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붕괴’ 굴착기 기사 “해체계획서도, 감리자도 본적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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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부실 관리-감독 수사에 속도

붕괴사고 현장서 안전점검 철거 건물 붕괴 사고가 일어난 광주 동구 학동의 재개발구역 현장에서 14일 동구 건축과 직원
 등이 안전점검을 하고 있다. 9일 이곳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도로 쪽으로 넘어지면서 버스를 덮쳐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구청 직원들 뒤로 보이는 토산(土山)이 사고 현장이다. 광주=사진공동취재단
붕괴사고 현장서 안전점검 철거 건물 붕괴 사고가 일어난 광주 동구 학동의 재개발구역 현장에서 14일 동구 건축과 직원 등이 안전점검을 하고 있다. 9일 이곳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도로 쪽으로 넘어지면서 버스를 덮쳐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구청 직원들 뒤로 보이는 토산(土山)이 사고 현장이다. 광주=사진공동취재단
광주 동구 재개발구역 철거 건물 붕괴 참사 당시 현장 작업을 했던 굴착기 기사 A 씨가 경찰 조사에서 “건물 해체계획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감리자를 본 적도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에 이어 1차 하청사인 한솔기업, 다원이앤씨로부터 재하도급을 받아 현장에서 철거 작업을 했던 당사자다.

A 씨가 운영하는 백솔건설은 시공사가 수주했던 공사 금액의 14%에 불과한 헐값을 받고 작업에 나섰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이 같은 다단계 하도급이 이뤄지면서 안전 관리가 뒷전으로 밀린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 굴착기 기사 “해체계획서 본적 없어”
14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굴착기 기사 A 씨는 최근 경찰 조사에서 “건축물 해체계획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해체계획서가 있는지도 몰랐다. 시공사, 하청사가 지시한 대로 작업했다”고 진술했다. A 씨는 사고 당일 ‘성토체를 쌓은 뒤 5층부터 순서대로 철거한다’는 내용으로 구청에 제출된 해체계획서와 달리 건물 중간 부분부터 철거하는 등 안전 수칙을 준수하지 않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당초 학동 4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 발주한 철거 공사가 말단 공사업체인 백솔건설에 재하도급되는 과정에서 막대한 ‘공사비 후려치기’가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개발조합이 현대산업개발, 다원이앤씨 등과 맺은 철거 공사 계약 규모는 최대 127억 원인데 이 가운데 백솔건설의 몫은 14%인 18억 원에 불과했다. 예컨대 석면 철거 공사의 경우 다원이앤씨는 재개발조합으로부터 3.3m³당 6만 원에 공사를 수주해 놓고, 백솔건설에 재하청을 줄 때는 공사비의 13% 수준인 3.3m³당 8000원으로 단가를 낮춘 것으로 전해졌다.

철거업계 관계자는 “통상 철거 현장에서 재하청 업체는 전체 공사비의 40% 안팎을 가져간다”며 “몫이 14%에 불과하다면 아무도 일을 안 맡으려 할 것”이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터무니없이 적은 몫이 배분되는 문제 때문에 다른 철거 공사 업체들은 이번 공사를 맡으려 하지 않았고 지난해 2월 설립돼 당장 수주가 급했던 A 씨가 열악한 조건을 감수하고 공사를 하게 됐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경찰은 시공사와 1차 하청사 등의 공사비 후려치기로 인해 2, 3차 하도급 업체들이 공기를 줄이려 위험한 공사를 강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 감리자, 건물 붕괴 후 “공사 사진 보내 달라”
경찰은 사고 건물의 해체감리자인 B 씨의 부실 감리 의혹도 수사하고 있다. B 씨는 사고 당시 현장에 가지 않는 등 감리자로서 점검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상)를 받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뒤 B 씨가 뒤늦게 감리 관련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B 씨가 사고 후 시공사를 통해 한솔기업 측에 “구청 허가를 받아 철거했던 건물들의 철거 전후가 담긴 사진들을 전송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한솔기업 관계자는 “8차례에 걸쳐 B 씨에게 철거 일정을 알려줬으나,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4월 말부터는 일정 공유도 중단했다”며 “이미 모바일 메신저로 보냈던 사진들을 다시 보내 달라고 해 의아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으로 공사 감독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자체 관계자는 “시방서 등 해체 공사의 표준안이 없다 보니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떨어지는 공무원이 감리자들이 쓴 해체계획서를 검토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동구는 이날 한솔기업과 재개발조합을 산업안전관리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고, 감리 B 씨도 건축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광주=이형주 peneye09@donga.com·김수현·권기범 기자
#광주 붕괴#굴착기 기사#부실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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