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위로하는 바다 노래들[죽기전 멜로디]

이대화 음악평론가 입력 2021-07-30 03:00수정 2021-07-3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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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뛰어들지 않고, 그냥 바라만 보는 게 더 좋을 때가 있다. 오티스 레딩은 ‘The Dock Of The Bay’(오른쪽 사진)에서 슬픔을 달래주는 바다를 노래한다. 그는 이 노래를 녹음한 지 얼마 뒤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이 곡은 빌보드 역사상 최초로 가수의 사후 1위에 오르게 됐다. 동아일보DB·위키피디아
이대화 음악평론가
작년 휴가는 강릉 경포대로 갔다. 이유는 하나였다. 국내 해수욕장 중에서 유독 백사장이 횡으로 탁 트여 그곳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는 경치가 월등했다. 보는 각도에 따라 하늘과 바다만 보이기도 했다.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마음이 비워지는 기분이 좋았다.

조금 이상한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곳에 머무는 며칠 동안 바닷물에 발 한 번 담그지 않았다. 밤에 백사장 그네 벤치에 앉아 관광객들의 불꽃놀이를 구경한 기억 정도만 있다. 발을 씻는 것도 번거로웠고, 옷을 갈아입는 것도 귀찮았고, 무엇보다도 그걸 목적으로 바다에 간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오션뷰 호텔 방에 누워 파도 소리를 들었다. 낮에는 경치를 보며 들었고 밤에는 침대에 누워 SNS를 하며 들었다. 호텔 침구의 바삭한 질감을 만끽하면서. 테이블 위에 놓은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에선 브라이언 이노의 명작 ‘Reflection’이 흘렀다. 집중시킬 목적이 아닌 배경음악 목적으로 만들어진 앰비언트 장르의 곡이다. 긴장을 이완하는 편안하고 부드러운 소리들은 구름이 움직이듯 천천히 54분 동안 흘렀다. 그렇게 공중에 붕 뜬 기분으로 호텔에 대자로 누워 있었다. 1년의 피로가 다 풀리는 기분이었다.

바다를 활용하는 방식이 나와 비슷한 뮤지션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수영복과 물놀이의 낭만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치유하는 내용의 바다 노래가 많은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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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곡은 전설적인 솔 가수 오티스 레딩의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다. ‘Bay’는 바다가 육지 쪽으로 움푹 들어간 ‘만’을 뜻하고 ‘Dock’은 부두를 뜻한다. 해석하면 ‘부둣가에 앉아서’ 정도 될 것이다. 노래 속 주인공이 부둣가에 앉아서 무얼 하느냐면, 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쉰다. 가사를 보면 조지아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일자리를 찾아 샌프란시스코로 왔다. 더 많은 기회를 찾아 왔지만 딱히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사람들의 충고대로 잘 해낼 능력이 없었고,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할 거란 걱정에 사로잡혀 있다. 그의 슬픔을 달래주는 것은 부둣가에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는 아침에도, 석양 무렵에도 부둣가에 간다. 하는 것이라곤 그냥 배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곳에서의 시간 낭비가 유일한 낙이다.

#2. 테테의 ‘내가 바다에 던져버린 것은’에서도 바다는 SOS 해상구조대나 비치발리볼이 떠오르는 에너지 넘치는 공간이 아니다. 마음속 무언가를 털어버리고 씻어내기 위해 찾는 곳이다. 노래 속에서 주인공은 긴 어둠의 터널 속에서 헤맸고, 검은 혀에 상처 입었다. 마음속 순수한 소년이 소멸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다에 와서는 나를 잃지 않는 내가 되었고, 더 큰 파도 위로 날고 있다. 바다에 던져버린 것이 무엇인지 후반부에 등장한다. “내 미련과 지난 후회들 모두”를 던져버렸다고 한다.

#3. 서퍼 출신 잭 존슨도 바다를 즐기는 노래가 아닌 생각하는 노래를 발표한 적이 있다. ‘Only the Ocean’은 “오로지 바다와 나만 있는”, 홀로 바다를 마주한 상황을 그리는 곡이다. 노래 속에서 존슨은 “세상이 너무 복잡할 때” 홀로 바다를 찾는다. 그리고 바다의 본질에 대해 생각한다. 바다는 요구하는 게 없다. 바다는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워하지도 않는다. 그저 파도가 들고 나갈 뿐이다. 그곳에 해가 지고 별이 떠오르면 비로소 세상과 멀어져 자유가 찾아온다. 오로지 나와 바다만이 있다.

#4. 버스커 버스커의 ‘여수 밤바다’에서도 바다는 물놀이 공간이 아니다. 연인에게 전화하고 싶어지는 운치 가득한 곳이다. 장범준은 여수 바닷가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에 ‘근처 모텔 불빛이 축제처럼 아름답게 느껴져’ 노래를 떠올리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노래 속에서 연인에게 전화를 걸어 “뭐하고 있냐”고 묻는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라면서.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며 올해 휴가를 코로나 이전처럼 보내기는 힘들어진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꼭 어딘가에 간다면, 한적한 바다에 가서 음악도 듣고 파도 소리도 듣다 오고 싶다. 무명의 인적 드문 해변에도 수평선과 파도는 공평하게 있으니까. 사실 예전에도 바다를 그렇게 즐겼으니 내게는 별로 다를 것도 없을 것이지만.

이대화 음악평론가
#휴가#바다#파도 소리#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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