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초저금리가 경제위기 해법? 버블은 언젠가 터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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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의 역습/에드워드 챈슬러 지음·임상훈 옮김/616쪽·3만3000원·위즈덤하우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한 지난해 12월 14일(현지 시간)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한 트레이더가 일하는 모습. 초저금리는 일시적으로 경기를 활성화할 수 있지만 인플레이션을 비롯해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뉴욕=AP 뉴시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한 지난해 12월 14일(현지 시간)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한 트레이더가 일하는 모습. 초저금리는 일시적으로 경기를 활성화할 수 있지만 인플레이션을 비롯해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뉴욕=AP 뉴시스
“금리를 2%까지 낮출 수 있는 풍부한 돈은 부채와 공직 등의 자금 조달 비용을 줄여주며 왕을 구제할 것입니다. 빚을 지고 있는 귀족 지주의 부담도 덜어줄 것입니다. 이들은 농산물이 더 높은 가격에 팔리면서 더 부유해질 것입니다. 상인들은 더 부유해지고 사람들의 일자리는 늘어날 것입니다.”

끊임없는 전쟁으로 프랑스 왕실 재정이 파탄으로 이르렀던 18세기 초 스코틀랜드 출신 인물 존 로(1671∼1729)는 섭정 오를레앙 공 필리프 2세에게 이렇게 진언한다. 돈을 찍어내 금리를 낮추자는 얘기다. ‘왕’이나 ‘귀족’ 등의 단어만 ‘정부’, ‘가계’ 등으로 바꾼다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오늘날 각국 중앙은행이 취했던 정책과 다르지 않다.

섭정의 금융 책임자가 된 로는 왕립은행을 통해 ‘종이가 모자랄 정도로’ 지폐를 찍어내면서 세계 최초로 저금리 정책을 실행에 옮겼다. 로는 프랑스령 루이지애나 지역에 대한 독점거래권을 가진 ‘미시시피 회사’를 인수했는데, 돈이 풀리면서 이 회사 주식에 대한 투기 광풍이 일었다. 주가는 순식간에 40배가량 폭등했고, “모든 사람이 (투기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백만장자(millionaire)’라는 낱말이 이때 생겼다.

이 같은 정책은 파국을 불러왔다. 인플레이션이 심각했다. 1719년 말 물가지수는 연초 대비 2배가 됐다. 외환시장에서 프랑스 통화 가치는 계속 하락했다. 마침내 거품도 꺼져 미시시피 회사 주식 가격은 90% 폭락했다.

미국 투자은행에서 일했던 금융인 출신 저술가인 저자는 금리의 역사를 소개하고 저금리가 만들어 내는 각종 부작용을 지적한다. 저금리는 달콤하다. 일시적으로 투자가 늘고, 소비는 증가하며, 실업률은 낮아진다. 그러나 ‘공짜 점심’은 없다. 저자는 “생산성 둔화, 구매 불가능한 주택 (가격 상승), 불평등 심화, 시장 경쟁 소멸, 금융 취약성 등 우리가 마주하는 많은 문제의 원인이 바로 초저금리”라고 진단한다. 극단적 저금리는 저축 의욕을 꺾을 뿐 아니라 생산적 투자를 유도하기는커녕 자산 인플레이션으로 계층 간 격차만 벌린다. 정부 증권과 우량 채권에 투자하는 연금도 수익률이 하락한다. 대가를 치르게 되는 ‘최후의 심판’은 연기될 뿐 결국은 닥치게 돼 있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21세기 급속히 팽창한 세계 교역이 세계의 풍부한 유동성에 의해 가능했던 거품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저자는 세계화와 금리 사이에 되먹임 고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세계화는 물가 상승 압력을 줄이고, 노동자의 교섭력을 약화시키면서 금리 인하를 유도한다. 역으로 금리 하락은 달러 차입 비용을 줄여 다국적 기업들이 더 긴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면서 세계화를 추동한다. 만약 정말로 세계 교역이 대부분 거품으로 뒷받침되고 있다면 이 거품이 꺼질 때 닥칠 충격은 글로벌 금융위기 등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양적완화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급격히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것도 이제 끝이 보인다는 전망이 슬슬 나오고 있다. 세계 경제의 거품이 충분히 걷힌 것인지, 책의 원제 ‘The Price of Time(시간의 가격)’처럼 금리라는 ‘시간의 가격’을 충분히 매겨 이제 미래를 저당 잡히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인지는 아마 모두가 뒤늦게 알게 될 것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금리의 역습#초저금리#저금리 정책#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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