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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인천항 개항과 함께 시작된 ‘인천해관’ 탄생 과정 확인하세요”

입력 2021-11-26 03:00업데이트 2021-11-26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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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항 옛 세관창고 부지에 조성된
‘인천세관 역사공원’ 일반에 개방
역사관은 4개구역 나눠 자료 전시
인천항 1부두 옛 세관창고 부지에 들어선 인천세관 역사관을 찾은 시민들이 다양한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김영국 채널A 스마트리포터 press82@donga.com
인천본부세관이 인천항(내항) 1부두 옛 세관창고(면적 4395m²) 부지에 ‘인천세관 역사공원’을 만들어 16일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1911년 건립된 옛 세관창고는 인천항 개항과 근대 세관과 관세행정의 역사를 보여주는 항만유산으로 역사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를 받아 2013년 국가등록문화재(제569호)로 지정됐다. 이 공원에는 1883년 인천항 개항과 함께 국내 처음으로 문을 연 인천해관(仁川海關)의 탄생과 인천세관으로 발전한 과정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관도 함께 들어섰다.

역사관은 크게 4개 구역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인천해관의 탄생’이 주제다. 1876년 조선은 일본과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조약에 따라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를 맺었지만 관세를 부과하지 못했다. 근대적 통상 경험이 없어 관세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해 무역 자주권을 일본에 넘겨준 셈이었다. 일본 상품에 시장을 잠식당하자 조선은 뒤늦게 관세 설정을 중요 정책으로 삼고 일본에 수신사를 보내 재조정 협상을 추진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그 뒤 1882년 미국, 영국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며 관세 부과·징수권을 인정받게 된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어 조선은 이듬해 중국 독일영사관에서 근무하며 관세 업무에 밝은 독일인 묄렌도르프에게 해관 창설을 맡기며 인천해관이 창설된다. 조일수호조규와 조선국해관세목 등의 문서와 사진 등이 전시된다.

두 번째는 ‘인천해관의 발전’이다. 인천해관은 징수한 관세를 활용해 인천항을 정비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석축으로 잔교와 부두를 축조하고, 해안도로를 개설했다. 또 한강을 비롯한 주요 항구 주변의 수로를 조사했으며 안전한 항해를 위한 항로 표지를 설치하고 관리했다. 기상 관측 업무도 담당하는가 하면 의사를 고용해 방역에 힘썼고, 방역규정까지 만들어 전국에 시행했다. 1904년에는 밀무역 단속 등을 위해 철강선박을 도입하고, 전국에 등대 건설도 시작했다. 인천해관의 이런 노력으로 인천항은 국제무역항으로서 면모를 갖춰 나간다.

세 번째는 ‘일제강점기 인천세관’이다. 일본은 조선을 강점하면서 해관의 이름을 ‘세관(稅關)’으로 바꿨다. 또 일제의 수탈로 인천항의 교역 규모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자 매립지에 서양식 2층 목조청사를 준공한다. 1918년에 인천항에 갑문식 독(doc)이 준공되자 세관업무를 신속하게 집행하기 위해 1924년 현재 1부두 근처인 독 주변으로 청사를 옮긴다. 갑문식 독이 건설되면서 4500t급 대형 선박도 부두에 접안할 수 있게 되면서 인천항의 화물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1900년대 말에 세운 세관용지 표시석과 철제 금고 등을 볼 수 있다.

마지막은 ‘되찾은 관세주권’이다. 일제 패망과 함께 광복을 맞으면서 인천세관은 미 군정청 교통국이 관할하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재무부 소속으로 새롭게 출발하며 주권을 행사하는 관세행정을 펼치기 시작한다. 1980년 인천본부세관으로 직제가 바뀌며 인천공항과 수원, 안산세관 등 5개 세관을 관할하는 현재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한민국 관세법 초안(1949년), 대한민국 관세율표(1964년) 등이 흥미롭다.

최능하 인천본부세관장은 “근대 유적인 세관 창고와 부지를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돌려주기 위해 인천시와 함께 역사관과 공원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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