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은우]‘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

이은우 논설위원 입력 2021-07-29 03:00수정 2021-07-29 10:22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아침을 간단히 때우려고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우유의 유통기한이 한 달 가까이 지났다면 어떻게 할까. 식빵도 보름 전에 산 제품이다. 대개는 바로 버릴 것이다. 하지만 한국소비자원 등에 따르면 먹어도 탈이 없다. 유통기한은 판매업체가 팔아도 되는 기한이고, 소비자가 먹어도 되는 소비기한은 이보다 훨씬 길기 때문이다. 우유와 식빵의 소비기한은 유통기한이 각각 45일과 18일 지날 때까지다. 소비자가 유통기한을 폐기일로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법이 개정됐다.

▷유통기한 대신 소비기한을 표시하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23일 국회를 통과했다. 내년부터는 식품을 좀 더 오래 두고 먹을 것 같다. 유통기한은 영어로 ‘∼이전까지 최고(Best before)’이다. 기한까지 먹는 게 가장 좋다는 뜻이다. 소비기한까지는 먹어도 되지만 식품이 최적의 상태가 아닐 수 있다. 이 때문에 먹어도 탈이 나지 않을 한도까지 소비기한을 정하지는 않는다. 소비기한이 유통기한보다 10일 이상 길더라도 실제론 2, 3일 연장하는 식이다.

▷연구기관 등에 따르면 두부의 유통기한은 14일이지만, 이로부터 추가로 90일이 지날 때까지 먹어도 된다. 계란 소비기한은 유통기한보다 25일 길다고 한다. 이런 차이는 1985년 유통기한을 도입하던 당시의 열악한 유통 환경과 관련이 있다. 변질되기 쉬운 환경 탓에 유통기한을 짧게 잡은 것이다. 냉장고가 없는 집도 있던 시절이라 유통기한이 곧 소비기한으로 인식됐다. 이번에 우유는 소비기한 적용이 8년 유예됐는데, 철저한 냉장이 필요한 유통 특성 때문이다.

▷유통기한 표시 의무가 없는 제품도 있다. 변질 가능성이 낮은 설탕 소금 소주 된장 고추장 등이다. 냉동 보관하는 빙과류도 유통기한이 없다. 미국은 주에 따라 유통기한이 아예 없는 곳도 있다. 그런데도 많은 업체들이 유통기한을 붙여서 판다.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려는 이유가 있지만, 기한이 지났다고 버리는 제품이 많아지면 신규 구매가 늘어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국내도 비슷한데 제조일자나 품질유지기한을 표시한 제품이 많다.

관련기사
▷국내에서 한 해 버려지는 식품은 548만 t으로 처리 비용이 1조 원을 넘는다.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으로 대체하면 식품 값만 연간 8860억 원을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지만 불안한 측면이 있다. 보관 기준을 지키지 않을 땐 늘어난 기한만큼 식품이 상할 우려가 커진다. 제조·유통 업체는 물론 가정에서도 보관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소비기한 따지지 말고 구입해서 가급적 빨리 먹는 것이다.

이은우 논설위원 libra@donga.com
#유통기한#소비기한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