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선의의 중재자는 없다

임현석 카이로 특파원 입력 2021-05-24 03:00수정 2021-05-24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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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팔 중재국의 인권 이중잣대
정략적 접근, 갈등 해결과는 거리
임현석 카이로 특파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의 무력충돌이 국제사회 중재를 거쳐 사태 열흘 만인 20일(현지 시간) 휴전 합의로 일단락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총 6번 통화하며 휴전을 압박했고,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순회의장국으로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공동대응 필요성을 역설했다. 프랑스가 양측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들었고, 결의안 내용을 토대로 이집트가 양측을 중재하는 데 성공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국제사회가 모처럼 인류애로 합심해 성과를 일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강대국들은 인권이라는 명분 뒤에선 정략적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는 속내를 훤히 드러냈다. 미국은 사태 초반 대응에 미온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무력충돌 사태를 두고 유엔 안보리가 네 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이사국 15곳 중 미국이 반대해 단 한 차례도 공동성명조차 내지 못했다.

미국은 ‘셰일가스 혁명’ 이후 중동 석유에 의존하는 에너지 전략에서 탈피하고 중동서 미군도 줄여 나가고 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중동서 자국 이익을 지키기 위해 미군을 이용한 직접 개입 전략을 자주 써왔는데, 앞으로 이스라엘을 통한 간접 개입 비중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중동서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는 이스라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미국이 압박 수위를 조절하고, 가자지구 공습도 얼마간 용인한다는 눈총을 받았다. 바이든 행정부는 민주당서 비판이 나오자 사태 8일째 들어서야 양측 ‘휴전’을 처음 거론했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16일 유엔 안보리가 이번 사태와 관련한 첫 공개회의를 열었을 당시 “미국이 정의의 반대편에 서고 있다”며 미온적인 태도를 질타했다. 국제사회서 미국이 인권 탄압을 이유로 들어 중국에 공세를 펼치던 것과 정반대 장면이 나온 것이다. 포린폴리시는 미 관리의 말을 인용해 “중국 역시 신장위구르 탄압 논란서 불거진 무슬림들의 부정적 여론을 돌리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이번 사태에선 국제사회의 공동대응을 강조했지만, 미얀마 사태와 관련해선 내정 간섭이라는 이유로 국제공조엔 침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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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안을 만든 프랑스도 이번 사태 해결이 자국 이익과 관련이 있다.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를 풍자하는 만화를 2006년 게재해 논란이 된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가 문제의 만화를 지난해 9월 재게재했는데 이를 두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표현의 자유’라고 말했다가 이슬람 세계에선 비호감으로 낙인찍혔다.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확산됐는데 프랑스 내 무슬림들이 결집하고 반정부 시위로 번질 가능성도 있었다.

이집트도 중재 상황을 자국 이익에 활용했다.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2013년 7월 국방장관 시절 쿠데타를 통해 집권했는데, 정권 비판에 가혹해 정치범만 2만∼6만 명으로 추산된다. 인권을 중시한다는 바이든 행정부 기준에 의하면 사우디아라비아나 터키처럼 비판을 받아야 하는 나라다. 그러나 이집트는 중재 카드를 통해 정권 정통성을 재차 인정받는 한편 미국의 신뢰도 챙겼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랜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자국 이익을 중심으로 지원과 침묵을 반복하는 주변국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다. 중재국들이 지역 내 위상 확대라는 선물을 안고 돌아갔을 뿐, 이번에도 본질적인 갈등 해결에 있어서는 결국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임현석 카이로 특파원 lhs@donga.com



#이스라엘#팔레스타인#중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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