긴 한데요.
“맞아요. 그런데 골키퍼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건 언제인 줄 아세요. 분명히 골이 될 것 같은 슛을 선방했을 때예요. 데굴데굴 굴러오는 공을 막았다고 환호하진 않죠. 하지만 진짜 좋은 골키퍼는 기본을 잘 지키는 선수예요. 어려운 공은 못 막을 수야 있지만, 평범한 슛을 놓치면 ‘저게 골키퍼냐’ 하지 않겠어요. 눈에 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화려하지 않아도 게임을 버텨내는 존재여야 하는 거죠.”

김승건 선수는 K3리그에서 뛰고 있다보니 경기 때 관중들이 많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성인 팬들을 물론이고 어린이 팬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경기의 피곤함이 싹 사라진다고 한다. 남양주=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요즘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운동 말고는 다른 일정은 거의 안 잡아요. 오전 운동하고, 오후에 좀 쉬고, 저녁에 다시 운동하고. 사실 제가 술 한 잔 하는 거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리그 때는 웬만하면 입에 안 대요. 어쩌다 가볍게 마셔도 시합 뛰면 바로 드러나요. 없는 시간을 쪼개서 알바해가며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부터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부상당하지 않도록 몸 관리도 잘 해야 하고요.”

-김승건 선수에게 축구란 뭘까요.
“제 가족이자 꿈이에요. 초등학교 때부터 제 곁을 지켜줬으니 가족이나 마찬가지고요. 가족한테 보답하고 싶어 시작한 게 축구기도 하고요. 그런데 요즘은 제 자신을 위해 하는 거란 생각도 많이 해요. 가족이 지금껏 희생한 이유도 결국 제가 좋은 인생을 살길 바라는 거였잖아요. 그러니 제가 잘 돼야 우리 가족도 행복한 거죠.”

-가족에 대한 애정이 무척 깊어요.
“제가 부잣집 아이들처럼 경제적으로 지원을 많이 받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가족들의 사랑과 믿음은 누구보다 컸다고 자부합니다. 게다가 저보다 더 어려운 처지로 자란 친구들도 많거든요. 제가 갖지 못한 걸로 속 끓이기보단 제가 누린 것에 감사하고 싶어요. 유럽리그 진출하는 선수들 보면서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런데 주변 탓, 환경 탓 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나요. 저보다 기회를 못 얻고, 중도에 축구를 관둔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앞으로 바라는 게 있나요.
“축구는 제가 열심히 할 거니까, 어떻게든 결과가 나올 거라 생각해요. 현재로선…, 할머니가 아프시지만 않으면 좋겠어요. 해드리고 싶은 게 너무 많거든요. 물론 다시 축구선수로 기회를 잡은 걸 제일 기뻐하시는 게 할머니예요. 당신께선 지금도 너무 행복하다고 말씀하시지만, 더 호강시켜 드리고 싶어요.”

-언젠가 K1리그에서 뛰는 걸 보고 싶네요.
“하하, 저도요. 혼자 상상도 해보곤 하죠. 멀지 않은 미래였으면 좋겠어요. 왜 한동안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란 말이 유행했잖아요. 전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아요. 왜냐면 누구나 한번은, 아니 여러 번 꺾이거든요. 살면서 꺾이지 않길 바라는 건 욕심이에요. 그때마다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한 거 같아요. 거기서 멈추면 그냥 끝인 거죠. 그 다음이 보고 싶으면 뭐든 해봐야 해요. 실패를 받아들여야 또 일어날 힘도 생기지 않을까요. 중요한 건 꺾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라고 믿습니다.”

[나의 옛날이야기] ‘요즘 (젊은) 것들’은  연재 글마다 청년들이 직접 고른 옛 사진들을 싣고자 합니다.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며 그 시절을 들춰보는 ‘코너 속의 코너’입니다. 김승건 선수가 보내준 두 번째 사진은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연습경기를 하던 모습이라고 합니다. 아직 앳되지만 시합에 집중하는 눈빛이 남다르지 않나요.  대한민국의 모든 축구선수들 화이팅!  사진제공 김승건 선수
[나의 옛날이야기] ‘요즘 (젊은) 것들’은 연재 글마다 청년들이 직접 고른 옛 사진들을 싣고자 합니다.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며 그 시절을 들춰보는 ‘코너 속의 코너’입니다. 김승건 선수가 보내준 두 번째 사진은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연습경기를 하던 모습이라고 합니다. 아직 앳되지만 시합에 집중하는 눈빛이 남다르지 않나요. 대한민국의 모든 축구선수들 화이팅! 사진제공 김승건 선수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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