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임 채소라고 모두 김치 되나”… 어이없는 中의 원조 주장[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입력 2021-07-09 03:00수정 2021-07-09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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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김장문화는 그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남한은 2013년, 북한은 2015년 각각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동아일보DB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최근 김치의 종주권을 둘러싸고 한중 간 논란이 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음식 김치가 뜬금없이 논쟁에 휘말렸다. 그러다 보니 김치가 우리 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기원 논쟁에 가려지긴 했지만 유라시아 역사 속에서도 김치는 오랜 흔적을 갖고 있다.》

3500년 전 빗살무늬 토기를 사용하던 ‘레티호프카’ 마을에서 발굴된 저장 토기들. 강인욱 교수 제공
고대 이래 우리 역사의 일부였던 연해주에서 3500년 전에 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하던 사람들의 마을이 발굴됐다. ‘레티호프카’라고 불리는 이 유적에서 특이한 집이 발견됐다. 33m²(약 10평) 정도 되는 집 안에 사람이 한 아름에 안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토기가 다섯 개 묻혀 있어서 실제 사람이 살 공간이 없었다. 그중 항아리 하나에는 곡물과 바가지가 들어 있었지만 나머지 항아리에는 곡물의 흔적이 없었다. 이 집은 사람이 살던 곳이 아닌 겨울을 날 수 있도록 곡식과 염장채소 등을 보관하는 저장고였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실물로 확인된 최초의 김장독인 셈이다.

김장독으로 쓰인 빗살무늬토기

연해주와 함경도 일대에는 약 5000년 전부터 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잡곡 농사를 지으며 살았지만 점차 추워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레티호프카 마을이 존재했던 3500년 전은 추운 기후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다. 사람들은 기나긴 겨울을 견디기 위해 커다란 항아리에 김치 등 발효 채소와 염장 고기 같은 음식을 보존해야 했다. 사실 겨울이 긴 이 지역은 옥저에서 발해로 이어지는 약 1000년간 변화를 겪으면서도 집 근처마다 거대한 항아리를 묻어두는 공통적 특징을 보인다. 안중근 의사가 살던 마을 근처에 위치한 크라스키노 발해 성터 발굴에 필자가 참여했을 때도 집 근처에서 빠짐없이 거대한 항아리들이 발견됐다. 근대 이후까지도 이 지역에서 모여 살던 고려인들에게 김장독은 필수였다.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 것은 유라시아 전역에서 공통적으로 겪는 일이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도 김치와 흡사한 발효 배추 샐러드가 널리 유행했다. 대표적으로 독일에는 양배추절임인 사워크라우트가, 러시아에는 양배추절임 샐러드와 이를 넣어 끓인 수프 ‘시’가 있다. 이 수프에 마늘과 약간의 고춧가루만 더 넣으면 김치찌개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다. 양배추절임과 수프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솔 푸드다. 고기를 먹기 어려운 러시아 농노들은 값싸고 푸짐한 이 음식 덕에 기나긴 겨울을 지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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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 발해 성터에서 발견된 저장채소를 담았던 항아리. 안중근 의사가 살았던 마을 근처이기도 한 이 지역 집들 주변에서는 빠짐없이 땅에 묻은 거대한 항아리들이 발견됐다. 강인욱 교수 제공
하지만 러시아인들은 한국과 김치를 두고 원조 논쟁을 벌이지 않는다. 그들에겐 고려인들의 김치인 ‘한국식 당근무침’이 유명하다. 러시아는 물론이고 동유럽, 중앙아시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국 음식 하면 이 당근무침을 떠올리는데 이 음식은 19세기 말 러시아로 이주한 고려인들로부터 전해졌다. 스탈린 독재 시절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이 추운 황무지에서 끼니를 이으며 지낼 수 있었던 것도 당근무침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겨우내 먹는 신선한 음식으로 사랑받으며 옛 소련 일대에 널리 퍼졌다. 특히 고려인의 당근무침이 유명한 이유는 또 다른 한국음식인 젓갈 덕분이다. 고려인들은 가자미식해와 같은 젓갈을 당근과 같은 채소에 버무려 먹었다. 젓갈의 독특한 풍미 덕에 당근무침은 유라시아의 수많은 절임채소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이 될 수 있었다.


