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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가로수는 허파, 바람길은 혈관… 도시에 생명 불어넣는 숲

입력 2022-06-04 03:00업데이트 2022-06-04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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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답을 찾다-시즌3]도로 지열 막고 미세먼지 줄여
쾌적한 도시환경 만들기 효과… 산림청, 전국 351곳 도시숲 조성
내년에만 200ha 추가 조성하기로… 초등학교 주변엔 나무 심어 숲길
아이들 통학때 교통안전 도움… 전국 가로수길도 대폭 정비 방침
울산 미포지구에 조성된 미세먼지 차단 숲의 모습. 6.3ha 면적에 9만1207그루의 나무를 심어 인근 산업단지의 공해와 소음을 줄이고, 도심의 미세먼지 농도를 저감시키고 있다. 산림청 제공·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나무와 숲은 인간의 쾌적하고 건강한 삶을 돕는 든든한 응원군이다. 기후위기에 처한 전 세계에 나무와 숲은 희망이 되고 있다. 동아일보는 2020년과 지난해 나무와 숲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숲에서 답(答)을 찾다’ 시리즈를 연재했다. 올해도 ‘숲에서 답을 찾다―시즌3’를 통해 숲의 다양한 활용 방안을 소개하고, 산림 자원의 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모색해 본다.》

“어휴, 오늘은 그냥 구내식당에서 먹읍시다.”

대전 서구 정부대전청사에서 근무하는 김모 사무관(47)은 여름철 점심시간만 되면 마음을 졸였다. 청사 밖 식당으로 갈 때마다 콘크리트 보도와 아스팔트 도로에서 올라오는 지열(地熱)과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했던 것. 식사 후 사무실로 돌아오면 땀에 흠뻑 젖은 와이셔츠를 말리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언제부턴가 김 사무관은 여름철 점심을 청사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최근 달라진 정부청사의 풍경도 한몫했다. 2016년부터 청사 서북쪽과 동북쪽 공터 10만 m²는 ‘도시숲’으로 탈바꿈했다. 숲이 만들어준 시원한 그늘로 걷다 보면 어느새 맛있는 점심 식사가 기다리는 식당에 도착했다. 이후 청사 공무원들의 ‘점심 행렬’은 숲길로 몰리기 시작했다. 공무원들은 이곳을 “그늘진 숲과 시원한 바람이 있는 청사의 허파”라고 부른다.
○ 도시의 허파와 혈관, 도시숲

정부대전청사의 점심 풍경을 탈바꿈시킨 숲은 산림청의 ‘도시숲’ 조성 사업으로 마련됐다. 산림청은 도시 경관을 개선하는 한편 열섬 현상을 줄이고 미세먼지를 저감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 이 같은 도시숲을 조성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미세먼지 저감 도시숲 조성 사업’으로 추진됐는데, 올해부터는 ‘탄소중립 도시숲 조성 사업’으로 취지와 규모가 확대됐다.

산림청과 울산시가 미포지구(북구 연암동) 산업단지 인근에 6.3ha 규모로 조성한 ‘미세먼지 차단 숲’도 대표적인 도시숲이다. 이곳은 미세먼지 저감에 우수한 ‘성능’을 내는 해송, 가시나무, 느티나무 등 44종 9만1207그루의 나무가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다. 시민들의 쉼터는 물론이고 소음과 공해를 줄이고, 도심으로 가는 미세먼지를 차단하는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 결과 미세먼지 차단 숲 같은 ‘완충 녹지’는 도심의 미세먼지 농도를 최대 30% 감소시키는 것으로 조사됐다.

