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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뒷날개]인류학 관점서 짚어본 ‘킷캣’ ‘트럼프’ 성공법

신새벽 민음사 편집부 인문사회팀장
입력 2022-08-13 03:00업데이트 2022-08-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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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다는 착각/질리언 테트 지음·문희경 옮김/1만7800원·344쪽·어크로스
인문잡지를 만들 때 한 주제를 놓고 철학이나 사회학, 경제학, 역사학 등 다양한 학문의 시선을 소개하면 늘 인류학 꼭지가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다. 인류학이 독자에게 공감받는 비결은 뭘까?

‘알고 있다는 착각’의 원제이기도 한 ‘인류학적 시각(Anthro-vision)’이 가진 강점을 살펴보면 궁금증이 어느 정도 해결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편집국장이자 케임브리지대 사회인류학 박사인 저자는 “인류학적 시야가 다른 지적 도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한다”고 강조한다.

인류학의 기본적인 연구 방법은 온갖 현장을 누비는 ‘참여 관찰’이다. 유럽 제국주의가 다른 대륙의 ‘야만인’을 관찰하던 19세기, 인류학은 식민주의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초 독일계 미국인 인류학자 프란츠 보아스(1858∼1942)는 이누이트족을 관찰하다 깨닫는다. “그들이 나와 같은 마음을 지닌 인간”이라는 점이다. 나치는 인종주의를 비판한 보아스의 책을 제일 먼저 불태웠다. 인류학은 당연한 것을 의심하고 낯선 진실을 발견하는 사고법을 제공한다.

심리학이나 행동경제학, 빅데이터 분석을 이용하면 사업에 성공한다고 주장하는 책은 적지 않다. 인류학은 잘 모르는 사람들의 세계로 직접 들어간다는 차별성을 지녔다. 멀찍이서 경제이론을 적용하거나, 데이터로 결과를 풀어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장에서 사람들의 말을 듣고 살펴야 한다. 그래야만 말하지 않는 것까지 볼 수 있다.

서구 기업은 일찍이 인류학의 민족지학(사회와 문화의 여러 현상을 현장 조사를 통해 연구하는 학문)적 연구를 적용해 새 시장을 개척했다. 영국 노동자의 간식이었던 초콜릿 바 ‘킷캣’이 일본에서 수험생에게 행운의 징표로 불티나게 팔리게 된 데는 인류학자의 일본 청소년 면담 조사가 바탕이 됐다. 제품이 유독 많이 팔리는 규슈 지방의 방언으로 킷캣은 ‘반드시 이길 거야’라는 뜻인 ‘기토카쓰’와 비슷하게 들린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 회사는 이를 부각해 마케팅했고 입시생들은 앞다퉈 킷캣을 샀다. 미국의 한 어린이집 체인은 홍보 문구를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교사진’에서 ‘유아기 심리 형성의 중요성’으로 바꿔 성공했다. 젊은 학부모들의 일상을 관찰한 인류학 컨설팅을 받은 결과였다.

저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단순한 어휘 구사를 비웃었던 언론인들이 그의 당선을 예측하지 못한 것도 필연이라고 지적한다. 엘리트 언론인은 트럼프의 말을 “문자 그대로” 새기면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지지자들은 반대였다. 프로레슬러처럼 상대 후보를 도발하는 트럼프의 언어는 그 자신은 엘리트가 아니라는 시그널로 여겨져 지지자들을 열광하게 했다. 우리가 왜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인문학의 미래’를 주제로 출판편집자들과 대담한 적이 있다. 평소 인문학이 위기라는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한 청중이 인문편집자들에게 “멸종위기종처럼 보인다”고 하자 내 안에 숨겨뒀던 불안과 조바심이 드러나고 말았다. 오랫동안 인문학계 편집자로 일해 온 내게도 ‘알고 있다는 착각’이 존재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신새벽 민음사 편집부 인문사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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