젓갈로 차별화한 김치


최근 중국과 김치 논란이 불거진 데는 절임채소의 특성이 깔려 있다. 중국에서 약 2250년 전에 쓰인 책 ‘여씨춘추’에는 3000년 전 주나라 문왕이 절임채소(菹)라는 것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공자도 주나라 문왕을 따라서 이 절임채소를 먹었지만 입에 안 맞아 억지로 3년을 먹은 뒤에야 비로소 즐기게 되었다고 한다. 주나라는 중국 서북방 초원에서 유목민과 함께 살던 사람들이 만든 나라다. 초원과 맞닿은 북방지역 사람들이 오랜 겨울을 나기 위해서 채소를 절여서 먹었고, 그것이 산둥반도 출신인 공자의 입맛에는 안 맞았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그러나 절임채소 기록만으로 김치의 기원을 주장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오히려 이 이야기는 절임채소가 중원보다는 추운 북방 지역에서 더 발달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배추는 김치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채소이지만 사실 동아시아에 들어온 것은 상당히 늦은 시기다. 배추과 채소는 곡물과 함께 수천 년 전 중앙아시아 어딘가에서 들어왔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배추는 이보다 더 늦은 고려나 조선시대가 되어서야 들어왔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동아시아에 배추가 도입되기 전부터 수많은 절임채소가 있었다는 얘기다. 우리 배추김치는 단순한 절임배추라는 것을 떠나 이토록 단기간에 수많은 사람에게 인기를 끌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고려인의 당근무침과 마찬가지로 우리 김치가 특유의 풍미를 갖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게 바로 젓갈이다.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에서는 젓갈류가 발달했고, 각 지역에서는 생선 발효 문화가 발달했다. 중국 기록에도 한무제가 우리 역사와 관련이 깊은 동이족(東夷族)의 땅을 순행하다 바닷가 어부들이 묻어놓은 젓갈의 맛에 반해 그 맛을 따라하라고 했다는 내용이 있을 정도다. 세계의 수많은 절임채소 중 한국 김치만큼 다양한 젓갈로 그 풍미를 끌어올린 것은 찾기 어렵다. 김치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음식이 된 것은 한반도가 가진 지리환경을 최대한 활용해 삶을 이어나간 우리의 생활문화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김치에 담긴 한국인의 정체성


많은 조사들에 따르면 인류는 약 1만 년 전부터 세계 각지에서 자기 풍토에 맞는 다양한 발효음식을 만들어 먹어왔다. 음식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시작했냐가 아니라 변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어떻게 적용해 발전했냐는 것이다. 그 점에서 김치와 같은 발효음식의 기원을 두고 성급히 판단하는 건 의미가 없다.

현재까지의 자료에 따르면 포도주는 조지아를 중심으로 서아시아에서 나온 것이 가장 빠르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프랑스나 칠레 와인에 더 익숙하다. 중요한 것은 시작 시점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 먹는 고추를 넣은 매운 김치의 역사가 기껏해야 300년이고, 통배추를 버무린 김장의 역사는 150년도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 김장 문화는 2013년과 2015년에 각각 남한과 북한의 인류무형유산으로 선정됐다. 당시 한국이 제출한 등재신청서 제목은 “김장: 김치 만들기와 나누기”였다. 이 신청서는 유네스코에서도 무형문화유산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살려냈다고 평가받았다. 쓸데없는 원조 논쟁 대신 김치에 담긴 한국인의 정체성과 세계 음식으로서의 보편적 가치를 조리 있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김치는 한국의 독특한 토양에서 발전했다. 무엇보다도 세계인의 공감과 흥미를 이끌어내는 발효음식으로서 보편성을 갖췄기 때문에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될 수 있었다. 불분명한 원조 논쟁으로 싸움을 걸기보다는 자기만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냄으로써 세계가 인정하는 가치를 찾아내는 게 중요할 것이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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