산림청과 지방자치단체는 ‘바람길 숲’도 만들고 있다. 바람길 숲은 낮과 밤의 기압 차를 이용해 도시 외곽의 찬 공기를 도시 안으로 들여오도록 설계된다. 이 과정에서 공기의 순환이 이뤄지고 미세먼지 등 대기 오염물질은 자연스럽게 배출된다. 바람길 숲은 분지 지형으로 대기오염 물질의 정체 현상이 심각했던 독일 슈투트가르트가 1970년대에 조성하면서 전 세계로 확산됐다. 산림청 관계자는 “도시숲이 도시의 허파 역할을 한다면, 바람길 숲은 혈관 역할을 한다”며 “숲이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보는 숲에서 즐기는 숲으로
도시숲이 전국 곳곳에 늘어나면서 ‘보는 숲’에서 ‘즐기는 숲’으로 진화하고 있다. 대전 도시철도 1호선 정부청사역 인근 둔지미공원에서 동호회 회원들이 마레트골프를 즐기고 있다.산림청 제공·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전남 무안군 삼향초교 정문 앞에는 큰길이 있다. 등하교하는 학생들은 달리는 차량을 피해 도로 가장자리로 걷거나 큰길을 건너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곧 숲길로 통학할 수 있게 된다. 산림청이 이 주변에 다양한 나무를 심어 숲길을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다.

‘자녀안심 그린 숲’이라 불리는 이 도시숲은 대기오염에 취약한 어린이들에게 안전하고 쾌적한 숲길을 제공한다. 차량 배기가스와 미세먼지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 인도와 차도를 숲으로 분리하면서 교통안전 기능까지 수행한다. 지난해 부산 등 전국 초등학교 50곳 주변의 찻길이 숲길로 탈바꿈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올해부터 매년 80곳에 조성할 예정인데, 조성을 요청하는 학교가 쇄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도시숲은 ‘보는 숲’에서 ‘즐기는 숲’으로 진화하고 있다. 대전도시철도 1호선 정부청사역 인근 둔지미공원 숲은 마레트골프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신종 스포츠인 마레트(맬릿·Mallet)골프는 도심 공원 경기장에서 작은 망치로 즐기는 퍼팅형 골프로 현재 대전에서만 수백 명의 동호인들이 즐기고 있다. 산림청은 이와 같은 도시숲을 올해 전국 351곳(531ha)에 조성하고, 내년에는 서울 여의도 면적(290ha)의 약 70%인 200ha의 도시숲을 만들 계획이다.
○ 우리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숲, 가로수
경기 수원시 팔달구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의 모습. 도심 속 가로수길은 도시 주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호흡하는 숲이다. 산림청 제공·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충북 청주시에 사는 송성선 씨(56·여)는 청주의 명물로 꼽히는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에 대한 추억이 많다. 경부고속도로 청주나들목부터 복대동 죽천교까지 6.3km가량 뻗은 이 길은 1948년 심은 플라타너스 1527그루가 울창한 터널을 이루고 있다. 드라마 ‘모래시계’와 영화 ‘만추’가 이곳의 풍경을 영상에 담으며 전국에 이름을 알렸다. 송 씨는 “고교 시절 가로수길을 주제로 글을 써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고, 대학생 때는 데이트를 하러 종종 찾았다”며 “청주 시민들은 가로수길이 아니라 숲으로 여긴다”고 했다.

송 씨의 말처럼 가로수는 우리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숲이다. 시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탄소를 흡수하고 미세먼지를 줄여준다. 삭막한 도심에 푸른 색감을 더하면서 도시의 품격도 높여준다.

그러나 모든 길이 청주 가로수길처럼 시민들의 사랑을 받진 않는다. 도심 속 가로수 대부분은 도로 확장 등 개발 사업과 민원으로 각종 수난을 당하고 있다.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로 통째로 잘려나가거나 무분별하게 가지치기를 당할 때도 있다. 철저한 계획 없이 ‘관상용’으로 가로수를 조성하다 보니 좁은 공간에서 가지를 뻗지 못하고 죽어가는 가로수가 부지기수다.

이제 산림당국은 가로수도 ‘숲길’의 일부로 인식하고 가로수를 잘 관리하는 지자체에 인센티브를 주며 도시숲으로 가꿔 나갈 방침이다. 임하수 산림청 산림복지국장은 “미세먼지 차단 숲과 자녀안심 그린 숲, 가로수 등이 도시 속에서 한데 어우러져 우리의 삶을 응원하는 도시숲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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