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단의 카리스마, 히딩크의 열정… 클린스만은?[이원홍의 스포트라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8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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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선수였던 클린스만, 감독으로서는 우려
전술 부족, 독단 행보 논란
한국 대표팀 계기로 명감독으로 거듭나기를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위르겐 클린스만. 대한축구협회 제공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위르겐 클린스만. 대한축구협회 제공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는가.

최근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에 위르겐 클린스만(59)이 선임되자 축구팬들 사이에서 여러 불만 섞인 소리가 나왔다. 감독 선임과정이 불투명했던 점도 있었지만, 감독으로서 클린스만 본인의 자질에 대한 논란도 컸다.

●클린스만에 대한 우려
클린스만은 선수로서는 레전드급 활약을 펼쳤다. 걸출한 스트라이커였던 그는 독일을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다. 1996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정상에도 올려놓았다. 국가대표로서 108경기 47골을 넣은 그는 월드컵에서만 11골을 넣었는데 이는 역대 월드컵 6위 기록이다.

클린스만은 감독으로서는 독일 대표팀을 이끌고 2006년 독일 월드컵 3위를 차지했고, 미국 대표팀을 이끌고 2013년 골드컵 우승, 2014년 브라질 월드컵 16강 진출의 기록을 남겼다. 국가대표팀 이외에는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 2019년부터 2020년까지 분데스리가 헤르타 BSC의 감독을 맡았다. 감독으로서 2006년 독일 월드컵 3위에 오를 때만 해도 그에 대한 평은 크게 나쁘지는 않았으나 이후 미국 대표팀과 뮌헨 및 헤르타 감독을 맡으면서 그에 대한 평은 점차 나빠졌다. 클린스만은 감독으로서 선수 혹은 주변 관계자들과 불화를 일으킨 적이 많았다. 특히 클린스만은 헤르타 BSC에서 물러날 때 구단과 상의도 없이 부임 76일 만에 페이스북을 통해 일방적으로 사임을 알려 구단과 팬들의 분노를 샀다. 클린스만은 당시 구단과의 신뢰 부족을 사임 이유로 내세웠다.

클린스만은 현재까지 결과만 놓고 보면 감독으로서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없다. 스포츠계 일각에서는 명선수는 명감독이 되기 힘들다는 말을 하고는 한다. 하지만 명선수가 명감독이 될 수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명선수도 명감독이 될 수 있다.

●스타 출신 명장 지단, 무명 선수 출신 명장 히딩크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있는 지네딘 지단. 선수로서도 감독으로서도 최고의 역량을 발휘했다. 동아일보 DB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있는 지네딘 지단. 선수로서도 감독으로서도 최고의 역량을 발휘했다. 동아일보 DB
축구계에서 선수로서도 감독으로서도 레전드급 성취를 이룬 사람으로는 지네딘 지단(51)을 꼽을 수 있다. 그는 프랑스 대표팀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2000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우승 주역이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준우승을 끝으로 은퇴한 그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명문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활동했다. 그는 이때 유럽축구연맹(UEFA) 유럽챔피언스리그 3연속 우승을 이루었다. 선수로서 1998, 2000, 2003년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됐던 그는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서 2017년 FIFA 올해의 감독에도 선정됐다. 지단은 2018년 레알 마드리드 감독에서 물러났다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복귀했다. 이 기간에는 2019~2020시즌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차지했다. 현재 휴식 중이지만 프랑스 대표팀 감독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고 있는 그는 감독으로서의 경력도 화려하게 쌓아가는 중이다.

반면 선수로서 화려한 경력을 쌓지는 못했지만, 감독으로서 누구보다 화려한 업적을 쌓아 올린 이로는 우리가 잘 아는 거스 히딩크 감독(77)을 꼽을 수 있다. 선수로서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지만 감독으로서는 한국 대표팀을 맡아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을 이끌었다. 이어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호주 대표팀을 맡아 32년 만에 본선 진출을 이끌었고 한발 더 나아가 호주를 16강에 진출시켰다. 히딩크의 호주 대표팀은 16강전에서 이탈리아와 접전 끝에 후반 추가 시간에 내준 페널티킥으로 0-1로 패하며 8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조직력에서는 이탈리아에 밀리지 않았다. 이탈리아가 얻은 페널티킥은 편파 판정 논란을 일으켰다. 이탈리아는 이 페널티킥 덕분에 8강에 진출한 뒤 우승까지 차지했다. 당시 히딩크 감독이 한국과 호주를 이끌며 보여준 성과는 전 세계에 ‘히딩크 마법’이라는 말을 퍼뜨렸다.

감독으로서 지단은 선수 시절부터 쌓아온 경력에서 나오는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장악하는 스타일이었다. 많은 스타가 모여 있는 구단이지만 감독이기에 앞서 선수로서도 그들 누구보다도 뛰어났던 지단이었기에 그 권위로서 선수단 장악이 가능했다. 이런 그의 선수단 장악력은 과감한 전술을 통한 승부사적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바탕이 됐다. 지단은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다투는 장기전은 물론 챔피언스리그 등 토너먼트 단기전에도 강했는데 한 번에 5명의 미드필더를 고용하는 등 논란이 될 법한 파격적인 전술도 사용했다. 이는 그의 전술적 판단에 대한 반발을 무마할 수 있는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지단은 상대의 특성에 따라 전술을 바꾸는 전술적 유연함으로 유명했다. 이는 그가 전체적인 판을 읽을 수 있는 눈과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전술적 대응 능력이 있음을 증명한다.

