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라는 명분 아래 여권을 중심으로 자사주 의무 소각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법안은 새로 취득한 자사주의 1년 내 소각을 원칙화하고, 소각하지 않고 보유·처분하려면 ‘자기주식보유처분계획’을 작성해 매년 주주총회 승인을 받도록 규정한다. 자사주를 일정 기간 내 소각하지 않으면 이사 개인에게 최대 5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상법은 자사주 취득을 크게 두 가지 트랙으로 운영한다. 자사주 취득의 원인이 단일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기업은 원칙적으로 배당 가능 이익의 범위 내에서 자사주 취득이 가능하다. 이러한 자사주 취득은 주주환원 또는 자본 구조조정의 수단으로서 의의가 있다.
기업이 합병이나 영업양수에 대응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자사주를 취득하는 경우도 있다. 기업이 몸집을 키우거나 사업 다각화를 위해 합병을 진행할 때 반대 주주들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 경우 기업은 막대한 자금을 들여 자사주를 사들여야 한다.
어느 건설사가 대규모 합병 과정에서 주주들의 반대로 수백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수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게 취득한 자사주를 소각한다면 그 건설사는 합병으로 인해 늘어난 부채비율에 ‘자본금 감소’라는 악재까지 떠안게 된다. 자본금 감소는 건설사에 돈을 빌려준 은행이나 채권자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자본금이 줄면서 기업의 담보 가치가 덩달아 사라지기 때문이다. 자본금 감소는 기업 외형의 축소를 의미하며, 곧 국내외 시장에서 수주 경쟁력이나 계약이행능력 평가에서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다. 더 나아가 신용등급 하락은 조달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고, 건설업의 핵심인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금줄을 마르게 해 기업을 고사시킬 수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주주 보호를 위한 조치가 기업의 도산 위험을 높이는 모순을 낳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자본금 감소가 기업의 경영 실패나 방만 경영의 결과가 아니라 법적 의무를 이행한 결과라는 사실이다. 기업은 합병 과정에서 합법적으로 자사주를 취득했음에도 사후적으로 소각을 강제당함으로써 신용을 스스로 훼손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는 합리적 의사 결정을 위축시키고 구조조정이나 전략적 거래 자체를 기피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는다.
일각에서는 자사주가 경영권 방어, 주가 관리 등으로 남용되고 있어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는 취득 목적과 사용 방식에 대한 규율 강화로 해결할 문제이지, 소각을 일률적으로 강제함으로써 해결할 사안은 아니다. 특히 합병 등으로 취득한 자사주까지 배당 가능 이익으로 취득한 자사주와 동일하게 취급해 소각을 강제하는 것은 ‘코리아 디스 카운트 극복을 위한 자사주 규제’가 아니라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하는 자본금 축소 유도’에 가깝다. 입법부는 기업의 재무적 기초 체력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연한 자사주 정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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