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고무신’ 작가 유족 “인연이 악연이 돼…영혼까지 갉아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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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3월 27일 21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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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1990년에 제작돼 인기를 끌던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고(故) 이우영 작가가 저작권 소송을 진행하던 중 세상을 떠나자 유족들이 재발 방지와 ‘검정고무신’의 저작권 반환을 주장했다.

이우영 작가의 동생이면서 ‘검정고무신’의 공동 작가인 이우진 작가는 2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어린 시절 만화를 사랑했고, 만화 이야기로 밤새우던 형의 목소리는 이제 들을 수 없게 됐다”며 “2007년 인연은 악연이 돼 형의 영혼까지 갉아먹었다”고 밝혔다.

이 작가가 말한 ‘2007년 인연’은 이우영 작가가 애니메이션 제작업체인 형설앤과 맺은 ‘검정고무신’ 제작 관련 계약을 의미한다.

형설앤 측은 2019년 이 작가 형제 등의 개별 창작활동을 문제 삼으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이우영 작가는 지난해 ‘극장판 검정 고무신:즐거운 나의 집’ 개봉을 앞두고 형설출판사 측이 허락 없이 2차 저작물을 만들었다고 문제 제기를 한 바 있다.

이후 지난 11일 이우영 작가는 인천시 강화군 선원면 자택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경찰은 이우영 작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유족의 뜻에 따라 부검은 실시하지 않았다.

이 작가는 “형이 마지막에 걸었던, 받지 못했던 전화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한다”며 “아마도 형이 마무리하지 못했던 이 문제를 해결하고 제자들의 창작활동을 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 작가는 고인의 막내딸이 갑자기 떠난 아빠를 그리워하면서 적은 시도 공개했다. 이 작가가 낭송한 시에는 “아빠는 나의 눈, 코 귀 마음속에 살아있어요. 제가 큰 소리로 웃는 모습에 섭섭해하지 마세요. 웃지 않으면 눈물이 날까 봐 웃는 거예요. 아빠의 선택을 존중해요. 미안해하지 마세요”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대책위)는 ‘검정고무신’ 캐릭터 사업을 맡았던 형설앤 측의 관련 사업과 소송 중단을 요구했다.

대책위는 “세대를 막론한 사랑을 받은 ‘검정고무신’을 그린 작가가 작품 저작권을 강탈당하고 그 괴로움에 못 이겨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건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 만화·웹툰계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며 “(형설앤 측이) 캐릭터로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형설앤 측을 향해 ‘검정고무신’ 관련 일체 권한을 유가족에게 돌려주고 모든 관련 사업에서 물러나며, 민사소송을 모두 취하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검정고무신’ 작가들이 저작권을 되찾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며 “향후 이우영 작가 추모 사업과 불공정한 계약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문화적 개선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대책위 대변인을 맡은 김성주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이우영 작가에 대해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작가들은 사실상 작품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며 “작가들의 손과 발은 묶인 과정에서 ‘검정고무신’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나오고, 캐릭터 상품이 만들어지면서 절망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재호 동아닷컴 기자 cjh12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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