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자신과의 싸움… 젊은세대에 다가가는 방법 고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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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 취임 앞둔 김은선 지휘자 인터뷰
“2019년 SFO서 지휘때 ‘케미’ 딱 느껴, 8-10월에 직접 지휘… 기대 갖고 준비
아버지가 써준 ‘정직한 노력’이 좌우명”
세계 여러 정상급 극장-악단 데뷔 앞둬 “커리어 폭발 시점” 질문에 잔잔한 웃음

8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는 김은선은 “자극에 민감하고 정보화된 시대의 젊은 세대에게 오페라로 다가가는 방법에 대해 여러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제공 ⓒUgo Ponte
8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음악감독으로 취임하는 김은선은 “자극에 민감하고 정보화된 시대의 젊은 세대에게 오페라로 다가가는 방법에 대해 여러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제공 ⓒUgo Ponte
2019년 1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페라(SFO)가 한국인 지휘자 김은선(40)을 차기 음악감독으로 발표했다. 이는 1989년 정명훈의 프랑스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음악감독 취임 이후 한국 지휘자 최고의 성과로 받아들여졌다. 올해 8월 1일 SFO에 공식 취임하는 그를 최근 전화로 인터뷰했다.

―SFO 차기 감독으로 임명된 뒤 1년 반이 흘렀다.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쓴 것과 비슷한 시간이다. 제한된 여건 속에서 SFO와 어떻게 일해 왔나.

“어려움이 있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지난해 객원 지휘 일정이 많이 취소돼 거의 모든 회의에 참석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예전 SFO에서 지휘했을 때의 인상이 궁금하다.

“2019년 5월에 드보르자크 ‘루살카’를 지휘했는데, 그간 수십 개의 오페라극장과 악단을 지휘했지만 SFO에서 지휘봉을 들었을 때 ‘케미’가 딱 맞는 걸 느꼈다.”

―지난해부터 예술계가 어려운 시기였는데 어떻게 지냈는지.

“미국으로 활동 거점을 거의 옮긴 시점에서 코로나19가 터졌다. 연주가 너무 많이 취소됐다. 모든 준비를 다 하고 끝까지 무대에 서려고 노력하다가 거의 마지막 순간에 취소되기 때문에 악보를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지난해 프랑스 독립기념일 콘서트를 에펠탑 앞 샹드마르스 광장에서 지휘해 화제가 됐다.

“3년 전 예정된 콘서트였지만 3월에 파리가 이동 금지에 들어가면서 모든 것이 불투명해졌다. 결국 연주자가 많이 바뀌고 무관객으로 진행됐다.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도 이동 금지 이후 이 연주가 처음이라서 첫날 연습 때부터 단원들이 모두 기뻐했다.”

―2021∼2022 시즌에 SFO에서 어떤 작품들을 무대에 올리게 되는지.

“8월 21일 개막하는 푸치니 ‘토스카’와 10월 개막하는 베토벤 ‘피델리오’를 직접 지휘한다. 코로나19로 작품 수는 많이 줄었지만 기대와 설렘을 갖고 준비하고 있다.”

―고국 무대에서는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유럽처럼 가까우면 잠깐씩 다녀올 수 있을 텐데.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웃음)”

―여성 지휘자가 늘어났지만 지휘는 ‘남성의 일’로 인식되어 온 측면이 강하다. 동양인으로서 서양인들 사이에서 일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을 텐데….

“예술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싸우는 일이다. 나는 여자로 자라왔기 때문에 남자가 어떻게 하는지는 알 수 없고(웃음) 어쨌든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지휘자로서 성장하면서 주변에서 받은 격려와 ‘선한 영향력’이 있다면….

“내가 중학생일 때 아버지(김성재 전 문화부 장관)가 써주신 글이 있다. ‘예술의 즐거움과 높은 이상을 가지고 세계를 바르게 아는 기쁨으로 배움의 길을 가라. 정직한 노력의 결실로 감사하면서 살아라….’ 그 글을 서예가인 외할아버지께서 써 주셔서 방에 걸어 두고 좌우명으로 삼게 됐다. 연세대 작곡과에 진학한 뒤 지휘를 가르친 최승한 교수님이 ‘너는 좋은 지휘자가 될 수 있을 거야’라고 말씀해 주신 덕택에 이렇게 지휘자가 되었다. 늘 스마트폰에 빠져 있고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싶어 하는 이 시대 젊은 관객들과 어떤 방식으로 만나는 게 좋을까 고민하고 있다.”

그는 “올가을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겨울에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 내년 영국 필하모니아, 미국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디트로이트 교향악단…” 등의 일정을 얘기하며 “모두 데뷔 연주”라는 말을 덧붙였다. 세계 정상급 오페라 극장과 오케스트라들이다. “커리어가 폭발하듯 치솟는 시점 아니냐”고 하자 전화기 너머 잔잔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김은선#지휘자#여성 지휘자#오페라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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