히딩크는 한국 감독으로 부임한 뒤 지옥 훈련으로 불렸던 강력한 체력훈련을 실시한 뒤 이를 바탕으로 상대를 줄기차게 몰아붙이는 압박 전술을 구사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이 지나치게 수비적이고 덩치 큰 유럽 선수들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한 점을 고치려 했다. 히딩크 또한 팀에 대한 진단과 이에 따른 전술적 처방에 능했다. 하지만 그는 선수들의 감정을 잘 다루고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데서 더 돋보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뛰었던 전 국가대표 이영표는 지난해 대한축구협회(KFA) 지도자 컨퍼런스에서 “히딩크 감독은 ‘오늘 감독을 위해서 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나를 지배했다”며 당시 히딩크 감독이 선수에게 끼친 심리적 영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증언하기도 했다.

●감독 역량의 두 가지 축, 전술과 정서
지단과 히딩크의 예를 통해서 볼 수 있듯이 선수 시절 유명했건 무명이었건 감독에게 필요한 두 가지 공통된 역량이 있다. 하나는 전술적 운용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선수들에 대한 정서적 운용 능력이다. 누구나 명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역량을 기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감독으로서의 두 기준에서 볼 때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 대표팀에 어떤 전술적 분석과 처방을 내릴 것인가. 또 선수들과 어떻게 정서적 소통을 할 것인가. 그가 집중할 부분은 이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지만 그는 이 두 가지 부분에서 그동안 큰 신뢰를 얻지 못했다.

한국 대표팀을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으로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 동아일보 DB.
한국 대표팀을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으로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 동아일보 DB.
전술적 창의성이 없었던 점은 그의 휘하에 있던 독일 축구 스타 필리프 람(40) 등이 지적하며 공개적으로 불거진 바 있다. 그가 맡았던 미국 대표팀이나 뮌헨, 헤르타 등에서 모두 불화설이 불거졌던 사실도 그의 평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러한 점들에 대해 해명했다. 전술적 창의성이 없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각자 역할이 다른 선수에 따라 얼마든지 그런 비판을 제기할 수 있다고 했고, 헤르타 BSC 등에서 일방적으로 사임 통보한 경우 등은 실수였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과거의 행적을 인정한다고 해서 미래의 결과까지 바뀐다는 보장은 없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실천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15일 경기 고양시에서 열린 대한축구협회 지도자 콘퍼런스에서 200여명의 국내 지도자를 상대로 ‘소통과 협업’을 강조했다. 이는 전술적 운용과 정서적 운용의 두 가지 축 중에서 정서적 운용에 대한 발언이다. 그 자신도 독단적이었다는 평을 들은 적이 있었던 만큼 소통을 통해 주변과 잘 협업하기를 기대한다.

아직 남아 있는 의혹들 성과로 해소해야
하지만 전술적 운용 부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 일부에서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우선 클린스만 감독 본인은 한국에 상주하지만, 코치진은 유럽 등 외국에 머문다는 점이 눈에 띈다. 한국 대표팀 선수 중에는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수들이 많기에 이들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새로 발굴해야 할 국내 선수도 많고 수시로 코치들과 협업해야 하는 대표팀 감독으로서 외국에 상주하는 코치들과 제대로 협업할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의문이다. 이는 전임 파울루 벤투 감독이 코치진과 함께 한국에 머물며 팀 분석과 개선에 전념했던 부분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코치진이 국제전화나 화상회의 등을 사용해 유기적으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는 있다고는 하지만 코치진 대부분이 해외에 머문다는 점은 이들이 우리 대표팀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힘들다. 특히나 참모의 도움에 크게 의존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클린스만 감독으로서는 한국 대표팀에 대한 전술적 개선이 눈에 띄지 않을 경우 이 부분이 더욱 비판받을 수 있다. 이런 점은 그와 코치진이 한국 대표팀에 진정성을 갖고 있느냐에 대한 부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가 한국 대표팀을 열과 성을 다해 이끈다고 느끼게 하지 못한다면 선수들을 감화시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데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성과가 나지 않는다면 코치진 운용 체제를 점차 바꿔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클린스만 감독은 국내에서 24일 콜롬비아, 28일 우루과이를 상대로 평가전을 갖는다. 이를 위해 안드레아스 헤어초크 수석코치 등이 입국해 한 자리에 모였다. 그의 구상대로 코칭스태프들과의 협업이 잘 이루어져 대표팀이 순항한다면 그의 코칭스태프 운영방식도 더 이상 논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결국 성과로 자신을 입증하는 것뿐이다

클린스만에게 한국 대표팀 감독은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 그가 여기서 각고의 노력으로 일정한 성과를 낸다면 감독으로서 다시 도약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명선수였던 그가 한국 대표팀을 계기로 명감독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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