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파나마 운하의 담수구역[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47〉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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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세계적으로 유명한 운하로는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가 있다. 운하는 육지의 두 곳을 바다와 연결해 둔 곳을 말한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면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가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운하는 항해 기간을 단축하여 해상운송에 편익을 제공한다. 선장 입장에서 보면, 운하는 겨울철 거친 바다를 피해 가게 하는 장점이 있다. 대항해시대부터 양 운하가 개통되기 전까지, 많은 선원들이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이나 남미대륙의 케이프혼을 돌아가다가 풍랑을 만나 목숨을 잃었다.

두 번째 배에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기회가 있었다. 노르웨이 나르비크에서 대만 가오슝까지 오는 항해였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면 36일 걸리지만, 희망봉을 돌아오면 45일이 걸리는 항해다. 이때는 기름값이 아주 저렴했다. 운하통행료가 오히려 비싸다고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지 않고 희망봉을 돌아서 항해하라고 지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희망봉 남단을 지나 침로를 동으로 변경하자마자 풍랑을 만나 호되게 고생했다. 수에즈 운하 생각이 저절로 났다.

해양대학 졸업 후 항해사가 된 나는 선배 선장들의 무용담을 좋아하는 바다 사나이가 됐다. 서양의 콜럼버스, 마젤란, 캡틴 쿡과 우리나라의 신성모 엑스트라 캡틴(전 국무총리서리), 박옥규 해군참모총장, 이재송 선장과 같은 분들의 얘기는 늘 흥미로웠다. 현직으로 파나마 운하의 도선사로 근무하는 김영화 도선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해양대 2기 졸업생으로, 미국으로 이주하여 미국 선장 면허를 취득한 다음 파나마 도선사가 되었다. 미국의 선장 면허를 따서 미국 선장이 되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었다. 마침 파나마를 통과할 때 그분이 우리 배의 도선을 위해 올라오셨다. 약 1시간 이상을 같이 선교에서 있었다. 우리 배 선장님과 동기생이셔서 두 분이 옛 추억을 회상하시던 기억이 난다.

파나마 운하에는 담수구역이 있다. 그래서 항해할 때 주의해야 한다. 해수와 담수는 비중이 달라 파나마 운하 밖에서 배의 흘수(물에 잠기는 부분)가 12m라면, 파나마 운하 내 담수구역에서는 12m15cm가 된다. 즉 배가 15cm 더 잠긴다. 만일 파나마 운하를 선저 접촉 없이 통과하기 위한 수치가 12m5cm라면, 배는 파나마 운하의 담수구역에서 10cm 더 깊게 내려가기 때문에 통과할 수 없다. 그러면 담수구역을 통과하기 전에 10cm만큼의 화물을 내려야 한다. 큰일인 것이다. 이것을 예상해서 우리나라를 떠날 때 15cm만큼 화물을 적게 실어야 하는 것이다. 경험이 없으면 20일 뒤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때의 이런 장애를 고려하지 못한다.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라서 선배들의 경험어린 조언을 잘 들어야 한다. 초임 1등 항해사들이 쉽게 범하는 잘못이다.

최근 수에즈 운하에서의 대형 컨테이너 선박의 좌초 사고로 세계가 잠시 멈추었다. 운하와 해운 그리고 선박의 안전운항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는 사건이었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파나마 운하#담수구역#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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