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카버 영국 출신·번역가영어 속담에 ‘항상 들러리, 결코 신부가 아니다(Always the bridesmaid, never the bride)’라는 말이 있다. 성공에 늘 가까이 가지만 끝내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을 뜻한다. 최근 구직과 방송 활동을 병행하며 이를 실감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를 보며 살벌하게 공감한 이유다.
영화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중년의 유만수는 제지 업계에서 수십 년간 일한 베테랑이지만 정리해고된다. 실직 후 저축은 줄고 가족의 생계는 어려워지면서 그의 자존감도 무너진다. 절망에 빠진 만수는 새로운 일자리를 얻기 위해 경쟁자를 제거하는 기괴하고 블랙코미디적인 행동에 나선다. 영화는 표면적으로 암울한 풍자와 폭력적 코미디의 형식을 띠지만, 그 이면에는 중년층이 구직시장을 헤쳐나가며 느끼는 불안을 현실감 있게 담아낸다.
이 영화는 1949년 영국 블랙코미디 영화 ‘친절한 마음씨와 관(Kind Hearts and Coronets)’을 떠올리게 한다. 귀족 가문의 말썽꾼이 상속 서열에서 자신보다 앞선 여덟 명의 친척을 차례로 제거하는 이야기다. 76년의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두 영화는 야망과 구조적 장벽이 충돌할 때 인간이 상상해 온 극단적 판타지를 공통으로 탐구한다. 블랙코미디적 풍자로 받아들인다면 줄거리는 언뜻 보기에 생각만큼 터무니없지 않다. 극단으로 치달은 설정이지만, 후기 자본주의가 내모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가장 암울한 세계선일지도 모른다.
올해 나는 50세가 됐다. 한국 직장 문화에서 이 나이는 유능한 중간관리자들이 승진 경쟁에서 밀려나 임원 자리가 사실상 닿을 수 없는 곳임을 자각하게 되는 나이다. 대신 명예퇴직을 권유받아 퇴직금으로 자영업에 나서는 경우가 흔하고, 다시 구직에 도전하는 일은 파도를 거슬러 수영하는 것처럼 버겁다. 나 역시 최근 수많은 불합격 통보 속에서 마치 물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가장 뼈아픈 것은 초기 탈락이 아니라 아슬아슬하게 놓친 기회다. 서류에서 떨어지는 경우도 물론 허탈하지만, 마지막 관문에서 고배를 마실 때 누적되는 자존감의 타격은 훨씬 크다. 면접을 거듭할수록 희망은 커지기 마련인데 수십 명, 때로는 수백 명을 제치고도 최종 단계에서 패배하는 느낌이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이런 감정을 잔인할 만큼 선명하게 포착한다. 경험과 능력이 있어도 평가받지 못하는 좌절과 전성기가 지나갔다는 불안이 존재론적 위기에 빠지게 만든다.
방송계도 마찬가지다. 소수의 외국인이 스타로 떠오르지만, 같은 자리를 바라보며 묵묵히 노력하는 이들이 훨씬 많다. 기회는 제한적이고 한 나라당 한 명 정도만 자리를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차별화된 전문성이 없다면 이미 자리 잡은 ‘대표 인물’을 대체하기 어렵다. 나의 경우 그 인물은 친구인 피터 빈트다.
피터는 경험이 풍부하고 매력적인 인물이라 늘 촬영 일정으로 바쁘다. 경쟁하기 어려운, 이른바 ‘최종 보스급’ 상대다. 그래서 나에게 섭외가 들어와도 그가 이미 먼저 제안을 받았지만 일정이 맞지 않거나 출연료 문제로 성사되지 않아 그 기회가 나에게 넘어온 것은 아닐지, 냉소적이지만 완전히 비합리적이지 않은 추정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노력하며 내게 남은 기회들을 붙잡고 있다.
나와 피터는 매달 라디오에서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를 함께 진행한다. ‘어쩔수가없다’를 다뤘을 때 나는 혹시 피터에게 불행이 생기면 내 커리어가 급상승할 것이라며, 다음 시청 예정작이 미국 드라마 ‘살인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How to Get Away with Murder)’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유머는 치료보다 싸고, 영화가 보여 주듯 농담은 훨씬 덜 즐거운 두려움을 다루는 방식이기도 하다. 선택지가 점점 좁아진다는 두려움 말이다.
영화 제목 ‘어쩔수가없다’는 만수가 자유의지 없이 어떤 행동을 강제로 하게 된 듯한 상태를 암시한다. 결국 영화에서 제시된 다른 선택지는 또 다른 해고당한 경쟁자인 범모처럼 소주병을 끼고 자기 연민에 빠지는 길뿐이다. 합리적인 성인은 만수의 방식을 따르지 않겠지만, 은유는 명확하다. 기존 경로가 계속 막히면, 절망은 불가피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은 독자라면 내가 살인을 저지를 사이코패스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염려 마세요! 인생이 예술을 모방하더라도 나는 ‘영원한 들러리’ 신세이므로 만수를 따라갈 수도 없다. 만수가 이미 세 명을 죽였으니 늘 2등인 나는 오히려 누군가의 살생부에 내 이름이 올라가 있지는 않은지 조심스레 주변을 살피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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