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패배감 읽고, 성취감 북돋아주세요[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입력 2021-04-07 03:00수정 2021-04-0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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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게임에 몰입하는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만사 귀찮아하는 아이가, 게임을 할 때는 이보다 더 적극적일 수 없다. 부모는 속이 터진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가 게임을 하는 것이 불만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 게임을 미친 듯이 하고 싶어 한다. ‘자극적이고 재미있어서’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 안에는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의외의 이유가 있다.

막 고3이 된 아이를 오랜만에 만났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물으니, 아이는 “게임을 1000시간 했죠”라고 말했다. 대충 계산을 해보니, 하루에 2∼3시간은 했다는 소리다. 아이는 “원장님. 제가요, 게임 전국 랭킹 5000등 안에 들어요”라고 했다. 그 정도면 굉장히 잘하는 거라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나는 솔직하게 물었다. “정말 많이 하긴 했구나. 그런데 왜 그랬어?” 아이의 대답은 의외였다. “공부를 해도 성적은 안 오르고, 때려치우고 싶고 그래서….”

아이에게 “후회 없이 열심히는 해봤어?”라고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1% 안에는 들어야 엄마 아빠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는데, 제 성적이 7∼10%예요. 어차피 못 가거든요”라고 그 이유를 말했다. 나는 아이에게 “1000m 스피드스케이팅을 하는데, 100m의 기록이 안 나오면 그만두어야 되겠네? 네 말대로라면 100m를 지나갈 때 평소 실력이 안 나오면, 0.1초 줄이는 것이 어려우니. 그런데 이상하다. 사람들을 보면 다 끝까지 가던데…”라고 말해줬다. 아이는 눈이 동그래져서 나를 다시 쳐다보다가 처음에는 목표를 세웠는데 그게 안 나와서 때려치우고 싶었단다. 나는 다시 “너는 네가 세워놓은 결과를 100으로 보고, 100이 아니면 98이나 85나 0이나 똑같이 보는구나” 했더니, 아이가 의아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잘하고 싶은 거네”라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줬다.

아이는 부모와는 이런 대화가 안 된다고 했다. 부모는 대뜸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 야, 잘하고 싶은 애가 하루 종일 게임하고 있어?” 이런단다. 부모가 이렇게 나오니,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었는데,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단다. 이런 아이들이 무척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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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몸집은 부모만큼 커졌어도, 부모가 자신을 어린아이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기를 바란다. 이야기를 하면 ‘마음이 통하네’, ‘부모한테 말하고 나니까 좀 낫네’라고 생각할 수 있기를 원한다. 보통은 그것이 잘 안 된다. 이 아이도 그런 상황이었다. 내가 “그러면 넌 누구랑 얘기를 하니?” 했더니 아이는 없다고 했다. “넌 얘기할 사람이 없으니까 자꾸 게임기 앞에 앉아 있는 거야. 너는 그 불편한 마음을 피하고 있는 거야”라고 설명해줬다. 아이는 뭔가 깨달은 듯 “고 3이 된 지금도 제가 어리군요”라고 했다.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는 공부는 마음대로 되지 않고, 해도 안 될 것 같지만 게임은 그렇지 않아서다. 게임은 하면 실력이 늘고, 오래 앉아 있으면 레벨도 올라가니 성취감도 느낀다. 그래서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나?’를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공부를 잘 하다가 갑자기 게임으로 빠져든 아이들은 공부에 대한 패배감이나 좌절감을 게임으로 푸는 것도 있다. 또한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에는 외로움이나 무력감도 있다. 그 게임이라도 마주하고 있지 않으면,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게임은 일단 마주하면 너무 재미있어 아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다. 하고 나서 허탈해질지언정 하고 있는 동안은 괴롭고 외로운 현실을 외면할 수 있다. 게임을 하는 아이들 중에는 이렇게 의외의 사정을 가진 경우도 적지 않다.

아이가 매일 자기 할 일을 못 할 정도로 게임만 하고 있다면, 당연히 심각하게 다뤄야 한다. 게임에 일단 중독이 되고 나면 뇌가 반응하는 메커니즘이 도박이나 알코올 중독 상태와 유사해지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이 점을 상기시켜줄 필요는 있다. 이 때문에 중독을 막으려면 스스로 조절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도 가르쳐줘야 한다. 하지만 이 ‘가르침’의 과정은 아이 주도적으로 좀 길게 잡아야 한다. 아이에게 하루에 게임하는 시간을 스스로 체크하게 한 뒤, 지나치다고 생각되면 한 달 기준으로 아이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시간만큼씩 줄여 보게 한다. 이때 부모는 옆에서 조용히 같이 체크해 주며 지켜보는 정도로만 개입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그전에 아이들이 왜 게임에 빠져들게 되는지, 그 의외의 이유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한다. 패배감과 무력감, 외로움이 그 안에 있다면 게임을 조절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과 동시에, 성취감을 갖게 하는 다른 활동,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부모의 말과 행동들도 함께 필요하기 때문이다. 혼을 내고 벌을 주는 것만으로는 게임을 줄일 수 없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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